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할머니가 커피 만들어주니…이젠 주민들 몰리는 ‘사랑방’ 됐네
치매 어르신이 바리스타로 활약
서툴고 실수 잦아도 손님들 이해
“혼자 지내면 아무말도 안해
계속 머리 쓰니 증상도 개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지만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받을 수 있는 색다른 카페가 있다. 손님들은 주문한 것과 다른 음료가 나와도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음료가 맛있다며 바리스타를 칭찬한다. 이곳은 경도인지장애와 경증 치매 어르신이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기억다방’이다.
지난 17일, 구로구 치매안심센터 분소에 위치한 ‘기억다방’. 앞치마를 차려입은 어르신이 반갑게 맞이하며 주문을 도왔다. 허브차부터 율무차까지 9종에 달하는 음료를 주문할 수 있었다. 취재진은 아이스티를 주문했지만, 약 5분 뒤 어르신은 밝은 표정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왔다.
구로구 기억다방은 치매에 대한 지역 주민의 이해를 높이고, 치매가 있어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2022년 문을 열었다. 현재 기억다방에는 두 명의 어르신이 바리스타로 근무 중이다. 일주일에 이틀 다방 문을 열고 두명이 하루씩 일한다.
국내 치매 환자 수는 매년 꾸준히 늘어나 100만 명에 달하고 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15년 62만5259명이던 65세 이상 치매 환자 수는 2023년 98만4602명으로 급증했다. 노인인구 100명당 치매 환자 수를 뜻하는 치매 유병률은 65세 이상 기준 2015년 9.54%에서 2023년 10.41%로 높아졌다. 치매 환자는 올해 100만 명을 넘어 2030년 135만 명, 2039년 200만 명, 2040년 217만 명, 2050년에는 3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로 치매 환자는 급증하고 있지만 아직 치매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상황이다. 치매를 노망이라고 생각해 진단받기를 꺼리거나, 주위에 알리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이하림 간호사는 “치매를 치료 및 예방이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해 치매 검사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고, 진단을 받을 때 우울감과 절망감을 느끼는 분이 많다”고 전했다. 김 씨 역시 “주위에 치매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친구들이 많아 아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기 검진을 통해 치매를 조기에 발견하면 증상 악화를 막고 상태를 개선할 수 있기에 치매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인천 뇌건강학교는 2022년 65세 이전에 발병하는 초로기 치매 환자들이 운영하는 ‘가치함께 사진관’을 개관해 인천 시민들에게 사진을 무료로 촬영해 주고 있다. 치매 진단 전 사진관을 운영하던 초로기 당사자의 제안으로 시작된 사업으로, 현재는 약 13명이 활동 중이다. 이강호 뇌건강학교 팀장은 “초로기 치매 환자는 노인성 치매 환자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지원 서비스가 부족하다”며 “초로기 환자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회복할 수 있도록 사회 활동을 장려하며 시민들에게 다가가고 있다”고 했다.
경남 사천시 치매안심센터는 지난해 11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가족을 주제로 한 <할머니의 기억상자>라는 동화책을 출판했다. 치매 어르신이 직접 동화책 삽화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해당 도서는 지역 내 학교, 도서관 등 112개 곳에 배부됐고, 어린이 대상 구연동화 행사도 진행됐다. 사천시 치매안심센터 관계자는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치매를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학생들이 캠페인과 봉사활동을 통해 치매 인식 개선에 앞장서는 경우도 있다. 경남 창녕고는 2022년 중앙치매센터가 지정한 치매극복선도학교로 선정됐다. 이에 전교생 및 교직원이 주기적으로 치매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고, 지난해 4월에는 치매 환자, 보호자 및 지역주민 250여 명이 참여한 치매 극복 걷기 행사를 지원했다. 현재 전국 534개의 초·중·고교가 치매극복선도학교로 지정돼 관련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스웨덴·일본과 같은 고령화 국가에는 치매 환자의 사회 활동과 안정적 생활을 보장하는 사례가 많다”며 “한국 사회 역시 치매를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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