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 기준 ‘갈팡질팡’… 현장선 규모 늘리고 버틴다 [개식용종식법 100일 上]

김보람 기자 2024. 4. 2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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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면적•매출 놓고… 보상 기준 엇갈려
개사육 농가•식당에선 돈 욕심에 편법도
전문가 “법 정비•단속 병행… 혼란 줄여야”
농식품부 “8월 보상안 예상… 준비 만전”

미완성 특별법에 ‘혼란’

개식용종식법이 국회 문턱을 넘어선 지 100일이 지났지만, 정부가 여전히 보상 기준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아 현장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특별법을 보완할 수 있는 시행령을 시급히 만들어 개식용 산업의 전·폐업을 점검하고 보상 기준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정부, 개식용 금지하며 전업 및 폐업에 대한 지원 약속

개식용종식법은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사육·증식하거나 도살하는 행위, 개나 개를 원료로 조리·가공한 식품을 유통·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식용으로 개를 도살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사육·증식·유통·판매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다만 이 같은 벌칙 조항은 공포 후 3년이 지난 날부터 시행되도록 해 처벌에 유예기간을 뒀다.

법이 지난 2월6일 공포됨에 따라 개농장주, 도축·유통상인, 식당 주인 등은 공포일로부터 3개월 이내(5월7일)에 시설의 명칭, 주소, 규모, 운영기간 등을 해당 지자체에 신고해야 한다. 또 6개월 이내(8월5일)에는 전·폐업에 대한 계획을 담은 ‘개식용종식 이행계획서’도 제출해야 한다.

정부는 이 같은 신고와 이행계획서를 제출한 개식용 업체에 대해 전·폐업을 지원한다. 반면 기한 내에 신고하지 않은 개식용 업체는 전·폐업 지원 대상에서 배제될 뿐 아니라,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거짓으로 자료를 제출하거나, 실태조사와 이를 위한 출입을 거부할 경우에도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특히 법이 공포된 날부터 개농장을 비롯해 개를 도살하거나 개를 원료로 조리·가공·유통·판매하는 시설을 신규, 추가로 설치하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 마리당? 면적당?… 불명확한 기준에 현장은 ‘버티고’·‘확대하고’

법이 공포됐지만 여전히 개식용 관련 업체에 대한 보상 기준이 불명확한 문제가 남아있다. 특별법 11조, 12조엔 각각 ‘폐업 등에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 ‘전업에 필요한 시설 및 운영자금 등의 지원을 해야 한다’는 지원 방안만 있을 뿐, 구체적인 기준이 명시되지 않아 이견이 큰 상황이다.

정부는 개사육 농장, 도축·유통업체, 식당으로 분류해 보상에 나설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개사육 농가의 경우 보상 기준을 마릿수에 둘지, 농장 면적에 따라 보상을 할지를 놓고 정부와 민간단체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현재 육견협회는 영업손실의 보상 명목으로 개 한 마리당 2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는 마리당 보상은 선례가 없을 뿐만 아니라 보상을 더 받기 위해 개체 수를 늘리는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농장 면적’을 기준으로 보상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신탕 가게 역시 ‘매출’로 보상 기준을 정할 지, ‘식당 면적’을 기준으로 할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이와 함께 법 18조엔 이행계획서 등을 제출하지 않는 등의 6개 사례를 과태료 사항으로 규정했지만, 각 사항에 따른 과태료 금액과 적발 방법 등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불법사항을 규정해 놓으면서도 정작 불법을 단속할 방안이 마련되지 않아 법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기준이 제시될 때까지 최대한 규모를 늘리고, 버틴다는 분위기다.

화성의 한 개농장 주인 A씨는 “괜히 이행계획서를 냈다가 보상이 원하는 만큼 이뤄지지 않으면 손해 아니냐”며 “보상안이 원하는대로 나오지 않으면 특별법과 관계없이 앞으로도 계속 개농장을 할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명확해지기 전까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의 한 보신탕 가게 주인 B씨는 “가게 면적으로 보상받을 것이다, 전년도 매출이다 등 각종 소문이 돈다”며 “직원들이 쉬던 빈방까지 모두 테이블로 채워 최대한 손님을 많이 받으려 한다. 일단 매출을 올려놓고 이행계획서를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상과 관련해 적절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으면서 현장에선 재산권만 빼앗기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산에서 개농장을 운영하는 C씨는 “업장을 신고하고 폐업 이행계획서를 내라면서, 어떤 지원을 해줄지는 알려주지 않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재산권, 기본권만 빼앗기는 꼴”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 정부, 시급히 시행령·시행규칙 만들어야

이처럼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면서 전문가들은 시행령, 시행규칙을 만들어 하루 빨리 법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문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법을 공포할 때 시행령, 시행규칙을 통해 세부 규정을 마련한다. 그러나 개식용종식법은 시행령, 시행규칙이 없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급하게 법을 공포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며 “시행령, 시행규칙 등으로 법을 빠르게 정비해 예측이 가능해야 국민들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는 “개식용 문제는 글로벌 스탠더드 측면에서 종식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고, 국민 정서에도 일정 부분 부합하기 때문에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주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혼란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하루빨리 실태조사를 마무리해 단속을 병행하면서 법을 악용하는 사례를 막아야 한다”며 “법을 이행하는 업주가 손해를 본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확한 보상 방법을 안내하고, 재취업 서비스를 연계하는 등의 방안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적절한 지원을 하기 위해 육견협회 등과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오는 8월께에는 시행규칙이 만들어지고 보상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며 “현장에서 혼란을 겪지 않도록 준비와 홍보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김보람 기자 kbr13@kyeonggi.com
김한울 기자 dahan810@kyeonggi.com
금유진 기자 newjeans@kyeonggi.com
오종민 기자 fivebell@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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