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중국] 만리장성 동쪽 끝은 북-중 국경으로, 백두산은 창바이산으로…그 다음은?
-언제부턴가 북-중 접경지역까지 만리장성이라고 주장하는 중국
-백두산, 창바이산으로 유네스코에 등록…파오차이, 한푸에 이어 또?
햇볕이 조금씩 따가워지던 완연한 봄날에 허베이성(河北省) 친황다오(秦皇島)를 다녀왔다. 이곳은 만리장성의 동쪽 끝 산하이관(山海關)이 있는 곳이다. 기자가 장성에 관한 글을 쓴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다시 주제로 삼은 이유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에 얽힌 이슈는 잊을 만하면 계속 불거지기 때문이다.
산하이관의 본진에서 약 6km 정도 떨어진 해안가에는 장성이 바다와 만나는 곳, 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라오롱토우(老龍頭)라고 이름 붙여진 곳이 있다. 이곳에서 장성은 발해만(渤海湾, 중국명 보하이만)과 만난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이곳을 장성의 동쪽 끝으로 불러왔다. 라오롱토우에 가면 명나라 때 장성을 완성했다는 비석도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서쪽 간쑤성(甘肅省) 자위관(嘉峪關)까지에 이르는 6천350km, 1만 6천 리(里)에 이르는 역사상 최대의 인공 건축물이 만리장성이라는 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하지만, 중국에선 어느 순간부터 장성의 동쪽 끝은 이곳이 아니라고 한다. 그럼 어디가 동쪽 끝이란 말인가? 바로 랴오닝성(遼寧省)의 북한과 맞닿은 단둥(丹東)시에 위치한 후산(虎山)이라고 한다. 그리고 만리장성의 길이도 6,350km가 아닌 8,850km가 된다고 한다.
문제는 중국이 후산장성(虎山長城)이라고 주장하는 이 산성이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고구려 시대에 지어진 박작성(泊灼城)의 유적지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즉,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어디냐 하는 문제는 중국이 자기네 역사를 재정립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의 역사가 우리 고구려의 역사냐 아니면 중국의 역사냐 하는 문제로 귀결되는 중대한 사안이다.
중국의 포털 사이트나 각종 SNS에 후산장성을 검색해봤다. 중국 전문가들과 누리꾼들이 이곳을 만리장성의 끝자락이라고 주장하는 각종 동영상과 사진들이 넘쳐나고 있다.
여기에 중국 문화재 당국 역시 후산장성을 비롯해 만리장성 곳곳을 ‘국가급 만리장성 주요지점’으로 선정해 특별 보호를 하고 있다.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후산장성을 동쪽 끝으로 못 박겠다는 의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현재 이곳이 중국의 영토니까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건 우리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너무나 큰 여백이 생기고 말 것이다.
이는 간도에서 태어난 윤동주 시인(尹東柱, 1917.12.30.~1945.2.16.)을 현재 그 지역이 중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그를 조선족이라고 소개하는 것과 어찌 다를 수 있는가.
우리 학계와 정부, 그리고 국민의 끊임없는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얼마 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된 백두산(白頭山)도 마찬가지이다. 등재 요청을 한 당사자가 중국이기 때문에 백두산의 중국식 이름인 창바이산(長白山)으로 등재됐다고 한다.
백두산은 중국과 북한의 경계에 있고, 실제 면적도 중국 쪽이 3/4 정도(천지는 북한 영토가 55%)로 더 넓다고 한다. 중국이 자기네 땅에 속한 지역을 중국식 지명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한 걸 뭐라고 할 순 없지만, 우리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백두산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되기 전 중국 CCTV의 글로벌 채널인 CGTN에서는 백두산 구석구석을 영어로 소개하는 방송을 계속 내보내고 있었다. 다분히 전 세계에 백두산이 아닌 창바이산으로 알리려는 의도가 아닐 수 없다. 백두산은 이제 국제사회나 학계에서 창바이산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될 것이 확실하다.
명칭 즉, 이름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익숙한 표현에 더 호감을 갖고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어는 본토의 14억 인구와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화교들로 전 세계적으로 사용자가 많은 언어로 꼽힌다. 또 중국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높아지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어보다는 중국어를 들을 기회가 많다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백두산이 창바이산으로, 한복이 한푸로, 김치가 파오차이로 자주 불리다 보면 동양의 역사를 깊이 있게 알지 못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더 자주 듣는 이름에 더 익숙해지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언급된 나라 간에 얽힌 과거 역사 문제를 단숨에 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서로 열린 자세로 계속 논의해 가면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
정치나 경제뿐 아니라 문화적 교류도 계속 이어가야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안타깝게 발을 동동 구르기보다 한국과 중국, 또 여기에 북한까지 한 테이블에 앉아서 역사 문제의 현명한 답을 찾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윤석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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