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정치의 문제는 타이밍 놓치고 인재풀 좁게 쓰는 것”

감명국·이원석 기자 2024. 4. 2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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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에게 듣는다]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정치는 실종되고 방탄만 남아…분열의 정치 극에 달해”

(시사저널=감명국·이원석 기자)

정치가 실종됐다는 말이 이렇게 자주 회자된 적은 없었다. 정치의 계절 4·10 총선이 치러졌지만 여전히 앞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정치의 실종은 사회 통합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치권의 대립과 갈등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양산하고 부채질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시사저널은 우리 사회의 원로들을 만나 사심 없는 그들의 담백한 메시지와 오랜 경륜에서 나오는 묵직한 충고를 담고자 한다.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헌법학자로서 법과 원칙에 충실한 것만이 우리 사회의 정의를 실천하는 길이라는 점을 늘 강조해온 원로 학자이다. 4월17일 서울 강남구 개인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4월17일 강남의 개인 사무실에서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가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대통령 기자회견, 분기에 한 번씩은 해야"

이번 총선 결과를 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심판 여론이 강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윤 대통령에게서 민심이 돌아선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언론 등을 통해 주로 지적되는 게 고집·불통·독선, 이 세 가지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선 직접 윤 대통령을 대해보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관찰하기로는 윤 대통령은 타이밍을 잃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 같습니다. 정치는 타이밍인데, 타이밍을 딱 맞춰서 국민들에게 설명할 건 설명하고, 거둬들일 건 거둬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항상 타이밍이 한 박자 늦어서 실효성이 떨어지는 듯합니다. 예컨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에 대한 대응이나 총선 전에 호주대사(이종섭 전 대사)를 임명했다 불러들인 일도 그랬습니다. 아마 윤 대통령이 정치인 출신이 아니기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언론에서 지적하는 고집·불통·독선에 대해서도 개선하고 타이밍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윤 대통령이 어제(4월1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직접 총선 결과에 대해 '총선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내용이나 형식은 미흡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역시 타이밍의 문제라고 봅니다. 공개적으로 한 발언보다 이후 비공개 석상에서 한 발언이 전해진 게 더 진솔했다고 언론에서 지적하는데, 어차피 알려질 내용이었다면 기왕 공개 발언을 할 때 왜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통령의 소통 부족에 대한 지적도 있어 왔습니다. 특히 기자회견을 않는다든지 대국민 소통에 있어 인색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임기 초에는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 문답)을 하다가 중단됐지 않았습니까. 물론 매일 하는 건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자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들을 상대로 그때그때 이슈가 있을 때 대답하고 입장을 밝히는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합니다. 한 달에 한 번씩 하면 좋겠지만, 그게 부담스럽다면 분기에 한 번씩, 1년에 4번 정도는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과 소통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하면 불통이란 말은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야당, 특히 제1야당인 민주당과 그동안 대화를 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부정적 시각이 존재합니다. 이제라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만나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재 야당 대표는 범죄 피고인으로 신분적으로 특수한 상황입니다. 만일 야당 대표가 범죄 피고인이 아닌데도 대통령이 만나려 하지 않는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두 사람이 만난다면 오히려 검찰이나 사법부에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는 게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 부분에서 저는 지금까지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만나지 않은 데 대해선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특히 대통령은 검찰 출신이기 때문에 더 어렵게 생각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를 했다고 해서 이제는 만난다? 그 역시 검찰이나 법원에 잘못된 시그널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영수회담' 표현 자체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고 국회를 대표하는 건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입니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함께 만나서 국정을 논의하는 자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당도 빨리 비대위나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해 대통령이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책임 있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총선 패배 후 인사 쇄신이 윤 대통령의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특히 새 국무총리나 비서실장에 민주당의 옛 노무현·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거론되기도 합니다.

"아무리 총선에서 패배했다고 해도 야당의 인사들을 발탁한다고 해서 국정 쇄신이 되겠습니까. 총리나 비서실장은 대통령과 같은 정책 방향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윤 대통령과 반대 입장에 있던 사람들을 굳이 불러들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인재의 풀을 넓히면 얼마든지 좋은 인재들이 우리 사회에 많습니다. 윤 대통령이 너무 시야를 좁게 보지 말고 확 풀어놓고 각계각층에서 추천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대통령의 철학을 따르면서도 할 말은 하고, 유능한 인재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윤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대해 검찰 출신 등 측근들이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어왔습니다. 야당에서는 검찰공화국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야당이 지어낸 프레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걸 떠나 윤 대통령이 지금까지 한 인사를 보면 인재의 풀이 매우 좁았던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풀을 넓혀서 숨어있는 인재들을 삼고초려해서라도 발탁하는 게 인적 쇄신이라고 봅니다."

"22대 국회, 이재명·조국 방탄 더 심해질 우려"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민주당이 과반 이상 의석(175석)을 확보했습니다. 지난 국회 때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이 충돌한 부분이 있었는데, 22대 국회 전망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21대 국회는 야당의 폭주와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야당이 다수라는 점을 이용해 대통령의 거부권을 유도하는 방향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2대 국회에선 아마 더 심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야당의 급선무는 이재명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방탄일 것입니다. 아마 조 대표의 대법원 선고나 이 대표의 1심 판단이 나올 때까지 그런 행태가 더 심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전망이 대단히 어둡다고 봅니다."

민주당의 경우 공천 과정에서 계파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법과 정치가 구별되는 것이, 법은 목적이 좋아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만, 정치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정치의 본질이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대표는 다소 지나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공천 과정에서도 그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과거 이 대표가 비주류인 박용진 의원에 대해 '그런 사람도 공천 걱정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엔 (이번 공천에서) 억울하게 탈락하지 않았습니까. 민주당 역사를 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까지만 해도 합리적인 노선을 추구해 왔다고 보지만, 현재 분열의 정치가 극에 달했다고 봅니다."

야권의 두 대표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사법부 역할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사법부는 정치화가 되어버린 측면이 있습니다. 지난 김명수 대법원의 경우 사법부 역사상 정치화가 가장 심했던 체제라고 봅니다. 사법부가 바로 서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법부가 바로 서면, 사법정의가 실현되고 법치가 실현됩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최소한 본인의 임기 중에는 사법부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사법적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는 기틀은 마련해 놓고 후임 대법원장에게 넘겨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법관들도 헌법이 정한 대로, 헌법과 법률의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기개를 보여야 합니다. 그런 법관이 사법부 역사에 길이 남을 겁니다."

총선 이후 정치권에선 대통령의 임기 단축, 4년 중임제 등 개헌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개헌은 대통령이나 국회가 발의해서 공고 기간을 거치고, 국회가 의결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이 됩니다. 지금 상황에서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할 심정도 아닐 것이고, 그렇다고 국회가 발의해도 통과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3분의 2가 동의해야 하는데, 여당 의원 중에 개헌을 찬성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국민투표에 부쳤을 때 과연 국민이 동의해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개헌의 필요성은 학계에서도 계속 제기되지 않습니까.

"물론이지요. 저도 대통령 단임제는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1987년 당시엔 장기집권을 끝내자는 시대적 요청 때문에 현재의 5년 단임제가 만들어졌지만, 시행해 보니 5년이란 시간이 부족함이 있습니다. 헌법 이론적으로도 국민이 대통령을 뽑았다면 적어도 한 번은 내가 뽑은 대통령에 대해 잘했든 못했든 심판의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심판의 기회가 없습니다. 5년만 하면 임기가 끝나기 때문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4년 중임제는 꼭 필요합니다. 대통령선거 방식도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넘지 못했을 때 결선 투표를 하는 제도를 반드시 도입해야 합니다. 공산국가라 할지라도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결선 투표를 하는 게 보편적인 관례입니다. 또 국회의원을 뽑는 지금의 소선거구제 방식 또한 문제입니다. 프랑스도 소선거구제지만, 그곳은 국회의원을 뽑을 때도 결선 투표를 합니다. 다만 지금의 정치 상황에서 개헌은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는 듯합니다."

"정치의 본질은 사회 통합"

교수님은 역대 정권마다 입각 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했고, 청와대의 자문 요청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현 정부나 윤 대통령에게서도 연락을 받았습니까.

"따로 연락받은 건 없습니다. 뭐 우리 사회 원로들이 많이 계시니까요. 과거 전두환·김영삼·노무현 정부에서 입각 제의를 받은 건 사실입니다. 제가 연세대 법대에서 가르칠 때 전두환 전 대통령 아들 재용씨가 제 수업을 들었습니다. 부친에게 얘기했는지 청와대에 초청받아 식사를 하면서 전 대통령이 도움을 구한 적이 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말하자면 저와 경희대 '입사' 동기입니다. 제가 1972년 경희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고, 당시 72학번인 문 전 대통령이 제 제자였습니다. 이후에 문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 있을 때 저를 초청해 (입각) 제안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거절을 했습니다. 학자로서 평생을 살다가 죽겠다는 게 내 철학입니다. 각 분야에서 이름을 쌓으면 정치권으로 들어가는 건 굉장히 잘못된 폐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의 극한 대립으로 우리 사회도 서로 대립하고 적대시하는 풍토가 강해진 듯합니다. 좌우 이념 갈등을 넘어서 세대 간 갈등, 성별 갈등까지 사회 분열 양상이 심화되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도 이런 현상들이 일부 있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처럼 심각하진 않습니다. 그래도 미국은 사법정의가 살아있어서 강력한 차기 대선주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도 현재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양극화가 아무리 심해도 미국은 사회 질서가 유지됩니다. 싱가포르라는 작은 나라가 부강하게 된 것 또한 준법정신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사법부가 그런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좌든 우든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용서하지 않는다, 그래야 사회가 통합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영원히 갈라지게 됩니다. 정치의 본질은 사회 통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치가 사회를 더 분열시키고 있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나 싶습니다. 그러니 정치는 실종되고 정치 방탄만 남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학계 원로로서 우리 사회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합니다.

"'민주시민이 없는 곳에 민주주의는 없다'라는 건 하나의 명언입니다. 우리 국민들도 과연 내가 민주시민인가, 각자가 한번 자기 스스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이 싫고 좋고를 떠나서 내가 민주시민으로서 올바른 도덕관을 갖고 있느냐, 이걸 국민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찰하는 그런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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