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에티오피아 커피…보은의 향기

KBS 2024. 4. 2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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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해 기준, 국내 성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405잔에 달했다고 합니다.

전 세계 평균에 두 배를 웃도는 수치인데요.

이처럼 커피 사랑이 각별한 우리나라에서, 원두를 통해 6.25전쟁에 참전한 UN군 용사를 지원하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커피 산지이기도 한 에티오피아를 비롯해 참전국 28개국으로부터 원두를 들여와 커피 사업을 벌이는 방식으로 참전용사와 가족을 돕고 있는 건데요.

커피 원두로 전하는 보은의 현장을 찾아 김옥영 리포터가 춘천에 다녀왔습니다.

함께 보시죠.

[리포트]

1951년 4월 24일.

에티오피아 황실근위대 소속 병사들이 한국을 돕기 위해 먼 길을 떠납니다.

부산에 도착한 이후엔 강원도 일대의 격전지를 사수하며 치열한 전투를 치렀는데요.

73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

춘천에는 이들의 헌신을 기리기 위한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을 따라, 에티오피아의 향기가 가득한 곳을 찾아가 보았는데요.

갈색 원두에서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집니다.

["향이 너무 좋은데요. 이건 어떤 원두인가요?"]

[신동재/카페 대표 : "이 원두는 에티오피아 아바야 게이샤입니다."]

["(원두 향을) 직접 맡으니까 살짝 과일 향이 나는 것 같아요."]

["향이 참 좋죠."]

["그리고 살짝 단 향도 나고요."]

["단 맛도 나고요."]

잘게 분쇄한 원두를 깔때기 위에 올린 거름망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를 추출해 봅니다.

과연, 커피 맛은 어떨까요.

["부드럽네요. 그런데 원래 에티오피아 (커피가) 산미가 높은 편이잖아요. 전혀 쓰거나 탄 향이 나지 않네요."]

에티오피아 원두는 손님들의 입맛도 사로잡았다고 하는데요.

[박경희/강원도 춘천시 : "아라비카 좋은 콩이라서 향이 진하고 맛이 좀 뭐라 그럴까 시원한 그런 맛."]

에티오피아 원두는 뛰어난 맛과 향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이 원두엔 6.25 전쟁 당시 6,037명의 군인을 파병한 에티오피와의 특별한 인연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한국에 이 에티오피아 원두를 들여온 신광철 씨입니다.

신 대표는 1996년 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을 후원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신광철/원두커피 기업 대표 : "그 당시 그걸 보면서 깜짝 놀랐죠. 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 참전용사들이 공산 체제에서 너무 고생했다는 (것을 알고) 시작했던 것이죠."]

이후, 2000년도에 에티오피아 정부의 요청으로 커피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요.

[신광철/원두커피 기업 대표 : "에티오피아 정부에서 우리가 에티오피아 커피 생두를 독점적으로 팔 수 있게 해줄 테니까 그 수익금으로 한번 (한국에 있는 에티오피아) 교민들을 돕고 또 더 많이 남으면 참전용사 돕는 데 쓸 수 있지 않겠냐 해서..."]

그가 운영 중인 원두 공장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건물에 걸린 현판이 눈에 띕니다.

[신광철/원두커피 기업 대표 : "(저거는 뭐예요?) 에티오피아 한국전쟁 참전용사 후원하는 후원회, 그리고 저건 유엔 참전국에 있는 22개 나라를 지원하는 후원회, 두 개를 다 운영하고 있습니다."]

후원사업의 매개체가 되고 있는 생두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생두는 커피나무의 열매를 가리킵니다.

["이게 그린빈이에요."]

["이건 초록색이네요, 색깔이. 왜 초록색이에요?"]

["원래 그린빈은 그래서 그린빈(초록콩)이라고 해요."]

["커피 열매를 따서 말려서 까면 이런 색깔이 나는 거죠. (생두를) 볶으면 다크 초콜릿 색 (원두가) 나오는 거죠."]

이곳에선 에티오피아를 비롯해 6.25 전쟁 참전국 28개국에서 원두 35종을 들여오고 있는데요. 수익금의 대부분은 참전용사 후원사업에 쓰이고 있습니다.

[신광철/원두커피 기업 대표 : "1년에 1억 5천에서 2억 원씩은 매년 후원했는데 수익금을 가지고는 거의 다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신 대표는 지금까지 120번 이상 에티오피아를 다녀왔습니다.

생계비 지원은 물론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한 참전용사의 집 86채를 개조하기도 했는데요.

현지에 기념관을 짓거나 후손을 위한 학교 건립에도 동참했습니다.

[신광철/원두커피 기업 대표 : "(대한민국이) 잘 사니까 자기들의 젊은 날의 희생과 이런 것을 다 갚은 것 아니겠느냐라는 소리에 우리 일행들 다 모두 앉아 울었어요."]

작은 원두에서 시작된 후원은 조금씩 뜻깊은 결실을 만들어가고 있는데요. 신광철 대표는 유엔군 참전용사가 보여준 연대의 정신이 우정의 미래로 이어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생두를 볶는 로스팅 과정을 거치면 원두가 되는데요.

["(여기는 어딘가요?) 로스팅실이에요. 여기는 커피를 볶는 곳이에요."]

생두를 볶는 시간과 온도에 따라 맛과 향이 좌우되는 만큼 중요한 작업이라고 합니다.

["고소하죠? (네, 뻥튀기 먹는 맛이에요, 진짜로.)"]

신 대표가 로스팅을 담당하는 직원을 소개합니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의 손자예요."]

나티 씨는 이곳에서 일하며 고향에 카페를 창업하는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나티/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 : "많은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카페를 여는 것이 목표입니다."]

공장은 에티오피아 장학생들이 자립의 발판을 마련하는 장소가 되고 있는데요.

3년 전 한국에 온 베티 씨도 그중 한 명입니다.

[베티/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 : "할아버지가 참전용사이신데요. 회장님이 후손들을 돕는 일을 하셨어요. 그로 인해 만났고요. 대학교 들어와서 장학금 받고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베티 씨는 에티오피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배워나갈 계획입니다.

[베티/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 : "에티오피아 돌아가서 지속가능한 농업 그쪽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신광철 대표는 에티오피아 현지에도 14명의 직원들을 채용했는데요.

모두가 참전용사 후손입니다.

생두 수입을 담당하는 27살 나힐 씨에게 한국은 익숙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한국어 왜 이렇게 잘하세요?) 아니에요. (한국에 온 적 있어요?) 아니요. 아직이요."]

신 대표의 사업을 도우며 대를 이어 한국과 또 다른 인연을 맺어가고 있는 건데요.

[나힐/에티오피아 현지 직원 : "지금 일한 지 2년 되어가고 있는데요. (참전용사 가정에) 한국어도 가르치고 일도 도와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기서 계속 일을 하실 거예요?) 네, 그럼요."]

[나힐/에티오피아 현지 직원 : "(꿈이 뭐예요?) 에티오피아에서 보시면 가난한 사람들 꽤 많이 있어요. 그래서 부자 되어서 집 없는 사람들 (도와주는) 그런 일 하고 싶어요."]

커피를 통해 에티오피아 사람들과 꿈을 키워가는 신광철 대표.

그가 종종 와본다는 에티오피아 참전기념관입니다.

실향민 2세대이기도 한 신 대표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과 같은 바람이 있다고 전합니다.

[신광철/원두커피 기업 대표 : "제가 에티오피아를 방문했을 때 참전용사들이 하신 말씀들이 통일된 한국을 보고 싶다는 것처럼 통일이 돼서 (저 또한) 아버님 고향을 한번 가보면 좋겠다는 그런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이국 땅에서 헌신했던 참전용사들의 바람대로 통일이라는 결실을 맺기까지.

한 알의 생두, 한 잔의 커피 안에 한국과 에티오피아의 인연이 오롯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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