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검사할 때 상하좌우 뚫려있는 알파벳 C…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

홍성윤 기자(sobnet@mk.co.kr) 2024. 4. 2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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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사전 - 14] 시력검사표에 있는 고리 닮은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란돌트 고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디자인 완성도가 높다. 일본의 한 디자인 스튜디오가 란돌트 고리를 소재로 만든 디자인. [사진 출처=picathingswelove.com]
명사. 1. 란돌트 고리(landolt ring), 란돌트 링, 란돌트 환(環), 란돌트 C【예문】양호 선생님은 시력검사표의 란돌트 고리 중 하나를 짚었다. 나는 아까 외운 순서 대로 읊기 시작했다. 하나씩 밀리긴 했지만.

란돌트 고리다. 시력검사표에 그려져 있는 C자형 도형을 고안한 프랑스 안과 의사 에드먼드 란돌트(1846~1926)의 이름에서 따왔다. 1888년 만들어진 란돌트 고리는 1909년 유럽 국제안과학회에서 국제 표준으로 정해져 지금에 이르렀다.
수염이 굉장한 에드먼트 란돌트. 스위스 태생의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의사로서 활동했다. 헤어 스타일이 미묘하게 란돌트 고리를 닮은 것 같다면 착각이다. [사진 출처=공공저작물]
란돌트 고리는 시력의 여러 요소 중에서도 분리력(떨어져 있는 두 점이나 선을 구별할 수 있는 해상력)을 측정한다. 국제안과협회는 바깥지름이 7.5㎜, 폭이 1.5㎜, 끊어진 간격이 1.5인 란돌트 고리를 5m 거리에서 봤을 때 어느 쪽이 끊어져 있는지 알아맞힐 수 있는 시력을 1.0으로 정했다. 즉, 시력 1.0은 5m 거리에서 1.5㎜의 거리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5m 거리에서 1.5㎜ 폭을 바라보는 시야각(角)은 1분(60분의 1도)인데, 여기에 시력을 곱하면 1.0이 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만약 검사받는 사람이 2배 크기의 란돌트 고리밖에 알아보지 못한다면 이 사람의 시력은 0.5로 본다.
란돌트 고리를 이용한 시력 검사를 도식화한 그림. 5m 거리에서 1.5㎜ 폭을 바라보는 시야각(角)은 1분(1‘=60분의 1°)인데, 여기에 시력을 곱하면 1이 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거리가 가까워지거나 고리의 끊어진 간격이 커지면, 시야각도 함께 커지게 되고 시력은 그에 반비례해 줄게 된다. [사진 출처=한국표준과학연구원]
란돌트 고리 이전에도 하인리히 퀴흘러(1843년), 에두아르 예거(1854), 허먼 스넬렌(1862) 등에 의해 시력 검사표가 몇 차례 만들어진 적이 있었으나, 국제 표준으로 정립된 것은 란돌트 고리가 최초다. 란돌트 고리의 이점은 글씨나 숫자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간편하게 시력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고리가 끊긴 방향만 말하면 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1951년 한천석 박사가 한글·란돌트 고리·숫자 등을 사용한 한천석 시력표를 최초로 개발했다. 1994년 국제표준화기구 시력표 기준이 개정됨에 따라 안과의사 진용한 박사가 국내외 표준화 규정에 부합하는 진용한 시력표를 만들었다. 숫자 및 그림만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

완벽한 것 같은 란돌트 고리 시력 검사에도 맹점(盲点)은 있다. 란돌트 고리의 틈이 6시 방향, 즉 아래방향으로 향하고 있을 때 인식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크기가 거리가 아니라 고리가 뚫려 있는 방향이 변수가 된다니 이상한 소리 같지만 사실이다. 갭 다운(gap-down) 효과라고도 하는 이 현상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눈이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데에 있어 방향에 따라 그 정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이론에 힘이 실린다.

왼쪽부터 스넬렌 시력표, 한천석 시력표, 진용한 시력표(왼쪽 셋째·넷째).
흔히 시력이 좋지 않다고 표현할 때 ‘마이너스 시력’이란 표현을 쓰지만, 이는 틀린 표현이다. 시력이 아예 없는 실명 상태를 시력 0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 시력과 관련해 마이너스 기호를 쓴다면 이는 디옵터(D)일 가능성이 크다. 디옵터란 렌즈의 굴절력을 나타내는 단위로, 원시를 교정하기 위한 볼록렌즈는 플러스(+), 근시를 교정하기 위한 오목렌즈에는 마이너스(-) 기호를 붙인다.

일반적인 시력검사표에는 2.0까지만 나와 있지만 그 이상의 시력을 가진 경우도 많다. 날카로운 눈매나 남들은 발견하지 못하는 사소한 부분을 잡아내는 눈썰미를 두고 ‘매의 눈’이라고 하는데 이는 매가 그만큼 시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매의 시력은 9.0 정도로 사람보다 4~8배 정도 더 멀리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매의 눈’이 아니다. [사진 출처=SBS 도전1000곡]
하지만 사실 가장 시력이 좋은 동물은 타조로, 타조의 시력은 무려 25.0다. 머리뼈 속을 꽉 채울 정도로 큰 눈 덕에 타조는 약 1㎞ 떨어진 거리에서 12㎝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수 있다고 한다. 만약 란돌트 고리로 시력 검사를 한다고 가정하면, 125m 떨어진 곳에서 1.5㎜ 너비로 뚫린 방향을 알아챌 수 있는 수준이다.

일부 기사 등에서는 타조의 가시거리를 20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먼 거리’라는 가시거리의 정의를 생각하면 의미가 불분명한 수치다. 대기의 상황, 물체의 크기, 광원의 밝기에 따라 가시거리는 극명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으로도 맑고 어두운 밤에는 48㎞ 떨어져 있는 촛불을 불빛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렇다고 사람의 가시거리를 48㎞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아무튼 ‘타조 시력=20㎞’ 같은 불확실하고 비과학적인 표현이 여과 없이 퍼지는 상황은 염려스럽다.

무엇보다, 아무리 눈이 좋아도 가시거리에는 한계가 있다. 지구는 평평하지 않고 둥글기 때문이다. 지구가 평면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뒤로 가기’를 누른 뒤, 음양탕 한 잔 마시고 숙면하길 권한다. 잠이 부족해서 그렇다. 타조의 신장(2.7m 내외)을 고려하면, 해수면 높이의 육지에서 관측할 수 있는 수평선·지평선까지의 최대 거리는 5.85㎞에 불과하다.

홍성대 씨의 존재와 함께 잊어버린 피타고라스의 정리(직각삼각형에서 빗변의 제곱은 직각을 끼고 있는 두 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를 꺼내 들 시간이다. 우리는 지구의 반지름 6378㎞와 타조의 눈높이 2.7m를 알고 있기에 수평선까지의 거리를 계산할 수 있다. 타조가 남산타워 등에 올라가지 않고 해수면 높이의 육지에 있다고 가정했을 때 관측할 수 있는 수평선까지의 거리는 5.85㎞다. 1.7m의 신장을 가진 사람은 그보다 짧은 4.64㎞까지 볼 수 있다. 지구 대기의 밀도차에 의한 빛의 곡률을 고려하면 가시거리는 약간 더 길어지지만(사람의 경우 약 5㎞),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필자는 문과이기 때문이다.
  • 다음 편 예고 : 소주병 뚜껑에 달린 황비홍 머리 같은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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