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트로피 포기하고 레전드 택하나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2024. 4. 2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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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 팀의 리더인 손흥민에 사실상 ‘종신계약’ 요구
우승 커리어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고민도

(시사저널=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손흥민은 한국시간으로 4월3일 영국 런던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24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31라운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출전해 풀타임을 소화했다. 이 경기는 2015년 8월 그가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한 후 치른 400번째 공식 경기였다. 8년7개월의 시간이 걸려 400경기 출전이라는 이정표를 세운 손흥민은 160골 82도움의 기록을 올렸다.

1882년 창단한 토트넘 역사에서 400경기 넘게 뛴 선수는 13명뿐이다. 손흥민은 14번째 주인공이 됐는데, 비유럽 선수 중에는 최초였다. 이미 토트넘 구단 내외의 큰 존경을 받고 있지만 기록상으로도 명실상부한 레전드 반열에 오른 것이다. 기념비적인 이날 경기에서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했고, 런던 라이벌을 상대로 1대1 무승부에 그쳤지만 닷새 후 노팅엄 포레스트를 상대로 도움을 기록하며 토트넘의 3대1 역전승을 이끌었다. 올 시즌 리그 15골 9도움으로 자신의 통산 3번째 10골-10도움 동시 달성 기록에 근접했다.

400경기 출전 대기록을 앞둔 지난 3월부터는 손흥민과 토트넘의 재계약 협상설이 본격화됐다. 토트넘 관련 소식을 다루는 전문매체인 스퍼스웹은 3월26일 "토트넘이 간판스타 손흥민과 재계약 협상을 진행 중이다. 30대에도 여전히 최고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캡틴에게 파격적인 주급 인상과 함께 사실상의 종신계약을 제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손흥민과 토트넘의 기존 계약은 내년 여름에 끝난다. 구단과 선수 양자 합의에 따라 계약을 1년 더 연장하는 옵션이 있지만, 그것과 별도로 장기 계약을 체결하려는 것이다. 현 계약으로도 만 34세까지 손흥민을 활용할 수 있는 토트넘이 4번째 재계약을 맺으려는 이유는 손흥민의 변함없는 기량에 더해 리더십까지 높이 샀기 때문이다.

팀의 간판 해리 케인이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후 구심점이 사라졌다는 우려는 손흥민이 주장을 맡으며 사라졌다. 모범적이고 헌신적인 자세를 보인 손흥민은 토트넘의 젊은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긴 부진으로 우울증에 걸린 동료를 격려하고, 뉴페이스들이 빠르게 제 기량을 발휘하도록 도운 손흥민의 리더십은 EPL에서 큰 화제가 됐다.

토트넘의 손흥민이 4월13일(현지시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뉴캐슬과의 경기에서 교체된 후 포스테코글루 감독과 악수하고 있다. ⓒREUTERS

토트넘, 올 시즌 4위 싸움에서도 밀려

토트넘은 손흥민과의 재계약을 추진하며 구단이 갖고 있는 많은 기준을 스스로 깰 예정이다. '짠돌이'로 불릴 정도로 냉철한 경영인인 다니엘 레비 회장은 팀 최고 주급은 20만 파운드(약 3억4000만원), 30대 이상 선수와는 장기 계약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손흥민은 2021년 재계약을 체결하며 20만 파운드의 케인 다음으로 높은 19만 파운드의 주급을 받았다.

케인이 떠나며 팀 내 최고 주급을 수령 중이지만 EPL 전체로 보면 30위에 불과하다. 토트넘과 경쟁하는 EPL 상위권 팀들은 이미 30만 파운드 이상의 주급을 핵심 선수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맨체스터 시티의 케빈 더브라위너는 손흥민의 2배가 넘는 40만 파운드의 주급을 받고 있다. 최근 3년간 손흥민과 비슷한 기록을 남긴 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는 35만 파운드다. 영국 현지에서는 손흥민이 재계약을 택하면 토트넘 최초로 20만 파운드의 주급 원칙을 깨고 30만 파운드에 근접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 정도로 토트넘은 손흥민을 레전드로서 확실히 대우하려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 재계약에는 무관의 딜레마가 숨어있다. 토트넘은 2008년 리그컵을 든 이후 16년째 팀 역사에 트로피가 없다. 메이저 트로피라는 리그, FA컵, 클럽대항전으로 기준을 좁히면 1991년이 마지막이다. 유스팀부터 토트넘에서 성장한 케인도 이 지독한 무관의 역사에 지쳐 팀을 떠났다. 손흥민도 이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함부르크, 레버쿠젠, 토트넘을 거치는 14년의 프로 커리어 동안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토트넘의 레전드 자리는 확정되지만 우승 커리어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올 시즌 토트넘은 10라운드까지 8승2무를 기록하며 EPL 선두를 달렸다. 셀틱을 이끌고 스코틀랜드 무대를 정복한 호주 출신의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부임해 새바람을 일으켰고, 손흥민이 선봉에 섰다. 그러나 시즌을 거듭하며 동력은 약해졌다. 33라운드를 마친 현재 토트넘의 순위는 5위다. 4월13일 뉴캐슬 원정에서 0대4 완패를 당하며 4위 싸움에서도 밀렸다. 이번 시즌 토트넘은 선제골을 넣고도 8번이나 비기거나 졌다. 리드 상황에서 승점 22점을 놓쳤다. 그중 절반만 지켰어도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 아스널과 우승 경쟁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 우려와는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토트넘이 10억 파운드(약 1조7000억원)를 들여 2019년 개장한 신구장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이 팀의 수익 구조와 경영 실적 개선 효과를 가져다주며 우승을 위한 장기 플랜을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토트넘은 러시아·중동·미국 등 해외 자본으로 무장한 구단주의 아낌없는 지원 없이도 상위권 경쟁을 이어온 유일한 구단이다.

토트넘의 장기 플랜, 손흥민 빼고 다 바꾼다

선수 1명당 1000억원이 넘는 이적료를 지불하고 영입에 성공하면 우승 열망은 채워지지만 자칫 구단 경영은 밑 빠진 독이 되는 위험성이 높다. 실제로 많은 구단이 적자 구조를 벗어나지 못해, 새로운 억만장자 구단주가 인수해 주길 바라는 처지가 됐다.

토트넘의 우승 프로젝트는 올 시즌도 실패에 그쳤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제임스 메디슨, 굴리엘모 비카리오, 마노르 솔로몬, 페드로 포로, 미키 판더펜, 브레넌 존슨 등 지난여름 새로 영입한 선수들이 안착하며 팀 리빌딩에 성공했다. 다음 시즌을 앞두고도 5명 안팎의 기존 선수를 정리하고 추가적인 보강을 할 계획이다. 이미 해리 케인, 위고 요리스, 다빈손 산체스, 에릭 다이어 등을 정리한 데 이어 2차 리빌딩을 통해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원하는 에너지 넘치는 축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 장기 플랜에서 유일하게 예외로 남는 선수는 손흥민이다. 우승에 대한 욕심보다는 팀에 대한 충성도를 보여주며 힘든 시간을 버틴 데 대한 보상이다. 이제 손흥민이 그라운드와 클럽하우스 양쪽의 리더로서 젊은 팀으로 일신하며 왕좌의 게임에 재도전하는 토트넘을 이끌어야 한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트로피를 포기하고 레전드를 택했다는 평가는 보기 좋게 뒤집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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