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기념관 연못에 뜬 BTS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동서 냉전이 종식을 향해 치닫던 1980년대 말 한반도에서도 평화를 위한 논의가 봇물을 이뤘다.
노태우정부 출범 이후인 1988년 북한의 고위급 정치·군사 회담 제안과 뒤이은 우리 측의 고위급 당국자 회담 역제안이 대표적이다.
북한은 회담 의제를 '정치'와 '군사' 분야로 한정한 반면 남한은 '남북관계 개선에 관한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자'는 입장이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동서 냉전이 종식을 향해 치닫던 1980년대 말 한반도에서도 평화를 위한 논의가 봇물을 이뤘다. 노태우정부 출범 이후인 1988년 북한의 고위급 정치·군사 회담 제안과 뒤이은 우리 측의 고위급 당국자 회담 역제안이 대표적이다. 북한은 회담 의제를 ‘정치’와 ‘군사’ 분야로 한정한 반면 남한은 ‘남북관계 개선에 관한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자’는 입장이었다. 남북 양측의 이견 조율을 위한 예비회담이 1989년 2월 판문점에서 처음 열렸다. 하지만 북한이 팀스피리트(Team Spirit) 훈련 실시에 강하게 반발하며 협상은 난항을 거듭했다.

1989년 2월 개최된 예비회담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북측 대표는 “조선반도(한반도)의 정세를 극도로 긴장시키고 긴장, 대결을 격화시키며 평화통일의 길을 가로막는 팀스피리트89 합동 군사훈련을 무조건 중지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다. 한·미는 어렵게 물꼬를 튼 남북 고위급 회담을 어떻게든 성사시킬 목적에 1989년도 팀스피리트 훈련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이로써 남북 총리 회담 개최에 관한 합의가 이뤄져 1990∼1992년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총 8차례 열렸다. 총리 회담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우리 정부는 1992년도 팀스프리트 훈련을 취소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노태우정부 뒤를 이은 김영삼(YS)정부가 1994년 ‘남북관계 개선’을 목표로 내걸고 훈련 종결을 선언하면서 훈련명 ‘팀스피리트’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김태훈 논설위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임영웅 1억 거절·홍지윤 일당 3000만원, 그들이 직접 쓴 ‘이름 가격표’
- 30억 빚 → 600억 매출…허경환은 ‘아버지 SUV’ 먼저 사러 갔다
- 호적조차 없던 이방인서 수백억원대 저작권주…윤수일, ‘아파트’ 뒤 44년의 고독
- “배경 보다 헌신 택했다”…조은지·라미란·김윤진, 톱배우들의 이유 있는 남편 선택
- “내가 암에 걸릴 줄 몰랐다”…홍진경·박탐희·윤도현의 ‘암 투병’ 기억
- 47세 한다감도 준비했다…40대 임신, 결과 가르는 건 ‘나이’만이 아니었다
- 100억 쓰던 ‘신상녀’ 300원에 ‘덜덜’…서인영 “명품백 대신 가계부 쓴다”
- “통장 깔까?” 1300억 건물주 장근석의 서늘한 응수…암 투병 후 악플러 ‘참교육’한 사연
- "故 전유성, 지금까지 '잘 놀았다'고"…최일순, 유작 작업 중 그리움 드러내
- “깨끗해지려고 썼는데”…물티슈, 항문 더 망가뜨리는 이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