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치레도 못한 시청률 대가들의 추락, 흥행 보증수표는 왜 부도가 났나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지금도 여전히 시청률이 지표로서 의미가 있을까. 이미 다매체 시대로 들어와 있는 현재 시청률은 실제 콘텐츠의 성패를 가늠하는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화제성 지수니, 시청시간이니 하는 새로운 지표들이 제시되고 있는 게 현재의 달라진 풍경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청률이 지표로서 계속 나오고 있는 건, 그것이 의미를 갖는 플랫폼들이 있어서다. 지상파, 종편, 케이블은 여전히 시청률에 민감하다. 그런데 최근 주말드라마의 시청률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색다른 풍경이 발견된다.
가장 큰 변화는 KBS 주말극의 추락이다. 지난 3월 새로 시작한 <미녀와 순정남>은 8회가 지난 현재 최고 시청률이 17.6%(닐슨 코리아)다. 전체적으로 빠진 지상파 시청률을 감안하고 보면 낮은 수치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을 쓴 김사경 작가가 2018년에 내놨던 <하나뿐인 내편>이 최고 시청률 49.4%를 기록했고, 2021년에 쓴 <신사와 아가씨>가 최고시청률 38.2%를 기록했던 걸 떠올려보면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는 KBS 주말극의 시청률이 실감된다.
실제로 전작이었던 <효심이네 각자도생>은 최고 시청률이 겨우 22.1%에 머물렀다. 이 하락세는 <현재는 아름다워(최고시청률 29.4%)>, <삼남매가 용감하게(28%)>, <진짜가 나타났다(23.9%)>로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사실상 <신사와 아가씨>를 뒤집어 <미녀와 순정남>이라는 제목으로 김사경 작가와 지현우를 캐스팅한 건 이 하락세를 뒤집어보려는 안간힘에 가깝다.
하지만 그 노력이 그다지 효과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여겨지는 건, <미녀와 순정남> 역시 시청률에서나 화제성에서 별반 힘을 발휘하고 있지 못해서다. 추락한 여배우와 드라마 PD의 로맨스를 다루고 있다고 했지만 드라마는 시작부터 출생의 비밀 코드를 꺼내놓았다. 극 중 고대충(문성현)이 김선영(윤유선)의 친아들이 아니고 실제 엄마는 김선영의 절친 장수연(이일화)이었다는 설정이다. 단 2회 만에 꺼낸 출생의 비밀 코드를 보면, 얼마나 KBS 주말극이 시청률에 조급증을 갖고 있는가가 드러난다.
그래서 과연 효과는 있었을까. 사실상 없었다. 출생의 비밀 코드를 내놓은 2회에 17.2%였던 시청률은 3회에 14.9%로 빠졌다. 이유는 뭘까. 이제 너무 많이 써서 감흥도 자극도 없어진 코드를 계속 만지작거린 결과다.
한편 막장드라마의 흥행 보증수표처럼 이야기 됐던 김순옥 월드의 추락도 최근 주말드라마의 새로운 풍경이다. <펜트하우스> 시리즈로 최고 시청률 29.2%를 기록했던 김순옥 작가는 무려 460억 제작비의 돈잔치를 한 SBS <7인의 탈출>이 고작 7.7% 시청률을 낸 것으로 마무리 됐고, 그 시즌2에 해당하는 <7인의 부활>은 현재 2%대까지 날개없는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이유는 뭘까. <7인의 탈출>부터 시청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개연성의 심각한 부족이 그 원인이다. 황당무계한 설정들은 극적 긴장감을 끌어올리지 못했고 대신 헛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7인의 탈출>이 어느 정도 성공을 했어야 그 연장선상에서 <7인의 부활>도 그 흐름을 이어받았을 텐데, 전작이 심각하게 실패함으로써 그 후속은 아예 시청자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전통적으로 콘크리트 시청청이 존재한다는 KBS 주말극의 부진과 자극으로 한때 시청률 보증수표처럼 여겨지던 막장의 추락. 이건 무얼 말해주는 걸까. 그 해답은 최근 승승장구하며 매주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는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이 보여주는 면이 있다. <눈물의 여왕>은 현재 최고 시청률 20%를 넘기며 화제성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작품으로 떠올랐다. 게다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반응이 쏟아진다. 로컬과 글로벌 그리고 시청률 같은 보수적인 지표와 OTT 순위 같은 현재적인 지표 모두를 쓸어담고 있는 것.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눈물의 여왕>의 서사 구조는 우리에게는 KBS 주말극이 늘 주창하고 있는 가족드라마의 형태와 유사하다. 퀸즈그룹 재벌가와 용두리 이장댁 두 가족 사이에서 벌어지는 밀고 당기는 멜로와 훈훈하고 뭉클한 가족 서사가 채워져 있다. 또 여기 등장하는 윤은성(박성훈)이나 모슬희(이미숙)에 의해 퀸즈그룹이 맞게 되는 위기와 이를 뒤집어가는 일종의 복수서사는 저 김순옥 작가가 그려온 세계의 대결구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눈물의 여왕>은 KBS 주말극과도 다르고 김순옥 작가의 막장극과는 아예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클리셰를 가져왔지만 이를 뒤집어 현재적인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KBS 주말극의 그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인 세계와 다르고, 가족을 위기에 빠뜨리는 극적 설정을 가져오긴 했지만 이를 풀어가는 과정은 세태를 꼬집는 블랙코미디와 우화 같은 휴먼드라마를 취함으로써 김순옥 작가의 황당무계하고 자극적이기만한 막장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줬다. 무엇보다 다양한 상황을 통해 그려내는 블랙코미디는 마치 잘 차린 밥상처럼 드라마를 풍성하게 느끼게 만든다.
콘크리트 시청자도 시대가 바뀌면 원하는 감성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KBS 주말극의 연령대가 높은 고정 시청자들이라도 구닥다리 드라마를 보고 싶어하진 않는다. 옛 감성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세련되게 포장한 빈티지를 보고 싶은 것이지, 박제된 고물 같은 옛날 드라마를 보고 싶은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자극이 나쁜 건 아니지만, 충분한 내적 개연성을 가진 완성도에 대한 요구도 높아졌다. 그만큼 많은 콘텐츠를 접하면서 눈높이도 달라진 것이다. 막장과 주말드라마가 시청률 보증수표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고정 시청자라고 해서 물리도록 똑같거나 대충 차린 밥상도 덥석 덥석 먹을 거라는 무례한 예단은 더 이상 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SBS,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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