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보다는 정부가 주도하는 '노사정 대화', 존재 이유를 증명하려면 [스프]

전형우 기자 2024. 4. 2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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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쉽] 노동과 불화하는 정치 ②

✏️ 뉴스쉽 네 줄 요약

·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할 수밖에 없는 노사 관계를 정부가 중재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곳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입니다.

· 경사노위의 전신인 노사정위원회는 IMF 외환위기 당시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을 도입하기 위해서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 민주노총은 1999년에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서 탈퇴하기로 한 뒤 25년째 노사정 회의에 불참하고 있습니다.

· 경사노위에서는 최근으로 오면서 노사 당사자가 아닌 정부와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뉴스쉽에서는 '노동과 불화하는 정치'를 주제로 세 번에 걸쳐 다룰 예정이다. 지난 3월 23일 뉴스쉽에서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살펴보았다. 이번엔 행정부 차원에서 노동과 정치가 만나는 접점을 짚어보려 한다. 정부가 주도해 노동계와 경영계를 중재하면서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내고자 만들어진 곳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다.
[ https://premium.sbs.co.kr/article/9ageNAK8oSo ]

정부 위원회는 2022년 기준 636개로 집계됐다. 위원회라는 명칭이 있다고 해서 다 같은 위원회는 아니다. 크게 행정위원회나 자문위원회로 나뉘고, 전자는 집행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자문위원회는 권한은 적고 말 그대로 자문하는 역할을 한다. 금융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처럼 관련 분야 정책을 좌우하는 힘이 센 위원회가 있는가 하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처럼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을 하지만 권한이나 예산 면에서 크지 않은 위원회들도 있다. 경사노위는 대통령 소속의 자문위원회다. 즉, 힘이 세지 않다는 뜻이다. 같은 노동 이슈를 다루지만 행정위원회인 중앙노동위원회에 비해 존재감이 크지 않고, 집행 권한도 없다. 중앙노동위의 경우 법원으로 가기 전 노동에 관한 권리 분쟁에 대해 1차적 판단을 내리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권한이 강하진 하지만 경사노위는 중요하다.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노사 간의 쟁점에 대해 정부가 중재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법정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정하려 할 경우, 사용자와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부딪힌다. 노사 양자 간의 협상으로 좀처럼 타협이 힘들 수 있다.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판을 만들고, 노사 양측에 조금씩 양보를 얻어내 합의에 이르도록 만드는 게 이상적인 '노사정 3자 주의'에 입각한 모델이다.


이상은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경사노위에 양대 노총 중 하나인 민주노총은 1999년에 불참을 선언한 이후 한 번도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았다. 민주노총 내에 경사노위 참여가 정부 노동 정책 추진의 들러리 역할을 할 뿐이라고 보는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번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한국노총마저 경사노위에 불참하면서 사회적 대화가 멈춰선 바 있다. 경찰이 고공 농성 중인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을 곤봉으로 머리를 내려쳐 쓰러뜨린 뒤 체포하는 사건이 계기였다. 한국노총은 5개월 뒤에야 경사노위에 복귀했고, 지난해 11월부터 멈췄던 사회적 대화가 다시 시작됐다.

1. 외환위기로 시작된 경사노위

경사노위(당시 노사정위원회)의 시작은 김대중 정부였다.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기업들이 쓰러지는 상황에서 정부는 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 간 합의가 필요했고 이를 담당할 노사정위원회가 1998년 설립됐다. 노사정위에서는 기업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정리해고 제도를 도입하고 구조조정 방안을 추진했다. 그 대신 노동계에는 교사의 노조 결성권을 보장하고, 노조의 정치 활동을 보장하기로 했다. 즉, 경사노위(노사정위)의 첫 시작은 '노조할 권리'를 보장받는 대신 '고용 유연화'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이에 반발한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가 도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99년부터 대화장 밖으로 나갔다.

어떤 조직이 처음 만들어지면 그때가 제일 힘이 세다. 대통령이 의지를 가지고 만들었고, 밀어주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당시 처음 만들어진 노사정위원회가 그랬고 국가인권위원회도 그런 측면이 있다. 노사정위(현 경사노위)는 역대 정부를 거쳐 갈수록 점차 정치권 지원의 강도가 낮아지고, 노사정 합의의 강도도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민주당 정부에서는 노사 간 사회적 대화를 복원하기 위해 경사노위의 구성과 조직을 바꿔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명칭이 노사정위원회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바뀐 것도 이러한 시도의 결과다.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라는 모델은 서유럽의 코포라티즘(corporatism)에서 따온 것이다. 서유럽의 노사정 대화는 임금이 주된 논의 대상이다. 독일의 사례를 보면 산업별 노조가 사용자단체와 업종별로 임금을 협상한다. 노조가 강하고 많은 근로자가 노조에 가입되어 있어서 노사의 자율적인 협약을 통해 업종 전체의 임금을 정해 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최저임금을 정할 필요가 없었고, 독일에는 2015년에야 최저임금이 도입됐다. 반면, 국내에서는 산별 노조가 아닌 기업별로 임금 협상이 이뤄진다. 기업별 노조가 개별 기업과 임금을 정하는 식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업종별로 혹은 사회적으로 대화를 통해 임금을 정하기가 힘들다. 서유럽의 코포라티즘과 달리 한국의 경사노위에서는 임금 수준이 주요 의제가 되지 않았다. 역대 정부 거치며 경사노위에서 중요한 의제는 근로시간 단축이었다. 최근 사례를 보면 문재인 정부 당시 주 52시간 제도를 도입하면서 현장 안착을 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 확대 문제가 경사노위에서 논의됐고 합의에 이르렀다. 근로시간 외에도 아래 표와 같이 정부별로 경제 위기 극복이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는 노력들이 존재했다.

2. 누가 경사노위를 이끌까

다음으로는 노사정 세 부문 중 각각 어떤 조직이 참여해 경사노위를 주도할지 살펴보겠다. 우선 노동계에서는 한국노총이다. 민주노총은 1999년에 노사정위(경사노위)를 탈퇴한 이후 25년간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협조적이고 대화 지향적인 한국노총이 대화를 주도해 왔다. 실제 한국노총에서는 경사노위에 참여했던 노조 실무자가 실장, 본부장 거치며 계속해서 경사노위에 참여한 사례들이 많다. 이정식 현 고용노동부 장관의 경우도 김대중, 노무현, 박근혜 정부에 걸쳐 한국노총 국장, 본부장, 처장을 역임하며 근로자위원으로 경사노위에 참여하면서 인적 네트워크와 전문성을 쌓아온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 측에서는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이 경사노위를 주도한다. 원래 경총은 전경련의 노무관리를 담당하는 사업 부서였다. 1970년에 전경련(현 한경협)으로부터 독립해 활동해 왔지만 회원사나 직원, 재정 등 모든 면에서 전경련에 의존했다. 이런 경총이 독립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계기가 경사노위 참여였다고 평가된다.

경총은 노사 문제를 전경련보다 잘 다룰 수 있는 역량을 대중에게 입증하면서 위상을 높여왔는데, 노사정위원회의 전신인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가 첫 계기였다. 당시 재벌 기업들은 민주노총을 합법 노조로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전경련은 이런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적극 대변했다. 반면 경총은 복수노조 인정이 거스르기 어려운 흐름이라고 보고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고 봤다. 즉, 경총은 내줄 건 내줘야 한다고 본 것이다. 경총은 산별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대신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걸 얻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재벌 기업들은 이를 수용하지 않으려 했다. 재벌 기업의 요구를 그대로 반영한 전경련이 강경하게 나왔고, 김영삼 정부 당시 정부와 여당에 로비를 통해 1996년 노동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도록 만들었다. 이는 민주노총 총파업 사태로 이어지면서 노사관계가 큰 갈등 국면에 처하게 됐는데, 이를 계기로 경총이 전경련보다 경영계가 선택할 전략을 정확하게 판단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처럼 전경련보다 노사 관계에 있어 전문성을 가지고 상대적으로 협조적인 자세로 대화를 하려고 했던 경총은 경사노위를 무대로 조직의 역량을 입증하고 키워온 것이다.


정부 측면에서는 기재부 등 다른 부처도 경사노위에 일부 관여를 하지만, 이슈 특성상 고용노동부가 주도한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 승진과 인사다. 고용노동부의 경우 경사노위가 중요한 승진 경로의 하나로 인식되는데, 기재부 등 다른 부서에서는 그렇지 못한 측면이 있다. 노동부 관료의 경우 국장급으로 경사노위에 참여하다가 승진을 하고 직급을 높여서 경사노위 회의체에 다시 참여하는 사례가 많다. 경사노위에 파견되거나 차관급인 경사노위 상임위원을 거치고 이후에 차관이나 장관으로 승진을 거듭하면서 지속적으로 경사노위에 참여해 온 경우가 많다. 예컨대 박근혜 정부에서 마지막으로 고용노동부 장관을 했던 이기권의 경우, 경사노위 운영국장과 상임위원 등 파견으로 경사노위에 참여한 뒤, 차관과 장관으로 승진해 경사노위에서 계속 활동한 사례다. 반면 기재부의 경우 경제정책국장(2017년 이후 경제구조개혁국장)이 대부분의 경사노위 회의체에 모두 참석하는데, 국장에서 승진한 뒤 더 이상 노사정 회의체에 참석하는 경우가 드물다.
 

3. 정부가 주도하고 노사는 들러리?

앞서 말한 대로 처음 출범했던 김대중 정부 당시에 노사정위원회는 힘을 가지고 외환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회적 대화를 추진했지만, 역대 정부를 지날수록 경사노위에서 합의와 의결을 하는 비율은 낮아지고 있다.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경사노위 회의체에서 합의를 이끌어내기보다는, 민주노총이 참여할 수 있는 외부 회의를 통해 중요한 사안이 논의될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20년 코로나19 위기가 있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사정 논의 과정에 민주노총이 참여했다. 코로나19를 맞아 민주노총이 원포인트로 사회적 대화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 노사정이 논의하는 테이블이 만들어지는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 김명환 위원장이 이끄는 민주노총 지도부는 노사정 대화에 긍정적인 편이었고, 경사노위에 참여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 안건은 부결되고,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도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되면서, 김명환 지도부는 동력을 잃고 사퇴했다. 이처럼 노동계에 비교적 우호적인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면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25년째 그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전형우 기자 dennoc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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