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이 강타한 한국 [한국 경제 짓누른 ‘新 3고’④]

2024. 4. 20.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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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한국 경제 짓누른 ‘新 3고’④]

한국 경제가 고물가·고환율·고금리란 ‘신(新) 3고(高)’ 위기에 직면했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청구서’가 들이닥치고 있고, 중동 리스크는 유가 압력을 다시금 높이고 있다. 총선 리스크에 고유가까지 겹치며 한국 경제의 인플레이션 파고는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1400원을 터치한 고환율 시대는 물가의 복병으로 작용할 터다.

미국에서는 기준금리 인하 대신에 더 높은 수준에서 장기간 유지되는(higher for longer) 상황이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연내 금리 인하가 확실시 되었던 예측은 틀린 것일까. 오늘을 만든 장면들을 짚었다.

4월 16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치명타를 입었다. 4월 16일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00원을 돌파한 건 3월 CPI 쇼크와 이란·이스라엘의 전쟁이 주원인이었다. 고금리에 고물가, 고환율까지 겹치며 ‘신(新) 3고(高)’ 위기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상승 요인은 복합적이다. 이면에는 미국의 공급망 재편에서부터 시작된 미국의 재정지출,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인상이 있었다.

한국 기업이 대미 투자에 최소 555억 달러(약 71조8000억원)를 투입하는 동안 한국의 설비투자는 위축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23년 10월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9.7% 줄며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KDI는 “반도체 경기 반등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재고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관련 설비투자 수요가 제한됐다”며 “여타 기계류도 고금리 기조의 영향으로 부진이 지속됐다”고 진단했다. 동일한 고금리 상황에서 미국 반도체 시장의 설비투자 붐이 일어난 것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다.

반면 대미 투자의 급증은 달러 수요를 증가시켰다. 실제 바이든이 집권 중인 2021년부터 2024년 3월 말까지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은 점점 감소세를 보였다. 2021년 말 4631억 달러에서 2024년 3월 말 4192억 달러로 439억 달러 줄었다. 물론 이를 대미 투자의 영향으로만 볼 순 없다. 미국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보유 중인 다른 나라 화폐의 가치가 떨어진 영향도 크다. 특히나 한국은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가 2023년 7월 2%포인트로 벌어져 지금까지 사상 최대치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최소 555억 달러가 대미 투자에 들어갔다는 점에 주목하면 환율의 상승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한·미 간 희비는 성장률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미국 경제는 2.5% 성장하며 한국(1.4%)을 앞질렀다. 경제규모가 한국보다 약 15배나 큰 미국의 성장률이 한국을 앞지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등 거대한 외부 충격이 가해진 예외적 시기(1998년, 2009년, 2020년)를 빼면 한국의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진 적이 없다. 이를 두고 지난해 일본의 한 경제지(머니1)는 ‘한국은 끝났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을 정도다.

미국이 고금리를 유지하는 시기에도 강력한 고용과 소비를 바탕으로 ‘경제 호황’에 몸살을 앓는다면 한국은 정반대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은 회복하고 있지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소비 둔화, 저출산과 고령화에 불황의 파고가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 고유가로 인한 물가상승은 안 그래도 사과, 대파, 양배추 등 농산물값의 고공상승으로 ‘고물가’에 허덕이는 한국 경제를 휘청이게 할 최대 변수다. 시장에서는 총선 이후 미뤄뒀던 ‘전기·가스요금’ 인상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연내 금리인하를 저울질해야 할 한국은행의 고심도 깊어졌다. 가계부채와 저성장, 부동산 PF 부실 우려가 여전하다는 점은 금리 조정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4월 10차례 연속 동결을 한 뒤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금리인하 시점이 당초 예상보다 지연되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며 “한은도 반드시 미국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소비자물가상승률과 환율 영향 등 국내 요인을 고려해 통화정책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지난해보다는 커졌다. 미국이 피벗 시그널을 준 상황에서는 국내 물가상승률에 대한 고려가 더 크기 때문에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인하)할 수도 뒤에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민감한 시장에 충격을 줬다. 원화가치가 더욱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한 시장은 원화를 내다팔았다. 환율은 또 뛰었다.

그럼에도 한국은행이 선도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별로 없어 보인다. 금리를 올릴 수도 없고 내릴 수도 없는 딜레마에 금리는 계속 동결됐다. 결국 시장의 눈은 다시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여부로 쏠린다.

⑤편에서 계속…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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