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 닫히지 말라고 고정해두는 ‘그거’ 있잖아…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
[그거사전 - 13] 문 안 닫히게 고정해놓는 ‘그거’
더 큰 문제는 도어스토퍼라는 이름 자체가 너무 많은 사물을 지칭한다는 점이다. 여닫이문이 닫히지 않도록 문과 바닥 사이 틈에 괴는 물건은 도어스토퍼다. 문을 열 때 문손잡이가 벽에 부딪히기 전에 걸리도록 바닥에서 돌출된 반구 모양의 철물 역시 도어스토퍼다. 공용 화장실 문 상단에 달린 고무마개 막대기 같은 물건도 물론 도어스토퍼. 사람들이 화장실을 쓸 때 옷을 걸어두는 용도로 많이 쓰지만, 원래는 문이 벽에 직접 닿아 파손되거나 소음이 발생하는 걸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문고리가 닿는 벽 부분에 부착해 충격을 흡수하는 고무나 실리콘 재질의 범퍼도 도어스토퍼(도어쿠션 혹은월 범폰)라 부른다. 주택 현관문 하단에 달려 있는, 말발굽처럼 생긴 금속을 내리면 문이 저절로 닫히는 걸 방지해주는 그거도, 말해 무엇하랴, 당연히 도어스토퍼다.
안개비, 가랑비, 부슬비, 장대비, 여우비, 소나기, 장맛비, 억수…. 사계절 밤낮으로 내리는 비마다 이름을 붙여주던 우리 민족의 언어적 감성이 도어스토퍼에서는 발휘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일자 스토퍼, 반달 스토퍼, 말발굽 스토퍼 등 궁여지책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도어스토퍼의 복잡한 사정은 애초에 문이란 사물의 본질이 양면적인 탓이다. 닫히니까(閉) 문(門)이다. 열리니까(開) 문이다. 뒤집으면 곰이다(…). 덕분에 닫히는 걸 멈추는 것도 도어스토퍼, 열리는 걸 막는 것도 도어스토퍼로 불리게 됐다. 어쩌겠는가. 닫히는 것도 열리는 것도 문의 일임을 탓하는 수밖에.
도어스토퍼를 문버팀쇠로 번역한 경우도 있다. 엘러리 퀸의 단편 ‘용 조각 문버팀쇠의 비밀’(시공사)에서는 이야기의 주요 소재로 문버팀쇠가 등장한다.
“지금 문버팀쇠라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틀림없어요. 문을 열어 놓을 때 바닥에 놓고 괴는 그런 것 말예요.” (앨러리 퀸의 새로운 모험, 시공사, 1995)
영화배우 이름인가 싶은 문소란(門小欄)을 도어스토퍼의 우리말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문소란은 ‘작은 난간’이란 한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문을 닫았을 때 원하는 위치에 멈추도록 만들어놓은 문틀의 턱을 의미한다. 공사 현장에서는 ‘도아다리(도어다리)’라고 부른다. 일부 문틀 제조업체에서는 문소란을 스토퍼로 명기하기도 한다. 이쯤되니 스토퍼라는 단어의 남용을 막는 조례라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자만, 그 조례의 이름마저 ‘스토퍼스토퍼’가 될 것 같아 두렵다.
이름은 힘이 세다. 한 번 세상에 태어난 이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이름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나의 이름에 다섯 종류의 물건들이 지독하게 엮인 도어스토퍼의 사정이 그렇다. 온갖 사물에 이름 붙이고 분류하는 것을 본성으로 삼은 인간이라지만, 천부적인 이름을 뜯어고치는 것보다는 ‘동명이인’의 귀찮음과 불편함을 감내하는 쪽을 택한다. 사실 이쯤 되면 인류 전체가 게으른 게 아닌가 싶지만.
- 다음 편 예고 : 시력검사표에 있는 C 닮은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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