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고민을 풀어주는 큐레이션 전략[박찬희의 경영 전략]

2024. 4. 2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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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전략]



정보가 쏟아지고 볼 것이 넘쳐나는 시대, 선택의 고민이 시작된다. 무엇을 사서 어떻게 할까 살피는 ‘행위적 결정’도 어렵지만 그 이전에 어떤 정보를 누구에게 얻을지 따져보는 ‘접촉과 노출의 결정’도 고민이다. 정보가 너무 많고 복잡해서 혼란스러울 때 의미 있는 정보를 가려서 제공하는 큐레이션(curation)의 가치가 부각된다.

큐레이션은 미술 전시 분야의 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세상의 모든 미술작품을 볼 수는 없으니 전문적 안목을 가진 큐레이터가 일정한 테마에 맞춰서 작품을 선별해서 전시하고 관람을 돕는다. 미술 평론가는 이런 큐레이션의 타당성에 대해 평가하고 아울러 작가와 작품을 평가한다. 언론은 나름의 관점에서 보도하고 평론과 토론의 장을 제공한다. 이런 활동들은 미술작품의 시장 형성과 거래에 반영된다.

영화도 극장과 배급사가 일정한 큐레이션 역할을 한다. 유통사업도 상품을 가려서 추천하는 큐레이션 역할을 하는데, 나름의 정체성과 고객 충성도를 가진 브랜드를 큐레이션의 대상으로 삼는 면도 있다. 이를테면 쇼핑몰은 입점 구조상 브랜드가 큐레이션의 중심이 되고 편집숍은 상품 구색을 맞춰 제공하는 기획자의 역할이 중심이 된다. 어디에 투자할지 망설이는 투자자들에게 테마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짜주거나 펀드를 구성해서 끌어들이는 것도 비슷한 개념이다.

 

 골라서 도와주는 큐레이션

인터넷과 모바일로 연결된 세상에서 더 넓은 범위에서 정보를 탐색하고 공유할 수 있다. 그런데 제한된 시간에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되면 이리저리 알아보고 선택하는 데 부담이 커진다. 특히 개인의 입장에선 여러 경로로 정보가 흩어져 쏟아지면 정신이 없다.

이른바 ‘부의 네트워크 효과(negative network externality)’인데 이때 정보 노출의 범위를 좁히고 탐색과 판단을 도와주면 사용자에 대한 접점을 장악하게 된다. 사용자 체험이 쌓여서 믿고 의지할 수 있게 되면 그 접점은 더욱 강화된다. 이것이 큐레이션의 역할이다.

마케팅 교과서에 나오는 인지심리학 기반의 모델들은 체계적으로 정보를 수집해서 대안을 만들고 평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수시로 바뀌고 많은 경우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정보에 접하면서 판단의 기준 자체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의 흐름이 작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제한된 인지능력으로 정보탐색과 평가를 하는 혼란한 상태(messy middle)에서 주목(attention)과 판단의 가닥을 잡아주는 큐레이션의 역할에 주목한다.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테마에 맞춰 선정한 작품을 전시하고 관람객에게 도록과 해설을 제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마존이나 쿠팡 같은 온라인쇼핑몰을 이용할 때 검색 결과 비슷한 상품이 너무 많이 잡혀서 난감한 경우가 있다. 미디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다양한 정보를 접하면서 혼란은 더 커지는데, 플랫폼 사업의 속성상 상품과 사업자를 필터링해서 폭을 좁히는 일도 쉽지 않다.

그래서 구매자들의 평가를 활용해서 판단을 돕거나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추천하는 상품군을 노출시키는 기획전 개념을 도입한다. 신발, 화장품, 패션잡화 등 특정 영역에 특화된 온라인쇼핑몰은 전문적 큐레이션 역량으로 입지를 확보한다.

무신사, 스타일난다 등이 대표적인 예다. 여행, 요리, 스포츠와 같이 특정한 테마를 중심으로 책을 모아서 추천하는 사업자들도 같은 개념이다. 신선식품 전문 쇼핑몰에서 보듯이 창고, 배송, 반품 등 관련 사업에 있어 특화된 서비스가 가능한 점도 있다.


 다양해진 접촉면, 복합적 체험

IPTV 사업자나 온라인동영상스트리밍(OTT)의 고민도 비슷하다. 볼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 화면은 한정되니 콘텐츠를 둘러보는 것도 힘들다.

넷플릭스처럼 다른 OTT 서비스나 IPTV에서 볼 수 없는 콘텐츠를 확보해서 알리고 시청자가 편하게 찾아볼 수 있어야 살아남는다. 가입한 시청자가 다른 콘텐츠에도 관심을 갖도록 개인화된 초기화면을 구성하고 추천목록을 제시한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모르는 시청자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사람들은 여러 채널을 통해 상품의 정보를 얻고 체험하며 편하게 구매 결제와 고객 서비스를 받는다. 이른바 옴니채널 환경인데 신문, 방송과 같은 전통적 미디어 노출은 물론이고 SNS 수다를 통해서도 사용자 체험이 만들어지고 정보 탐색과 구매 행동에 반영된다.

여러 접점의 체험이 서로 엇갈리는 일도 벌어진다. 아이돌 스타가 입고 출연하면 잘못 샀다고 후회하던 옷도 좋아진다. 친구의 인스타그램 사진을 보고 어렵게 구한 신발도 배송 지연에 짜증나면 마음이 달라진다.

아무리 힘센 사업자도 이런 다양한 접촉면에서 제한된 영향력을 가질 뿐이다. 주요 신문, 방송에 광고 내고 영업망 관리하면 되던 시절과 달리 고객의 눈길과 돈을 끌어 보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속에서 최대한 나에게 유리한 사용자 체험을 이끌어낼 뿐이다.

백화점에서 입어보고 온라인 주문해서 배송은 직접 집으로 받는 세상에서 비싼 땅을 창고와 주차장으로 쓰기보다 매장을 과감하게 전시와 체험의 공간으로 만드는 편이 낫다. 가격이 부담스러운 고객에게 이월상품의 아웃렛 재고를 찾아주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커피값과 주차비, 식사나 소품 구입을 잘 챙기면 수익성은 더 높을 수도 있다.

다양한 사업자와 사용자가 맞물린 생태계에서 그 중심에서 관계를 이어주는 참가자는 사업의 주도권을 갖는다. 주문과 결제는 물론 배송, 반품, 불만처리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긍정적 사용자 체험을 얻어 ‘나를 통해서 돈을 쓰도록’ 만들면 옴니채널 환경의 승자가 된다.

 

 브랜드와 스토리텔링

큐레이션이 제 역할을 하려면 사람들이 그 판단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전통 있는 백화점이니 좋은 물건을 모아 놓았을 것이라 믿어야 어렵게 시간 내서 찾아가 돈을 쓴다. 증권사가 만든 펀드를 가입하려면 나보다 잘 선택했고 돈 떼먹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사업 활동을 통해 얻은 관계자본, 대중과 이해관계자에게 쉽고 인상적으로 각인된 상징자본이 쌓여 나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그 중심에는 브랜드와 스토리가 있다. 단순히 신문, 방송에 광고 올리고 우호적 기사를 노출시켜서 되는 일이 아니라 납득이 가는 이야기로 이해되고 그 기억과 감성이 연결되고 축적되어 나름의 맥락을 이룰 때 가능하다.

골라줄 필요가 없는 강한 브랜드는 큐레이션을 압도한다. 좋은 미술관에 좋은 큐레이터가 모이고 좋은 작가가 참여한다. 그러나 좋은 큐레이터가 좋은 작가를 모으고 미술관을 선택해서 전시를 기획하는 경우도 있다. 뛰어난 작가가 주도할 수도 있다. 생태계의 중심에서 다른 참여자를 주도하는 플랫폼 흡수가 일어나는 셈인데 사람의 마음을 끌어서 돈과 정보의 흐름을 잡아야 이 게임의 승자가 된다.

샤넬은 나름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단단하게 구축된 브랜드의 힘으로 백화점을 압도한다. 백화점은 샤넬을 끌어들이는 영업력이 중요하다. 반도체 판의 스타 엔비디아의 주식은 펀드와 상관없이 투자자가 직접 산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은 돈과 정보의 흐름을 더 정확하게 읽을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러나 데이터 분석은 질문을 현실에 비추어 확인하는 과정이며 남들과 다른 창의적 질문이 있을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자신도 잘 모르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업적 의미를 찾아내는 ‘마음 공부’가 어설픈 경영학 단어 외우는 일보다 100만 배 중요하다는 뜻이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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