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말로만 민생정책’, 개념부터 정립하라 [신세돈 쓴소리 곧은 소리]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2024. 4. 2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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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때 24차례나 대통령 주재로 민생토론회 했지만 왜 참패했을까
민생 개념을 취약계층·소상공인·중소기업·청소년 지원으로 확 좁혀야

(시사저널=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제22대 대한민국 총선은 '민생'의 싸움이었다. 선거 기간 내내 전국 방방곡곡 선거 현수막에 민생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지 않은 곳이 없었고 민생을 얘기하지 않은 후보도 없었다. 야당은 국민의 뜻을 받들어 민생을 살리겠다는 현수막을 당 회의실에까지 걸었고 여당은 민생 보호와 민생 활력을 핵심 정책공약의 하나로 내걸며 싸웠다. 윤석열 대통령도 2022년 7월8일부터 2024년 3월27일까지 24차에 걸쳐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직접 주재했고 올해 1월부터 3월26일까지 석 달 동안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야당 비판 속에서도 24차에 걸쳐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열어 민생 문제를 직접 챙기는 열의를 보여주었다. 48회가 넘게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민생 관련 정책회의가 열렸음에도 여당은 참패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정부 출범 초기에 여당은 민생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물가가 이미 폭등했고 코로나19로 힘겨운 수백만 자영업 소상공인이 시름하고 있던 기간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국민이 진정한 나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하며 출범한 윤석열 정부라면 임기 중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 중 하나가 민생 문제 해결이었을 것임에도 자유, 민주주의, 반지성주의, 합리주의는 취임사에 들어있었지만 민생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2023년 신년사에도 민생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2024년 신년사에서야 민생 현장에서 국민의 고충을 직접 보고 들어서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송구스럽다고 토로했다. 인수위원회의 110대 과제에서도 민생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초기에 민생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의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자유홀에서 열린 제2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생에 금융·수출·국제수지·반도체·AI까지 끼워넣는 바람에 구체적 목표 사라져

둘째로, 민생 문제를 가볍게 보았던 것 같다. 윤석열 정부의 공식 문서에서 처음으로 민생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2022년 5월30일 발표된 '긴급민생안전 10대 프로젝트'가 최초다. 거기에는 생활물가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할당관세 인하, 수입부가가치세 한시 면제, 단순 가공식료품의 부가가치세 면제, 농가의 원료매입비 부담을 낮추기 위한 매입세액공제 10%포인트 확대 등이 들어있었지만 할당관세 인하 대상이나 부가세 면제 범위가 너무 좁아 생활물가의 실질적 인하 효과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계비 부담을 줄이는 대책으로 승용차에 대한 개별소비세를 (한시적으로) 30% 낮추거나 중산층 주거 안정을 위한 대책으로 주택 보유세를 완화하기 위해 2021년도 공시가격을 적용하는 정책, 그리고 일시적 2주택자에 대한 중과 배제 조치는 중산층의 세 부담을 줄이는 대책은 될지언정 민생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결국 10대 민생안전 프로젝트 중에서 민생 대책다운 대책은 하위 80% 국민에게 긴급생활안정자금을 최대 100만원까지 지급하는 조치와 에너지 바우처 지급 대상을 131만 가구에서 154만 가구로 늘리고 지급액도 12만7000원에서 17만2000원으로 올리는 조치가 가장 핵심적인 내용인데 이 또한 추경으로 책정된 예산이 모두 합쳐 2조2000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추진만 있고 결과는 없어 진심 의심받아

셋째로 민생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 규정이 불명확했다. 앞에서 보았듯이 개별소비세 완화나 혹은 공시가격 반영 비율 조정을 민생정책으로 규정함으로써 민생 문제를 일반 과세부담 완화 문제로 확대하면서 민생의 개념 자체가 매우 모호해진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정부가 내놓는 거의 모든 정책이 민생 대책이라고 할 수 있게 된다. 민생 대책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정책,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정책, 청소년에 대한 지원대책 등으로 국한해야 정책 목표가 명확해진다. 금리정책, 물가안정 정책, 소비촉진 정책까지 모두를 민생정책에 포함시켜 버리면 타깃이 너무 넓어져 민생정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면서 보호·지원해야 할 민생정책 목표가 사라지는 것이다.

민생정책 목표의 불분명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곳이 24차에 걸친 '비상경제민생회의'다. 제1차 회의의 주요 현안은 민생 문제였지만 회의가 진행될수록 민생 문제라고 보기 어려운 정책과제들이 주제로 부상했다. 금융 문제(2차), 수출 문제(7차), 국제수지 문제(10차),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조성(14차), 초거대 AI국 도약(20차) 같은 것은 시급한 민생 문제라기보다는 국가 장기발전과제에 가까운 성격의 어젠다였다. 게다가 초기에는 한 달에 세 번 혹은 네 번씩 너무 자주 회의가 개최되면서 의제, 회의의 깊이, 회의 결과에 대한 후속 조치들이 알차게 진행되기 힘들게 되었다.

이런 점은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도 마찬가지다. 여기도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GTX 확대, 군사보호시설 해제, 생활 디지털 개혁 등 과제를 민생토론회 주제에 포함하면서 시급한 소득 양극화 문제나 소상공인과 취약계층 지원제도의 성과나 개선 방안, 생활물가 대책들의 성과와 개선 방안 같은 실질적인 민생 대책들이 사실상 묻힌 셈이 된 것이다.

끝으로 회의만 할 것이 아니라 회의에서 결집된 내용들이 어떻게 정책으로 추진되었으며, 그 결과가 어떤지를 국민에게 소상히 밝힐 의무가 정부엔 있다. 그토록 중요한 '비상경제민생회의'라면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따로 창을 만들어 각 회의 내용과 자료를 올려놓고 어떤 조치들이 어느 부서에서 시행되었으며 그 결과가 어떠한지를 실시간으로 알렸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민이 주인인 나라가 되는 것이다. 실망스럽게도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그런 창도 없을뿐더러 어떤 회의는 개최 소식조차 검색에서 빠져있다.

이러니 윤석열 정부의 민생정책이 의심을 받는 것이다. 물론 후속 조치에 대한 보고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 조치에 대한 평가는 정부가 할 것이 아니라 제3 기관이 해야 공정성이 담보될 수 있다. 톰 피터스의 말대로 고객만족 평가는 고객이 해야 하듯이 정부 정책의 평가는 정부 부서가 아니라 국민의 몫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민생정책이 성공할 수 없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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