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에서 난자 만들어 자손까지…남녀 차이는 고정불변일까

한겨레 2024. 4. 2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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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선웅의 인간과 오가노이드
XY에서 Y 제거해서 만든 난자
정자와 수정 ‘정상적 생쥐’ 출산
남성 기준 진행됐던 신약 개발
성별 차이도 조사하며 진화 중
지난해 10월 대전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에서 대덕연구개발특구 50주년 기념 기술사업화 박람회 및 우수성과 전시회가 열렸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부스에서는 오가노이드 관련 전시가 진행됐다. 연합뉴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베스트셀러 책이 있다. 남자와 여자는 같은 인간이면서도 서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른 면이 많다는 점을 잘 상징하는 제목이라 책 이름은 다들 한번씩 들어봤을 거다. 이러한 남녀의 차이는, 차별을 만들기도 하고, 페미니즘이니 ‘남녀(또는 여남) 갈라치기’니 하는 정치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한다. 과거에 남녀 차별이 현저했던 시절, 생물학적으로 남녀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조사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행위로 지탄받았던 적이 있다. 여자와 남자의 차이 연구가, 남자가 생물학적으로 우월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남자가 주도적인 것이 세상의 섭리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주로 남자(실험동물의 경우 수컷)를 대상으로 의약학적 연구가 진행되는 바람에 남성을 기준으로 많은 신약 개발이 이뤄져왔던 점이 오히려 불평등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생물학적 기초 연구부터 약물 개발 및 승인 단계에서 성 차이가 있는지를 세심하게 조사하는 것이 필수적 요건이 되었다. 오히려 성 차이에 주목해서 정확히 이를 밝히는 것이 성 평등에 부합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제약업계가 약물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는 점을 의미하지만, 이러한 비용은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남성 호르몬과 뇌의 크기

오가노이드에도 남녀 차이가 있다. 오가노이드는 사람으로부터 채취한 줄기세포로부터 만들게 되는데, 유래한 개인의 성별에 따라서 줄기세포 역시 XX 또는 XY 염색체를 가지고 있게 된다. 그래서 남성 배아줄기세포에서는 남성 특이적인 유전자 발현이 보이는 등 약간의 성 특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용하는 줄기세포가 남성 유래인지 여성 유래인지에 따라, 성 차이가 반영된 오가노이드를 만들 수 있다.

2013년에 최초로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던 매들린 랭커스터(현 케임브리지대 교수) 연구팀은, 2022년 후속 연구의 하나로 여성과 남성 줄기세포로부터 유래한 뇌 오가노이드의 차이에 주목하였다. 남자의 뇌는 평균적으로 여자보다 약간 큰데, 실제 남성 줄기세포로 만든 뇌 오가노이드의 크기가 여성 오가노이드보다 컸다.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는 타고나는 것이라는 진부한 명제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결과인 것 같지만 약간의 반전이 있다. 남성 호르몬인 안드로겐이 배양액에 없을 때는 남녀 뇌 오가노이드 크기에 차이가 없었지만, 안드로겐이 있는 배양액에서 키운 경우 남자 뇌 오가노이드만 이에 반응해 크기가 더 커진 것이다. 즉 남성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남성형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호르몬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안드로겐은 특히 흥분성 뉴런의 수를 늘리는 점도 발견했는데, 이러한 사실은 흥분성 뉴런의 수 또는 기능이 남녀 뇌 차이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점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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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차이 연구’ 이해 높이는 수단 되길

남자와 여자 생식기관도 오가노이드로 만들 수 있을까? 실제 정소나 난소 등 생식기관을 오가노이드로 만들었다는 보고는 여럿 있다. 하지만 이들 생식소 오가노이드는 다른 장기 오가노이드들과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보통의 오가노이드들은 성체 또는 배아줄기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하면서 제작하는 반면, 생식소 오가노이드들은 실험동물의 태아 생식소를 채취해 그 안에 있는 생식세포와 기타 세포들을 단세포로 분리한 뒤, 다시 뭉쳐서 덩어리를 만들어 키우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렇게만 해도 생식소에서 분리되어 나온 세포들이 다시 장기 안에 있었던 것과 유사하게 생식세포를 주변 세포들이 감싸는 특정한 조직학적 배열 상태로 뭉쳐지게 된다. 세포들이 서로 인식하는 위치 정보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정 배열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를 ‘자기조직화’ 현상이라고 한다. 이렇게 재응집 과정을 거쳐서 만든 생식소 오가노이드 안에서는 제한적이지만 생식세포 성숙 등의 생물학적 과정을 관찰하는 것도 가능하다. 생식소 한개를 체외에서 배양 가능한 미니 장기 수백개로 나눈 셈이어서, 대량의 약물테스트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태아 생식소를 재응집해 3차원 배양하는 것이 가능할 뿐이지 배아줄기세포로부터 출발해 만드는 일반적인 방법의 오가노이드 제작 기술로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생식소를 이루는 원시생식세포와, 생식세포의 분화를 돕고 성호르몬을 내는 주변 세포들이 서로 다른 발생학적 경로로 만들어지고 합쳐지는 복잡한 과정을 겪기 때문이다. 다만 정자·난자 등의 생식세포가 없는 생식소 오가노이드를 최근 들어 제작했다는 보고가 다수 있으며, 생식세포를 배아줄기세포로부터 만들어내는 방법에도 상당한 진전이 있어, 생식세포와 주변 세포가 모두 존재하는 인간 생식소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건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닐 것 같다.

생식계를 조작하는 연구는 가끔 살짝 선을 넘는 것 아닌가 하는 수준의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2023년 일본 규슈대학의 하야시 가쓰히코 교수 연구팀은 수컷 생쥐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난자, 즉 암컷 생식세포를 만들었다고 보고했다. 연구팀은 XY 염색체를 가진 수컷 생쥐의 체세포를 이용하여 역분화 배아줄기세포를 만들고 여기서 인위적으로 Y를 제거하는 조작을 가했다. 이렇게 조작한 수컷 세포로부터 체외에서 난자를 만드는 기술을 활용해 난자를 만든 뒤, 다른 수컷의 정자와 수정시켜 대리모에 이식시켜보니, 정상적인 새끼가 태어났다. 즉 동성 부모로부터 자손이 탄생한 것이다. 이쯤 되면, 남녀 차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전환 가능한 것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남녀 차이를 강조해서가 아니라, 여자와 남자가 서로 이해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줄기세포와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성 차이에 대한 연구도 배척이 아닌 이해를 높이는 수단이 되기를 바란다.

고려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
어릴 때는 건강이 좋지 않아 혼자 집에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대학에 진학하고 발생학에 관심이 생겨 신경발생학 분야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나는 뇌를 만들고 싶다’, ‘첨단기술의 과학’, ‘생물학 명강 3’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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