[취재석] 민심 흔드는 '철도 지하화', 왜 업계 시선은 차가울까?
정부·서울시, 철도 지하화 통합 개발 추진
천문학적 비용에 현실성 의문…우선순위 지적도
[더팩트ㅣ최지혜 기자] 연초부터 철도 지하화가 세간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올해 1월 정부가 발표한 '교통 분야 3대 혁신전략'에 철도·도로 지하화 방안이 담기면서 서울시를 비롯해 국회가 추진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지하화 사업은 지상 철도를 지하로 넣고, 확보한 부지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철도가 있던 자리엔 다양한 시설물이 들어설 수 있게 된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안에 선도 사업부지를 선정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철도 지하화 통합 개발에 관한 종합계획을 수립한다. 정부의 구상에 발맞춰 서울시도 움직였다. 지난 1월 서울시는 지상 구간이 있는 2·3·4·7호선과 경춘선·경의중앙선 등 71.6km의 국철 구간 및 27.6km의 도시철도 구간을 지하화하는 '철도지하화특별법'을 제정해 내년 1월 31일부터 시행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 2월 지상 국가철도 구간 개발을 위한 기본 구상 용역을 발주했다.
총선에서 관련 공약도 쏟아졌다. 지역구 후보 696명 가운데 181명이 지하화 공약을 내걸었다. 특히 경인선 구간이 지나는 지역구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지하화 공약을 내놨다.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서대문을)은 '서울 5대 공약'에 경전철 건설, 철도 지하화를 포함했다. 총선을 앞두고 당적을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바꾼 김영주 의원(영등포갑)도 경부선 지상 철도 구간 지하화 추진을 약속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용산) 역시 핵심 공약으로 '용산 지역 철도 지하화'를 꼽았다.
그러나 철도 지하화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은 차갑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해당 사업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의문이 있는 것이다. 기존 철도를 지하화하는 사업은 새롭게 지하철을 조성하는 사업보다 훨씬 큰 비용이 든다. 약 14년 전인 2010년을 기준으로 국가철도 지하화에 드는 사업비는 약 32조6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정부가 철도와 도로 지하화 사업에 65조2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선 실제 사업비가 1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제시된 철도 지하화 공약이 모두 실현되면 서울 25개 자치구 중 22개 구에서 지하화 공사를 하게 된다. 그러나 지하화 사업에 투입할 예산이나 공사 기간, 공사 기간 철도 운행 방안 등이 병행된 공약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사업을 구상한 정부조차 막대한 비용을 들여 확보한 지상 부지를 어떻게 활용해야 적절한 사업성을 갖출 수 있을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철도는 말 그대로 열차가 지나는 '길'로, 대부분 부지가 좁고 긴 형태다. 이에 대형 건축물이나 시설을 조성하기에 적절치 못한 부지가 많다. 철도 부지의 개발이익으로 천문학적인 지하화 사업비를 회수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에 의문부호가 찍히는 이유다.
연초 정부가 공개한 '교통 분야 3대 혁신 전략'은 총 134조원의 예산을 추정했다. 예산의 절반가량을 철도 지하화에 쓰겠다는 것이다. 나머지 절반 예산을 GTX사업비, 신도시 교통 개선, 지방 광역 도시철도 조성에 분배했다.
이처럼 철도 지하화가 교통 정책의 중심에 놓인 게 마땅한지 의문이다. 지방 교통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제주와 울산에는 지하철이 없다. 지난 2022년 기준 자전거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전년 대비 30% 늘었고, 전기자전거와 전동킥보드 등 각종 새로운 모빌리티도 등장하고 있지만, 서울 내 자전거도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매년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주장하며 출근길 지하철을 탄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교통 바우처가 나왔지만 지역 간 호환이 되지 않는다는 불편의 목소리도 나온다.
철도 지하화를 통해 부족한 도심 내 인프라 부지를 확보해 활용하자는 구상은 다분히 이상적이다. 철도는 분진과 소음을 유발한다. 때문에 지상철도인 서울 1호선 철도와 맞닿은 아파트 가격은 비교적 오르지 않는 경향도 있다. 다만 정부와 국회가 이상적인 철도 지하화의 그림으로 민심을 사로잡은 뒤 정작 시급한 교통 정책에는 낮은 예산을 책정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교통 정책은 대부분 정권의 임기 내 실현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선거철 표심몰이나, 떨어진 정부 지지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엔 국민 삶에 너무도 밀접하고 중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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