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건물 측량 알바, 알고 보니 보이스피싱 운반책…50대 중증장애인 경찰 조사

김도연 기자 2024. 4. 2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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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범정부 합동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신고대응센터 모습./뉴시스

건물 측량 알바 제의를 받아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 운반책 업무에 가담한 50대 중증장애인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건물 측량 알바 제의를 받고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 운반책 업무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중증장애인 A(59)씨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관악구에 사는 남성 A씨는 작년 12월 말 한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 경남 김해의 한 제조업 업체로부터 일자리를 제안받았다. 해당 업체 관계자는 A씨에게 “경매에 나갈 서울 소재 건물들을 측량하고 인근 시장 조사 업무를 맡아달라”며 “월 200만원에 출근 수당 5만원씩 챙겨주겠다”고 제안했다.

A씨는 지난 1월 초부터 업체의 지시로 경기 일산, 파주 등을 돌아다니며 건물 외관 사진을 찍고 인근 상권을 조사해 자료를 작성하는 일을 했다. A씨가 고용된 지 열흘이 지나자, 업체는 A씨에게 “권리금이나 계약금 등을 현금으로 옮기는 업무도 맡아달라”며 “계좌이체로 보내면 세금이 많이 매겨져 현금을 직접 운반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체는 A씨에게 “알려준 장소에 가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며 “그 사람에게 돈을 받아 갖다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현금 가방을 나르는 일을 7회 정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업체의 지시만 믿고 일했던 A씨 자신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은 같은 달 19일이었다. 경기 평택시에서 현금 가방을 옮기던 중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경찰에 붙잡힌 뒤에야 A씨는 자신에게 돈을 건네준 사람들이 보이스피싱 범죄의 피해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들은 “대출 알선”이라는 말에 속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그제서야 자신이 보이스피싱 운반책이었음을 인지했다고 한다.

A씨는 지난 2019년 직장암 3기 진단을 받고 중증장애인 판정을 받은 이후, 기초생활수급자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A씨는 당구장과 붕어빵 가게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지원했지만 요루·장루를 달고 생활해야 하는 등의 이유로 모두 떨어지기도 했다. A씨는 “오랜만에 돈을 벌 수 있다는 기쁜 마음에 추운 줄도 모르고 발품을 팔았지만 현실은 범죄에 가담해온 것”이라며 “피해자들에게 저지른 죄를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처럼 억울한 일을 겪는 사람이 더는 없었으면 한다”고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해당 사건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며 “수거책인 줄 몰랐다고 진술하는 피의자들이 종종 있어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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