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서로에겐 "최강 밴드" 페퍼톤스, 둘이라 가능했던 20년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2024. 4. 20.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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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20주년 앨범 '트웬티 플렌티' 발매한 밴드 페퍼톤스 ②
객원 보컬 썼던 프로듀싱 유닛 거쳐 장수 밴드로
현재 진행형이기에 겸연쩍지만, 뿌듯하기도 한 20주년
"우리 음악 최고"라고 도닥이며 활동
느리게 신뢰를 축적한 팬들에게 늘 감사, 올해는 공연 자주 할 예정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밴드 페퍼톤스. 왼쪽부터 이장원, 신재평. 안테나 제공
"후추처럼 기분 좋은 자극을 주겠다"라는 의미의 팀명처럼 페퍼톤스(PEPPERTONES)는 2004년 '어 프리뷰'(A Preview)라는 앨범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20대 동갑내기였던 신재평과 이장원은 죽이 잘 맞았다. 세상에 없던 음악을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맞았고, 동시에 '우리 음악이 최고'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다독이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세계 최고 밴드" "우주 최강 밴드"라고 생각하며 지낸 패기 넘치는 밴드 페퍼톤스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1년 7개월 만의 새 앨범 '트웬티 플렌티'(Twenty Plenty)는 20주년을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20곡이 수록됐다. 앞부분은 타 아티스트가 리메이크한 10곡이, 뒷부분은 페퍼톤스가 만들고 부른 10곡이 채워져 있다.

앨범 발매를 코앞에 두었던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페퍼톤스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10주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겸연쩍었다고 털어놓은 페퍼톤스는, 그래도 '20'이라는 숫자를 맞이하니 조금은 기분이 남다르다고 말했다.

이장원은 "저희 홈페이지에 'since 2004'(2004년부터 시작됨)라고 적어놨다. 식당 간판 같은 데처럼 웃긴다는 느낌으로 박아 넣었는데 이제는 조금 맛집 같은 기분이 든다. 시간이 만들어 준 그런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운을 뗐다.

신재평은 "저희들은 사실은 꽁냥꽁냥 이 일을 해 오긴 했지만 엄청난 인지도를 갖고 있거나 대단한 히트곡이 있어가지고 세상 사람들이 저희를 다 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저희들만의 정서와 색깔을 갖고 있긴 한데 그걸 좋아해 주는 분들 때문에 계속해서 공연도 할 수 있고 음악도 발표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라고 답했다.

페퍼톤스는 지난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20주년 앨범 '트웬티 플렌티' 발매 기념 라운드 인터뷰를 열었다. 안테나 제공

인디 밴드에서 인기 밴드가 됐는데 그간의 트렌드 변화를 실감하는지, 인기 비결이 무엇인지 묻자, 이장원은 "인디 밴드에서 인기 밴드가 됐다고 하시니까 굉장히 운율이 잘 맞는다"라고 감탄했다. 공대(카이스트) 출신인 두 사람의 과거 패션이나 사진은 최근 '너드'(지능이 뛰어나지만 비주류 활동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 등 다소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을 전형적으로 이르는 말) 열풍이 불면서 재조명되고 있다.

이장원은 "패션은 20년마다 유행이 돌아온다고 생각하는데 저희가 그때 굉장히 유행을 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운이 좋게도 20년 전 사진들이 우리를 놀리는 데 이용이 되고… (과거엔) '아~' 했고, 그때도 되게 창피했는데 지금은 그 창피함이 '너드남'(nerd男) 이런 거로 포장이 잘돼 있어서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는 중"이라고 답했다.

그는 "저희가 무슨 비결이 있었다고는 생각 안 한다. 그 당시에도 저희는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고 '사진이 잘 안 나올 뿐'이라고 생각했다. 창피하다면 어떻게 그렇게 다녔을까"라고 해 웃음을 유발했다. "그냥 저희가 좋아하는 음악 만들면서, 저희 둘이 친구로서 동료로서 놀고 일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지내" 온 것이 차츰 쌓여 20년을 이뤘다.

이장원은 "어떤 인기의 비결이라기보다는 우리 둘의 삶이 이렇게 같이 또 따로 엮여서 20년 동안 올 수 있었던 게 제일 큰 비결이 아닐까. 인기라기보다는 '유지'가 우리는 더 중요한 일이었고 그렇게 해서 20년이라고 자랑하고 있으니 참 좋다. 인기 밴드까지는 잘 모르겠다. 언젠가는 인기 밴드 되겠지?"라고 웃었다.

어떻게 해야 인기 밴드가 될 수 있을까. 곧장 질문하자, 이장원은 "후속 질문을 예상하고 한 답이긴 한데"라고 답해 다시금 취재진 사이에 폭소가 터졌다. 그는 "처음부터 우리 둘 사이에서는 '세계 최고 밴드'였다, 항상. 그러니까 뭐 재평이 말대로 우리가 (처음엔) 널리 알려지진 않았던 거 같고 (지금) 좋아해 주는 분들이 많이 생긴 건 맞지만, 속으론 완전 다르다 우린. 우주 최강 밴드라고 생각한다. 우리 음악이 최고다, 한다"라고 부연했다.

밴드 페퍼톤스 데뷔 20주년을 맞아 발간되는 만화책 '레디, 겟 셋, 고'. 안테나 제공

오히려 요즘은 겸손해지고 현실적으로 됐지만, '우리 음악 최고' 하는 마음가짐이 "우리를 버티게 해 주는 힘"이었다는 게 이장원의 설명이다. 이내 "혼자 했으면 현실 자각을 훨씬 빨리했을 거다. '아, 분하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둘이 있어서 항상 서로 도닥여주고 '아, 이건 우리 잘못이 아냐' 했다"라고 밝혔다. 신재평도 "'세상이 잘 모르는 거야' 했다"라고 거들었다.

그러자 이장원은 "'우린 완벽해' 이렇게 얘기해 온 게 있는 것 같다. 제멋에 겨운 게 없다면, 그러면 버틸 수 없었을 거 같다. 딱히 버틴다는 생각 가질 수 없을 정도로 둘이 있으면 자신감이 넘쳤다. 그 자신감의 결과들이 20주년 사진인 거 같다"라고 능청을 떨었다.

우리 잘못이 아니라 세상이 못 알아봤을 뿐이라고 여겼다는 페퍼톤스에게, 그동안 가장 예상 못 했던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이장원은 "첫 EP 냈을 때 보면 저희는 우리 노래가 대단히 좋아서 딱히 홍보하지 않아도 입소문 때문에 전 세계가 발칵 뒤집힐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우리는 소매품을 사는 게 굉장히 어려워질 것이다, 시장도 식당도 못 가게 될 거 같다고 했는데 그 꿈은 근처에도 가지 않더라. 지금 우리는 어떤 편의점에서 어떤 쿠폰이 좋은지, 마트에선 어떤 쿠폰이 좋은지 이런 토의를 많이 한다. 그래서 이뤄지지 않은 꿈이라고 할 순 있겠다"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 20년을 맞아서 액티브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게 가장 기쁜 일이 아닐까요. 뻔한 대답일 수 있는데 처음 시작할 때 우리가 환갑을 논하고, 우주 대스타를 논하곤 했지만 사실은 10년 뒤도 생각하지 않은 채 하던 얘기들인데 지금 20년을 맞아서 뭐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이 자체가 꿈같고 기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장원)

페퍼톤스 이장원. 페퍼톤스 공식 트위터

신재평은 예상치 못했는데 잘된 일로 이장원이 라디오에서 샤이니(SHINee)의 '누난 너무 예뻐'(Replay)를 부른 것을 꼽았다. 신재평은 "장원이가 그걸 준비했을 때 본인은 전혀 웃길 마음이 없었다. 멋있게 하려고 했는데 너무 떨고 그래가지고… 저는 그걸 생방송을 듣고 있었고 '아, 망했다' 했는데, 사람들이 그거 한 번만 불러주면 안 되냐고 막 그런 류의 것들을 좋아해 주시더라"라고 부연했다.

1981년생인 두 사람이 페퍼톤스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발표한 게 20대 중반이었다면, 이제는 40대 중반이 됐다.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밝고 희망적인 노래를, 지금도 하지만 밴드 음악색에 관해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저희가 처음에 밴드 만들고 나서 결정했던 것 중 하나가 '신나는 음악을 하자!'였는데요. 빠르고 신나고 경쾌한 음악을 만들면서 음악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보니까 그걸 듣는 분들이 거기서 얻어가는 감정도 좋고 신나는 감정들이죠. '재밌게 잘 들었다' 이런 얘기로 저희에게 피드백을 줬고, 어떤 이야기를 쓸까 고민하다 보니 조금은 낙관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쓰게 된 것 같아요. 희망이 있다, 포기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힘내자, 그런 이야기를 쭉 하면서 저희는 장난스럽게 '우울증을 위한 뉴 테라피 밴드'라는 말도 (수식어로) 붙였고, 그게 팀의 정체성이 되었어요." (신재평)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음악가가 들려주는 음악은 달라질 수 있다. 신재평은 "그것(페퍼톤스의 정체성)마저도 다 뒤집어버리기엔… 감히 그걸 못 하겠더라. 왜냐하면 듣는 분들의 기대가 있기 때문"이라며 "저희들이 지켜나가려고 하는 것들은 저희 노래를 듣고서 기분이 좋아지고 막연한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응원가 같은 노래를 계속 만드는 게 좋겠다'는 마음으로 한 길을 걸어왔지만, 이야기하는 방식은 넓어지고 있다. 신재평은 "똑같은 얘기지만 (예전) 방식이 '힘내자, 파이팅!'이었다면 (지금은) 조금 더 복잡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가지 일을 겪고 또 보고 하면서 낙관적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건 아니라는 생각을 저희도 갖게 됐다. 그래서 조금 더 조심스럽게 풀어나가는 거 같다"라고 밝혔다.

페퍼톤스 신재평. 페퍼톤스 공식 트위터

다른 방식의 응원가의 예로는 "아직도 난 이렇게 분하고 또 기뻐"라는 가사가 나오는 '코치'가 있다. 신재평은 "나이를 좀 먹었나 보다. 마냥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얘기를 하는 게 결코 현실적이진 않다는 생각도 갖게 된 것 같다. 7번째 앨범 때도 그렇고 희망을 얘기할 때조차도 뭔가 비틀어서 굴곡 있는 그런 희망을 얘기하게 되는 것 같다"라며 웃었다.

"현실이 녹록지는 않구나 하는 걸 저희도 어렴풋이 알게 됐다"라는 신재평은 '코치'가 유망주였던 탁구 선수가 부진의 시기를 겪다가 탁구 코치로 두 번째 기회를 얻어 시들어있었던 열정을 재발견하는 노래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곡이 강력한 타이틀곡 후보였다고도 덧붙였다. 회사 직원 투표 결과, 페퍼톤스와 비슷한 연배에선 '코치'를 많이 꼽고, 약간 더 어린 경우 '라이더스'를 좋아했다고.

"극명하게 갈려서 재밌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코치'를 좋아하고 밀었던 분들은 마지막 가사가 마음에 남았다고 해요. 모르겠어요. 약간 좀 살다 보면 억울할 때도 있고 좀 화날 때도 있고 분한 감정 같은 것도 있는 거 같은데 다들 웃고는 있지만 마음속에 그런 감정을 품어서 그런지 그 가사에 공감을 많이 하는 거 같아요. 하지만 그 '기쁘다'는 '분할 수 있어서, 그만큼 진심이어서 기쁘다'라는 얘기거든요. 거기에 저희들의 어떤, 뭐랄까 이… 프로모션에 한 줄로 나가는 거에 그 부분이 발췌돼서 나갈 거라고는 사실 저희들은 몰랐는데 묘하게 어떤 공감을 사는 부분이 있는 가사인 거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신재평)

팀을 향한 애정은 인터뷰 중간중간에도 드러났다. 신재평이 "어떻게 보면 엄청 찬란한 20주년을 보냈다고 하기에는…"이라고 하자, 이장원은 "엄청 찬란했지 무슨 소리야"라고 바로 맞받았다. 신재평은 "꾸준히 묵묵하게 해왔다는 미덕도 있던 거 같고 그런 것들이 노래에 녹아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라이더스'에 담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좋아서, 너무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도 마냥 좋기만 하지는 않을 테다. 20주년도 쉽게 온 것이 아니다. 이장원은 "제 아내 배다해는 되게 부러워했다"라며 "그래도 굉장히 좀 기뻐해 주시는 건 있다. 우리가 해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축하를 해 준다"라고 해 폭소를 유발했다.

지난 17일 발매된 20주년 기념 앨범 '트웬티 플렌티'. 안테나 제공

새 앨범 '트웬티 플렌티'를 낸 페퍼톤스는 오는 6월 22~23일 단독 콘서트 '파티 플렌티'(Party Plenty)를 개최한다. 살짝 스포일러를 부탁하자 이장원은 "저희가 나온다"라고 해 취재진을 웃겼다. 신재평은 "여러 회차, 다양한 공간을 통해서 최대한 많은 분들하고 공유했으면 좋겠다"라며 "저희들이 들려주고 싶은 노래들도 너무 많고 한두 번 하고 끝내기에는 성에 안 찰 것 같은 마음이 있어서 올 봄여름가을겨울 쭉 늘어놓고 다양한 기회를 통해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있다"라고 귀띔했다.

과거 인터뷰에서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로 환갑 잔치 때 '뉴 히피 제너레이션'(New Hippie Generation)을 부르겠다고 밝힌 페퍼톤스. 함께해 준 팬들에게 '앞으로도 같이 쭉 나아가자'고 권했다.

이장원은 "저희가 제멋에 겨워가지고,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세상도 좋아할 거라고, 세상에 필요한 음악을 내겠다 이랬다. 진짜 그 당시에는 소년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런 패기를 갖고 나온 애들의 음악을 꾸준히 들어주시고 20년을 쌓았따는 게 너무 감사하다"라며 "같이 쭉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라고 바랐다.

신재평은 "팬분들이 저희한테, 조금 신뢰감을 갖고 있는 거 같다. 그거는 좀 느리게, 축적된 관계에서 비롯된 거 같다. 저희들이 갑자기 막 단기간에 확 팬이 생기거나 그런 게 아니고 오랜 시간 동안 찬찬히, 천천히 성장한 팀이라 그런지 갑자기 한순간에 뭐가 확 바뀌거나 저희들이 어디 가버리거나 음악이 변한다거나 그런 걱정을 별로 안 하셨던 것 같다"라며 "저희들도 그분들에 대한 신뢰가 굉장히 높다. 그런 면에서 깊은 유대감을 갖고 있는 끈끈한 관계라고 생각을 하고, 참 고맙다"라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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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yesonyou@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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