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호르무즈해협 봉쇄’ 카드 꺼내들기 쉽지 않은 이유

채인택 국제 저널리스트 2024. 4. 2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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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제5함대 주둔, 미국과 전면전 부담…이란도 경제적 피해 피하기 어려워

(시사저널=채인택 국제 저널리스트)

전 세계 해상 수송 원유의 20%가 지나는 지정학적 '초크 포인트(Choke Point: 조임목, 요충)'인 호르무즈해협의 항행 안전에 전 세계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란이 4월13일 미사일·드론으로 이스라엘을 공습하고 이스라엘의 보복 여부에 전 세계가 촉각을 세우면서다. 이란은 이스라엘이 보복하면 더 큰 보복으로 맞서겠다고 강조해 왔으며, 호르무즈 봉쇄를 그 하나로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 동남부와 아라비아반도 동북부 사이에 위치한 동서 167km, 남북 39~96km의 좁은 수로인 호르무즈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이라크·쿠웨이트·카타르·바레인 등 주요 산유국의 원유가 해외로 운송되는 길목이다.

게다가 호르무즈해협이 관문 역할을 하는 페르시아만은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석유·가스 매장지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2018년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확인된 원유의 3분의 2, 천연가스의 3분의 1이 이곳에 묻혀있다. 사우디아라비아(2662억 배럴, 전 세계 21.9%, 2위), 이란(1556억 배럴, 12.8%, 3위), 이라크(1472억 배럴, 12.1%, 4위), 쿠웨이트(1015억 배럴, 8.4%, 5위), UAE(978억 배럴, 8.1%, 6위) 등은 호르무즈가 생명줄인 나라들이다.

가스는 더욱 큰 문제다. 세계 최대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국인 카타르는 수출 물량의 거의 전부를 호르무즈를 거쳐 내보낼 수밖에 없다. 카타르 수출분을 포함해 LNG의 연간 글로벌 교역량의 약 20%는 호르무즈를 반드시 지나야 한다. 고가의 에너지원인 LNG는 탄소 배출량이 석탄의 절반 수준이어서 태양광 등 신재생 전원의 간헐성·변동성을 보완하는 백업 발전에 주로 이용된다. 이에 따라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글로벌 신재생에너지 전환과 기후변화 대응에 지장을 줄 수 있다.

4월14일 이란에서 발사된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이스라엘 아이언돔 방공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AP 연합

봉쇄 땐 미·이스라엘보다 한·중·일에 피해

우려는 현실이 되는 듯했다. 4월13일 이란 혁명수비대 해군은 해협을 항해하던 포르투갈 선적 MSC 에리즈를 헬기로 특공대원을 보내 나포했다. 선박 소유주가 이스라엘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를 댔다. 이란 혁명수비대 해군 사령관인 알리레자 탕시리가 그에 앞선 9일 "우리는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서도 "적이 우리를 방해한다면 정책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위협한 지 나흘 만에 벌어진 일이다. 해협 봉쇄의 악몽은 전 세계 유가와 주식시장, 그리고 금융시장을 출렁이게 했다. 하지만 바로 그날 이란은 해협 봉쇄 대신 이스라엘을 공습했다.

그렇다면 이란은 호르무즈해협 봉쇄라는 전 세계 경제의 악몽을 현실화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우선 살펴볼 점이 페르시아만의 군사력 균형이다. 미국은 페르시아만 중부의 섬나라 바레인에 해군 제5함대를 배치하고 있다. 함대 사령부가 바레인에 있다. 영국이 1971년 보호령이던 바레인·카타르·UAE 등을 독립시키고 떠나자 미국이 바레인과 협정을 맺고 영국 해군기지를 인수해 사용해 왔다. 이라크전(2003~11년)과 테러와의 전쟁(2001~21년)이 한창이던 2003년엔 미국 해안경비대(USCGC)의 순찰함들도 이곳에 배치됐다.

미 해군 제5함대의 존재는 이란이 체제·정권·국가의 명운을 걸고 미국과 전면전을 치를 각오가 아니라면 호르무즈해협을 전면 봉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근거가 된다. 물론 유대인·이스라엘 관련 해운업체 소속 선박들을 선별적으로 나포·검색하는 등 '못살게 굴기'를 계속할 수는 있다. 글로벌 유가와 주가, 그리고 환율은 그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일단 출렁일 수 있다.

게다가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미국이나 이스라엘에 별다른 압박이 되지 못한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1973년 10월 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 당시 아랍 석유수출국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주도로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과 캐나다·일본·영국·네덜란드를 겨냥해 석유 수출을 중단했다. 이 때문에 국제유가가 치솟으며 전 세계에 걸쳐 석유파동을 일으켰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상당한 경제적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가장 큰 변화는 호르무즈를 거쳐 나오는 석유와 가스의 주요 고객이 미국이나 유럽 국가가 아니라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라는 사실이다. 에너지를 사실상 자급하는 미국이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인해 경제적 타격을 심각하게 받을 가능성이 작아 보이는 이유다.

호르무즈해협 지도 ⓒfreepik

"이란 수십 년간 봉쇄 언급, 실행한 적 없어"

더욱 문제는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할 경우 경제적 피해를 보기는 이란도 매한가지라는 사실이다. 경제난에 시달리는 이란으로선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자료에 따르면 이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물량은 생산지 기준으로 사우디-UAE-이라크-쿠웨이트-카타르-이란 순으로 많다. 원유 행선지는 중국·인도·일본·한국·기타 아시아·유럽 순이다. 게다가 석유는 이란 수출의 약 56%를 차지한다.

미국 싱크탱크인 워싱턴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이란 석유 수출의 91%를 중국이 차지했으며, 7%가 동맹국인 시리아, 2%가 베네수엘라였다. 모두 호르무즈해협을 통해야 운송할 수 있는 지역이다. 이란은 호르무즈를 우회할 수 있도록 해협에서 동쪽으로 300km쯤 떨어진 차바르항에 원유 선적시설을 설치하고 이곳까지 연결되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있다. 이 항구에서 중앙아시아까지 고속전철을 연결하는 구상도 나왔다. 하지만 현재로선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면 당장 이란의 목줄이 조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호르무즈해협이 실질적으로 봉쇄된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1980~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두 나라는 서로 상대국의 유조선 운항과 석유 수출을 방해하는 '탱커 전쟁'을 펼쳤지만 누구도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지는 못했다.

물론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국제정치적인 이유로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여러 차례 위협하긴 했다. 2012년 5월 서방 국가들이 이란의 핵 개발을 막기 위해 이란의 석유 수출을 제한하자 이란은 호르무즈 봉쇄를 위협했다. 2018년 7월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산 원유 수출 제로' 정책을 추진하자 이란의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도 "호르무즈해협의 석유 교역을 어렵게 하는 행동"이라며 봉쇄를 암시했다. 하지만 이란이 전쟁이나 경제 제재 상황에서도 호르무즈해협이나 주변 해역을 지나는 개별 선박을 나포하거나 억류한 적은 있어도 해협의 유조선 통행을 봉쇄한 적은 없다. 가능성과 실효성 그리고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투자은행인 JP모건의 최근 보고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JP모건은 "만일 세계에서 가장 번잡한 원유·가스 운송 통로인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 중동 지역 에너지 교역을 감소시키고 유가를 천정부지로 오르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건 이란이 지난 몇십 년 동안 정치적 필요가 있을 때마다 호르무즈 봉쇄를 입에 담아왔지만 이를 실행한 적은 없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현실과 역사를 모두 살펴본 후 나온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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