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값 1700원'…국제 유가, 전쟁 끝나도 오른다? [노유정의 의식주]

노유정 2024. 4. 2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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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가 심상치 않습니다. 국제유가는 올 들어 15% 이상 상승했고, 최근 중동 전쟁으로 변동성이 커졌습니다. 이란과 이스라엘이 ‘보복’이라는 명분으로 상대국의 본토를 공격할 때마다 급등하고, 확전 우려가 조금이라도 잦아들면 떨어지는 흐름이 반복되지요.

하지만 문제는 중동전쟁 말고도 국제유가를 끌어올릴 요인들이 많다는 겁니다. 세계 주요 원유 소비국인 미국과 중국의 원유 수요가 커질 가능성이 높고,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의 감산 기조 등으로 공급이 살아나기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는 기름이 한 방울도 나지 않지만 원유 의존도가 높습니다. 고유가가 장기화되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전국 휘발유값 5개월만 1700원

최근 국내 휘발유값은 급등하고 있습니다. 19일 기준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전날 기준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휘발유 평균 가격은 ℓ당 1701.69원으로 전날보다 2.59원 올랐습니다.

휘발유 가격이 17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여 만입니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2~3주의 시차를 두고 국내 기름값에 반영되는 만큼 당분간 기름값은 고공행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휘발유값을 끌어올리는 국제유가에 대해 한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국제유가의 기준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유종은 WTI(서부텍사스원유), 브렌트유, 두바이유 총 세 가지입니다. 각각 북미와 유럽, 중동과 아시아 지역 유가의 벤치마크로 인식됩니다.


각 유종의 명칭은 생산지를 뜻합니다. WTI는 미국 서부 텍사스와 오클라호마주 일대에서 생산되지요. 브렌트유는 영국 북해에서 생산됩니다. 두바이유는 중동 아랍에미리트에서 생산됩니다.

WTI는 주로 미국에서 소비되고, 브렌트유는 유럽과 아프리카에 팔립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중동산 원유가 전체 원유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에서 72% 가량입니다. OPEC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 수입 비중이 그 중에서도 33%로 가장 큽니다.

3대 유종은 거래방식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WTI와 브렌트유는 현물 외에도 선물 거래가 되지요. 유가 기사에서 ‘브렌트유 6월물’ ‘5월 인도분 WTI’같은 표현을 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선물은 미래 특정 시점에 정해진 가격으로 거래하기로 하는 계약입니다. WTI 선물은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브렌트유 선물은 런던 ICE선물거래소에 상장돼 있지요.


미국은 1983년 처음으로 WTI 선물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이전인 1970년대 1,2차 오일쇼크를 겪으며 국제유가가 급변할 때의 파급력을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1차 오일쇼크 때는 중동 산유국들이 단합해 감산했고, 2차 오일쇼크 때는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원유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국제유가가 폭등했지요.

국제유가는 각 거래소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서도 10분 정도 지연된 가격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증시와 달리 개장 시간이 휴장 시간보다 훨씬 길지요. WTI만 해도 하루 23시간 거래됩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넉넉잡아 아침 7시쯤 종가를 확인할 수 있지요.

 유가, 당분간 오를 일만 남았다?

선물 거래가 되기 때문에 국제유가를 예측하기는 한층 더 어렵습니다. 향후 국제유가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소위 ‘재료’만 나와도 가격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미 중앙은행(Fed) 인사가 금리 인하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면 국제유가는 오릅니다. 금리를 내리면 미국 경기가 살아날 거고, 원유 수요가 늘어날 거니까요.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쟁도 같습니다. 이란은 OPEC 내 원유 생산량 3위 국가인 데다, 중동산 원유들의 수출길인 호르무즈 해협을 앞마당에 두고 있지요.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석유 생산량의 6분의 1이 지나는데, 이란은 이곳을 봉쇄할 수 있다는 위협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수요공급 측면에서는 유가가 당분간 오를 거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OPEC+은 2022년 11월부터 15개월째 감산을 하고 있지만 그간 국제유가는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가자 전쟁 터졌을 때도 반짝 올랐다가 다시 내려왔지요.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도 있었지만, 미국이 원유를 증산하면서 유가를 눌렀기 때문입니다. 퇴적암에서 추출하는 셰일 원유를 앞세운 미국은 현재 원유 생산 세계 1위 국가입니다. 작년 말 하루 원유 생산량은 1330만배럴로 역대 최대치였죠.

하지만 미국은 올 들어 생산량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지난 9일(현지시간) 내놓은 최신 전망에서 올해 하루 원유 생산량이 1321만배럴 수준으로, 지난해 연말보다 소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게다가 주요 산유국인 멕시코가 최근 원유 수출량을 줄이고 있습니다. 최근 로이터에 따르면 멕시코의 국영 석유기업 페멕스는 미국과 아시아 등 정유사와 맺은 공급 계약을 일부 취소하고 있습니다. 6월 대선을 앞두고 자국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계획입니다.

반면 미국은 휴가철 드라이빙 시즌이 다가오며 원유 수요가 조만간 증가할 전망입니다. 중국도 경기 회복 기대가 나오고 있지요. 중국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5.3%로 깜짝 증가했습니다. 

 물가에 기름부은 유가

유가가 오르면 물가가 오릅니다. 휘발유값, 항공권 가격이 오르고 화물차, 농기계 등 장비 운영 비용이 상승하고요.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이 오를 가능성도 높습니다. 소비와 산업이 위축되고,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지요.


우리나라 3월 소비자물가 동향에서 석유류 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1.2% 올랐습니다. 1년 2개월 만에 마이너스를 벗어났습니다. 정부가 원래 4월로 끝날 유류세 인하 조치를 최근 6월 말까지 2개월 늘려준 배경이지요.

미국은 이미 에너지 가격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핵심 요인 중에 하나입니다.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3.5%로 예상보다 높게 나와 충격을 줬죠. 에너지 중에서도 가솔린, 휘발유 가격이 2월보다 1.7% 올랐습니다. 전달인 2월에는 1월보다 3.8% 뛰었는데, 상승세가 이어지는 겁니다.

유가가 내리지 않으면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기 어렵고, 인플레이션이 끈적한 상태로 지속되면 Fed의 기준금리 인하도 미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획·진행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촬영 박지혜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편집 박지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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