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남은 ‘드래곤볼’과 50세 ‘헬로키티’[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김성모 기자 2024. 4. 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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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신(新) 비즈니스 가이드(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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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정말로 드래곤볼로 소원을 하나 이룰 수 있다면…”

일본 나고야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던 23세 청년 토리야마 아키라(鳥山明)는 2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관뒀다.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 포스터를 디자인하는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져서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아 쓰던 그는 한 카페에서 만화상 응모를 발견했다.

상금이 탐이 난 토리야마는 스타워즈를 패러디한 만화를 그렸는데, 응모 기간이 이미 지나간 뒤였다. 마감을 놓친 그는 매달 만화상을 선정하는 주간 만화잡지 ‘소년 점프’에 그려둔 만화를 보냈다. 토리야마의 만화는 상을 받진 못했지만, 소년 점프의 편집자였던 토리시마 카즈히코가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회사에 전담을 자처했다.

1978년 단편 ‘원더아일랜드’로 정식 만화가로 데뷔한 토리야마는 2년 뒤, 장편 만화 ‘닥터 슬럼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단행본이 3500만 부나 팔렸다.

그를 천재 만화가 반열에 올린 작품은 따로 있었다. 1984년 등장한 ‘드래곤볼’이다. 드래곤볼은 전 세계에 신드롬을 일으킨 최초의 일본 만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5년까지 42권이 발매됐는데, 전 세계에서 2억6000만 부나 팔렸다. 한국 등 80여 개국에서 애니메이션으로도 방영됐다.

지난달 초, 닥터 슬럼프, 드래곤볼 등을 만들어낸 유명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69)가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손오공과 젊은 시절을 보냈던 많은 이들이 그의 별세를 안타까워했다.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총리는 소셜미디어에 “용신으로도 살려낼 수 없는 곳으로 그가 갔다”는 포스팅을 올렸다.

일본의 일이라면 날을 세우는 중국 정부도 이날만큼은 애도를 표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그의 작품은 중국에서도 환영받았다”며 “많은 중국 네티즌이 그를 기리고 있다”고 전했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수천 명이 한 광장에 모여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들어 올렸다. 드래곤볼에 나오는 전투 기술 ‘원기옥’의 동작이다.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브라질, 멕시코 등에서도 추모 집회가 이어졌다.

인기 만화 ‘나루토’의 작가 키시모토 마사시는 “만약 정말로 드래곤볼의 소원이 하나 이루어진다면…”이라며 만화에서처럼 그가 부활하기를 바랐다.

성실한 귀차니스트

토리야마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그와 관련된 일화들이 기사로 쏟아졌다. 먼저 그의 가능성을 처음 발견한 토리시마 편집자가 주목받았다.

토리야마의 성공에는 편집자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원래 토리야마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소녀 로봇 ‘아리’를 1화에만 등장시키려 했다. 하지만, 편집자는 슬럼프 박사가 아닌 아리가 주인공이 돼야 한다고 맞붙었다. 당시 대부분의 만화에서 주인공은 남성 캐릭터였다. 둘은 “독자에게 물어보자”고 내기를 했고, 설문조사에서 아리가 순위권에 들면서 아리가 주인공이 됐다. 토리야마는 심통이 났는지, 만화에 편집자를 모델로 한 악역 캐릭터(닥터 마시리토)를 등장시켰다.

드래곤볼도 편집자가 아니었으면 나오지 못할 뻔했다. 토리야마가 닥터 슬럼프 후속작을 구상하고 있을 무렵 편집자는 격투 만화를 제안했다. 그가 성룡의 무술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토리야마는 거절을 거듭했지만, 편집자는 끈질기게 그를 설득했고, 그 덕분에 드래곤볼이 탄생할 수 있었다.

드래곤볼 연재 초기에도 편집자의 조언이 있었다. 토리야마는 판타지물로 드래곤볼 스토리를 이끌어나갔는데, 인기가 식자(‘북두의 권’에 잠시 밀렸다고 함) 토리시마 편집자가 “전투신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후 ‘천하제일무술대회’와 녹색 피부의 외계인 악당 ‘피콜로’를 등장시키면서 드래곤볼은 1위를 다시 빼앗았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토리야마는 처음에 드래곤볼의 주인공을 성장시키는(만화에서 손오공은 12세로 등장해 45세로 끝남) 아이디어를 가져왔는데 편집자는 강하게 반대했다. 토리야마는 자기 뜻을 관철했고, 그 덕분에 스토리가 풍성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토리야마는 과거 인터뷰에서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며 “악당이 필살기로 거리를 날려버리는 장면이 종종 있는데 배경을 그리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천재성에 의존하는 작가’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다. 토리야마는 한 인터뷰에서 본인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라고 소개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토리야마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에 가까웠다. 그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드래곤볼의 연재와 관련해 “10년 동안 그리는 데 있어 정한 규칙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마감은 무조건 지켰다. 광고회사에서 일할 시절 마감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지 실제로 보고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토리야마는 40여년간 단 한 번도 연재 펑크를 내지 않았고, 출판사에서 보낸 어시스트 한 명의 도움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의 힘으로 그림을 그렸다. (닥터슬럼프 연재 당시 밤샘 작업에 시달리다 가족에게 검은색 부분을 잉크로 칠해달라고 부탁하긴 했다)

업무량도 어마어마했다. 그의 캐릭터를 기반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과 영화 22편을 모두 직접 감독하거나 관여했다. ‘게으른 천재’가 아니라, ‘성실한 귀차니스트’였다.

드래곤볼 주인공 손오공과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토에이 애니메이션)

불멸의 손오공

사실, 전설적인 음악가나 영화감독이 아닌, 만화가의 죽음에 전 세계가 가슴 아파하는 것은 굉장히 보기 드문 일이다. 토리야마와 드래곤볼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다.

드래곤볼은 서구권을 공략한 첫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1990년대 미국과 유럽의 많은 사람이 케이블TV에 나오는 드래곤볼을 보기 위해 TV 앞에서 기다렸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8일(현지시간) “미야자키 하야오(宮﨑駿) 같은 애니메이션 거장의 작품들이 미국에 전해졌지만,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들여다봤을 때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서구의 주류미디어에서 인기를 얻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몇 가지 큰 예외가 있다. ‘포켓몬스터’, ‘나루토’ 그리고 ‘드래곤볼’”이라고 전했다.

드래곤볼 단행본은 20개 넘는 언어로 번역돼 약 2억6000만 부가 판매됐다. 역대 가장 많이 팔린 만화 시리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토리야마에 대해 “일본 콘텐츠가 세계에서 폭넓게 인정받고, 일본 관광객 증가로도 이어졌다”며 “일본 문화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했다.

토리야마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후배들은 ‘나루토’, ‘원피스’ 같은 글로벌 만화 히트작을 쏟아냈다. 토리야마는 “일본 만화가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만화는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통념을 깬 것도 드래곤볼이었다.

드래곤볼 IP(지식재산)는 TV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영화, 게임 등 다방면으로 활용됐다. 드래곤볼 관련 매출은 230억 달러(약 30조 원)에 달한다. 드래곤볼 덕분에 토리야마도 많은 돈을 벌었다. 2021년 토리야마의 예상 인세 수입은 114억4000만 엔(약 1030억 원)이었다. 기타 IP 수익을 포함하면 생전 수입은 훨씬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드래곤볼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를 짓는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테마파크는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서남쪽으로 약 40㎞ 떨어진 키디야 지역에 50만㎡ 규모로 건설된다. 테마파크 내부에는 ‘신룡(드래곤볼에서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을 형상화한 70m 높이의 롤러코스터를 비롯해 최소 30개의 놀이기구가 들어설 것으로 알려졌다. 토리야마는 세상을 떠났지만, 지구에 드래곤볼을 남겼다.

그런데, 드래곤볼의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남미 등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을 푹 빠지게 만든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만화를 그릴 때 독자를 즐겁게 하는 것 이외에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그는 2013년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에만 집중했다”고 밝혔다. 교훈적인 메시지 전달에 신경 쓰는 다른 만화가와 다르게, 재미에만 집중했다는 설명이었다. 작품의 해외 진출에 나라마다 다른 문화적 요소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재미는 만국 공통으로 통하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50세 맞이한 헬로 키티

캐릭터 헬로키티 역시 드래곤볼 못지않게 수십 년간 사랑받은 일본의 대표 IP다. 일본 캐릭터 기업 산리오가 1974년 만든 헬로키티는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한국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헬로키티 50주년 특별전-산리오캐릭터즈와의 여행)이 13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렸는데, 입장과 기념품 구매에 각각 1시간 이상 대기 줄이 늘어설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고양이 캐릭터 하나에 엄청난 사람이 몰렸다.

츠지 신타로((辻信太郎·97) 산리오 창업주(현재는 손자 츠지 토모쿠니가 대표를 맡고 있음)가 처음부터 고양이 캐릭터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 동부 야마나시현에서 자란 츠지는 어린 시절 카드 모으기 유행을 떠올리며 1960년 캐릭터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소소한 것을 주고받으면서 친구를 사귀었던 어린 날 행복감을 되살리고 싶었다. “카드 덕분에 외톨이었던 나는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진정한 행복은 우정을 통해 온다는 교훈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물론, 당시에는 우정을 키우는 일이 훗날 조 단위의 매출을 일으킬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츠지는 산리오라는 회사를 차리고 저렴한 제품들을 디자인하는 데 쓸만한 캐릭터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초등학생 아들의 같은 반 친구들에게 동물도감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어떤 동물에 호감을 보이는지 관찰했다.

“처음에는 물고기를 시도했는데 관심 없었다. 고래, 돌고래도 시큰둥했다. 올빼미랑 펭귄에는 흥미는 보였는데 새는 보지도 않았다. 곤충, 나비, 벌, 무당벌레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의 1순위는 강아지였다. 2위는 흰 고양이, 3위는 곰이었고 기린, 사자 같은 야생동물이 뒤를 이었다. 당시 강아지 캐릭터 시장은 이미 ‘스누피’가 꽉 잡고 있었다. 그래서 츠지가 선택한 캐릭터가 흰 고양이다. 첫 사업 시장 조사 대상이 고작 초등학생 아들 반 친구들이라니. 너무 소박한 것 아닐까.

“아이들 한 학급이 충분한 기반인지 누가 알 수 있나. 항상 완벽하게 맞출 순 없다. 미키마우스를 봐라. 그게 뭔가? 그냥 쥐 아닌가.”

츠지는 한 일본 만화가에게 흰 고양이를 그리게 했다. 저작권 등록을 위해 이름도 지었다. 영어 단어 ‘키티(고양이)’를 떠올렸다. 회사의 모토인 ‘사회적 소통’의 의미를 담을 수 있는 ‘헬로’를 그 앞에 붙였다. 그렇게 헬로키티가 탄생했다. 작은 비닐 동전 지갑에 처음으로 헬로키티 그림이 들어갔다.

1974년 산리오가 헬로키티 관련 제품으로 처음 선보인 동전 지갑.

귀여운 키티 옆에 귀여운 키티

헬로키티는 ‘IP 활용 교과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제품에 활용됐다. 키티 팬들은 키티 인형뿐만 아니라, 키티가 그려진 운동화, 가방, 종이 타월부터 카세트 플레이어, 젓가락, 와인 등을 샀다. 홍콩에서 키티 모양의 만두가, 대만에선 키티로 디자인한 비행기가 등장했다. 현재 130여 국, 약 5만 종류의 제품에 키티가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키티 덕분에 산리오는 연 38억 달러(5조3000억 원) 매출의 ‘캐릭터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분홍빛 세계화: 헬로 키티의 태평양 횡단 이야기’ 책을 쓴 미국의 인류학자 크리스틴 야노는 “헬로키티는 수익을 창출하는 기계”라고 말했다.

산리오는 주로 캐릭터 라이선스를 판매해 수익을 올린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자체 소매점에서 판매하는 제품 제조에 집중하기도 했는데 마진이 많이 남지 않자 이후에는 라이선스 사업을 더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새로운 산업, 제품군에 진출했을 때 위험을 덜 감수해야 한다는 장점이 있다.

대신, 품질 관리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예로, 홍콩에 있었던 헬로키티 딤섬 레스토랑(2017년쯤 폐점)은 장식부터 식기, 메뉴 등 세부적인 사항들을 산리오에 먼저 승인받도록 했다. 기본적으로 캐릭터 제작 과정에서는 폭력적인 요소나 어린아이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장면(술을 마시는 모습 등) 등은 배제했다. 캐릭터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산리오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헬로키티가 점차 나이가 들면서 브랜딩 파워가 약해졌다. 사람들이 주변에서 키티를 자주 접하다 보니 귀여움과 신선함을 예전만 못하게 느낀 것이다. 한 마디로, 캐릭터가 과잉 판매돼 식상해졌다는 의미다. 1999년부터 키티 관련 라이선스 매출은 10년 연속 감소하더니, 2010년에는 ‘호빵맨’에게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시치조 나오히로 와세다대 고등연구소 부교수는 “산리오는 처음에는 헬로키티 열풍이 걷잡을 수 없게 번지지 않도록 굉장히 조심했었다. 캐릭터가 한 번에 너무 큰 인기를 얻으면 안 된다는 것이 캐릭터 비즈니스의 암묵적인 규칙”이라고 강조했다. 키티 열풍이 전 세계로 퍼지고, 매출이 급증하자 캐릭터가 지나치게 많이 소비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매출이 꺾인 산리오는 키티를 어떻게 캐릭터 디자인 이상으로 활용할지를 두고 고심하기 시작했다. 드래곤볼처럼 키티 IP를 영화 등 여러 방면으로 쓰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헬로키티에는 입이 없다.

픽사베이

“뭐? 키티가 고양이가 아니라고?”

2014년 미 LA타임스는 키티 팬들의 눈이 번쩍 뜨일만한 기사를 내보냈다. 키티가 사실은 고양이가 아니라 ‘키티 화이트’라는 어린 소녀였다는 내용이었다.

크리스틴 야노는 ‘재패니즈 아메리칸 내셔널 뮤지엄’의 전시 책임자로 있을 때 헬로키티 전시물에 ‘고양이’라는 설명을 달았다고 한다. 그러자 산리오가 ‘헬로키티는 고양이가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고 밝혔다. 산리오는 ‘키티는 항상 두 발로 앉거나 걸었지, 한 번도 네발로 묘사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산리오는 공식사이트에서도 헬로키티가 영국 출신의 소녀 캐릭터라고 밝혔다. 심지어 애완용 고양이도 있단다. 이름은 ‘차미 키티’다. 키티 양 볼 옆에 털 세 가닥에 대해서는 “소녀가 귀밑에 털이 있는 것”이라는 황당한 설명을 달았다.

CNN, NYT 등 해외 주요 언론들이 잇달아 키티의 정체를 전했고, 헬로키티 팬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CNN은 “11월 1일생의 키티는 팬케이크 만들기, 종이접기를 좋아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친구는 너무 많이 가질 수 없다’이다. 오늘 (키티는 친구를) 몇 명 잃었을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배신감을 느낀 팬들은 온라인에 분노를 표출했다. 당시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었는데,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전쟁 관련 소식보다 키티 관련 게시물이 10배 이상 많았다. 헬로키티의 정체를 알고 나서 아이들이 우는 동영상도 올라왔다.

2019년 산리오는 콘텐츠 거물 워너브러더스와 헬로키티를 영화화하는 60억 달러(약 8조30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NYT는 “워너브러더스는 고양이를 영화로 제작하려고 산리오를 5년간 설득했다”고 전했다. 5년 전, 헬로키티의 정체를 밝힌 순간부터 산리오에 구애한 것이다. 산리오의 폭탄선언 덕분에 IP 다각화의 길이 열린 셈이다.

귀여운 건 못 참지

헬로키티의 매력은 두말할 것 없이 ‘귀여움’이다. 달콤하고 포근한 귀여움의 힘에 많은 사람이 쉽게 지갑을 연다. 그러다 보니 학계에서도 귀여움에 관한 연구가 꽤 진행돼왔다.

인간은 무엇을 귀엽다고 생각할까. 1940년대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콘라드 로렌츠는 사람들이 큰 눈과 작은 코와 입, 둥근 뺨, 통통한 몸, 짧은 팔과 다리, 흔들리는 걸음걸이를 가진 아기에게 끌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이미지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작지만 강력한 힘: 귀여움이 세상을 점령한 방법’이라는 기사에서 “만화 캐릭터도 이에 맞춰 변신을 거듭했다”면서 “예로, 미키마우스의 팔, 다리, 코는 1928년 이후 작아졌지만, 머리와 눈은 커졌다”고 강조했다.

2015년 한 연구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고양이 동영상을 보고 더 활기차고 긍정적으로 느끼고 짜증과 불안, 슬픔을 덜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옥스퍼드대학교의 신경과학자 모르텐 크링겔바흐는 아기 얼굴을 보고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했는데, 뇌의 전두엽 부위에 있는 안와전두피질(쾌락과 관련된 영역)이 0.14초 이내에 활성화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귀여움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에도시대(1603~1868년)의 일본 예술가들은 강아지를 그리거나 상아로 강아지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책 ‘거부할 수 없는’의 저자 조슈아 폴 데일은 “르네상스, 로코코 시대 예술에서의 귀여움의 주요 표현은 ‘날개를 단 아기(큐피드)’였다”고 주장했다.

현대에서 고양이는 가장 사랑받는 콘텐츠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22년 유튜브에는 매일 9만 개 이상의 고양이 동영상이 업로드됐다.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월드와이드웹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는 ‘인터넷 사용에서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고양이”라고 답했다. 귀여운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그만큼 컸단 뜻이다.

산리오는 구데타마, 마이멜로디, 쿠로미, 폼폼푸린 등 수많은 캐릭터를 발굴해냈지만, 헬로키티의 영향력은 아직도 절대적이다.

산리오 창립자는 한 인터뷰에서 헬로키티 열풍이 식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미키마우스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도널드덕? 구피? 미키를 대체할 수 있는 건 미키뿐이다. 스누피도 마찬가지다. 찰리브라운도 루시도 대신할 수 없다. 키티는 오직 키티만이 대체할 수 있다.”

산리오 캐릭터들(산리오)

일본 장수 IP, 시대가 변해도 살아남을까

과거 레이 하토야마 산리오 해외사업총괄본부장은 드래곤볼과 헬로키티 같은 캐릭터의 글로벌 성공을 ‘쌀 수출’에 빗댔다. “쌀에 해외 각 국가들이 좋아하는 향신료를 넣으면 맛을 더할 수 있기 때문에 식재료를 판매하기 쉽다”고 말했다.

드래곤볼의 ‘재미’나 헬로키티의 ‘귀여움’ 같은 세계를 관통할 수 있는 무기가 있으면 IP를 다양하게 활용해 매출을 끌어올리기 쉽다는 의미다. (과거 만화 도라에몽이 일본 학교를 배경으로 해 해외 판매가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세계를 강타했던 일본 만화, 캐릭터 산업은 웹툰(웹 코믹)으로 대표되는 21세기 온라인 만화 시장에서 한국에 선두를 빼앗긴 지 꽤 됐다. 2020년 7월에는 ‘만화 종주국’ 일본에서조차 한국 기업이 만화 플랫폼 1위를 차지했다.

앞으로는 인쇄 만화보다 웹툰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만화 업계는 전 세계 웹툰 시장이 2030년 560억 달러(약 77조5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일본의 인쇄 만화 시장은 20억 달러(약 2조7700억 원)에도 못 미치는 상태다.

보수적인 일본 만화 업계가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신작의 첫 발표는 ‘소년 점프’ 같은 주간만화잡지에서 한 뒤, 출판물로 인쇄돼 연재되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일본 만화 장인들이 20세기 작업 방식에 갇혀 있는 것도 있다. 화법이 독창적이고 플롯(구성)이 정교한 인쇄 만화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내에선 웹툰을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평가하는 작가도 일부 있다고 한다. 전통적인 일본 만화 애호가들이 웹툰을 조잡하다고 평가하고, 인쇄 만화의 형식과 읽는 순서 등을 신성시하는 것도 있다.

웹툰은 전통 만화만큼 정교한 서사를 제공하진 못하지만, 색감이 화려하고 직관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편의성도 뛰어나다. 웹툰 관련 시장이 계속 커지는 이유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만화 팬들은 고령화되고 있다. 소년 점프 독자의 평균 연령은 30세가 넘는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스크롤 해 본다. 아이들 취향에 맞는 것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라며 변화를 촉구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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