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재기와 장난기 녹인, 페퍼톤스의 상쾌한 '20주년' 회고록
동료 음악가가 다시 부른 리메이크곡 엮은 A면
신재평-이장원 두 사람이 온전히 맡은 B면
타이틀곡 '라이더스', 페스티벌에 어울리는 신나는 곡
무게감 있는 최근작과 달리 가볍고 장난기 있게 만들어
"어떤 다짐을 했나/우린 서투른 프레시맨/가방 깊숙한 곳에/잘 간직하는 게 좋겠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마지막 곡 '프레시맨'(Freshman)(remix)은 "자 떠나자/우리가 꿈꾸던 멋진 모험이야/가보자/어디로 가는지 아직은 몰라도/떠나자/마침내 시작한 나의 첫 멜로디/아무도/모르는 열어보지 않은 미래가 있어"라고 노래한다. 그러고는 "제작 안테나"를 시작으로 "기타 신재평-베이스 이장원, 페퍼톤스 2004년부터"까지 이번 앨범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을 읊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신재평과 이장원으로 이루어진 듀오 밴드 페퍼톤스(PEPPERTONES)가 데뷔 20주년을 맞아 지난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라운드 인터뷰를 열었다. 인터뷰 첫 번째 편에서는 "다음 걸음을 향한 새로운 숨을 불어 넣을" 20주년 기념 앨범 '트웬티 플렌티'(Twenty Plenty)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집중적으로 들어보았다.
우선 '트웬티 플렌티'라는 앨범명은 직관적으로 지었다. 이장원은 "'트웬티'는 생각하시는 그대로 트웬티(20)고, '플렌티'는 풍성하게 준비했다는 이유로… 사실은 라임이 잘 맞아가지고 입에 잘 붙는 느낌이 있었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최근 앨범은 무게감 있게 (제목을) 지어왔는데, 그래도 기념 앨범 느낌이니까 장난기를 넣었다. 좀 입에 붙는 말로, '까꿍!' 같은 분위기로 했다. '트웬티 플렌티'를 한 번 발음해 보시면 '재밌는데?'라고 느끼실 수도 있다"라고 하고는, 취재진이 잠자코 듣고만 있자 "아무도 (발음)하지 않으시네요"라며 멋쩍어해 장내에 웃음이 터졌다.
'트웬티 플렌티'를 언제부터 만들기 시작했냐고 묻자, 이장원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40년 정도 걸렸나? 인생을 담아낸 거니까"라고 너스레를 떨고는 "언제 처음 얘기가 나왔지?" 하며 신재평을 바라봤다. 신재평은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된 건 작년 정도"라며 "이 스무 번째 생일을 맞아서 뭔가 특별한 걸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갖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사실 잘 만들어질지 확신은 없었다. 20주년에 맞춰 20곡을 실은 '대형 앨범'을 내 보자고 회사가 제안했지만, "갑자기 그렇게 뚝딱 앨범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아서 "막막했다"라고 신재평은 말했다. 그는 "저희 회사는 음악을 만들고 기획하는 회사이지 않나. 본인들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저희한테 선물을 주려고 하신 것 같다. 10곡은 저희한테 맡기고 10곡을 준비해 보겠다고 하셔서 약간 반신반의하는 느낌이 있었다. 실제 이게 만들어질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다"라고 밝혔다.
"저희들의 곡을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가 부르는" 것이 하나의 버킷리스트였는데, 이번에 이뤘다. 앨범의 앞면인 에이 사이드(A Side) [서프라이즈!!](SURPRISE!!]를 통해서다. 수민(SUMIN)은 '계절의 끝에서'를, 잔나비는 타이틀곡인 '행운을 빌어요'를, 루시(LUCY)는 '레디, 겟 셋, 고!'(Ready, Get Set, Go!)를, 나상현씨밴드는 '뉴 히피 제너레이션'(New Hippie Generation)을, 이진아와 멜로망스 정동환은 '공원여행'을 불렀다.
웨이브 투 어스(wave to earth)는 '검은 산'을, 유다빈밴드는 '노래는 불빛처럼 달린다'를, 드래곤 포니(Dragon Pony)는 '데네브'를, 스텔라장은 '청춘'을, 권순관은 '땡큐'(Thank You)를 불렀다. 페퍼톤스에게도, 청자에게도 '깜짝선물'이라는 의미에서 '서프라이즈'라는 제목이 붙었다.
A면 작업은 회사가 주도적으로 했다. 회사에서 이런 제안을 했을 때, 이장원은 "우리는 겸연쩍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이런 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재평이 말대로 20주년이기도 하고 언젠가 그런 걸 해 보면 좋겠단 생각도 해서 '네, 해 주세요'라고 회사에 (리메이크를) 허락한 게 저희는 (이번 앨범 관련) 제일 큰 공헌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누가 뭘 부르는지도 회사와 섭외된 아티스트가 정했다. 페퍼톤스가 어떤 언급을 한 건 하나도 없다고. 이장원은 "'안녕, 오랜만이야. 우리 노래 리메이크해 줄래? 우리 노래 중에 뭐 좋아해?' 이건 굉장히 위험할 수 있는 질문이다. 모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회사 결정에) 감사하다고 했다"라고 해 웃음이 번졌다.
섭외는 물론 리메이크 음원에 관해서도 말을 얹지 않았다. 이장원은 "처음에는 스케치 같은 게 오고 그랬는데 '너무 겸연쩍어서' 들을 수가 없더라. 초기 데모를 들려줘서 우리한테 뭘 바라는 거냐, '이 파트가 아쉬운데요' 이래야 하나. 못 하겠고 완성되면 들어보겠다고 얘기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리메이크 앨범이 페퍼톤스의 20주년을 기념하기도 하지만 우리한테 주시는 어떤 선물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선물 뜯는 기분으로 완성 단계에서 들어보겠다고 했다"라고 부연했다.
20주년이라고는 해도 10팀이나 모아서 리메이크곡을 준비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었던 신재평은 라인업을 듣고는 "그야말로… 저희는 되면 참 좋겠다, 되면 참 감동적이고 고맙겠다고 그렇게만 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참 좋았던 건, 연락했더니 많은 팀이 다 흔쾌히 이 프로젝트에 동참해 주시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다. 너무 고맙고 감격스러웠다"라고 전했다.
비 사이드(B SIDE)는 '《리와인드'(《REWIND)다. 세상에 미처 소개되지 못한 채 그대로 머물러 있던 노래를 다시 꺼내 새로이 구성했다. 타이틀곡은 신재평이 작사·작곡하고 신재평-이장원이 공동 편곡한 '라이더스'다. 지금까지 달려온 시간을 바탕으로 더 멀리 나아가겠다는 페퍼톤스의 뜨거운 다짐과 포부를 녹였다. 청자(리스너)에게는 함께 음악 속으로 뛰어들어 힘차게 달려 나가자고 제안하는 곡이다.
B면의 10곡 중 6곡이 쓴 지 10년이 넘었을 만큼 '묵은' 곡 비중이 높지만, '라이더스'는 이번 앨범을 위해 새로 쓴 곡이다. 신재평은 "타이틀곡은 이 모든 기획이 다 정해지고 그러고 나서, 이걸 다 아우르는 뭔가 한 노래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맨 마지막에 쓴 곡이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음악 축제의 야외무대에 어울릴 법한 신나는 곡을 타이틀로 한 만큼, B면은 공연을 염두에 두고 트랙 리스트를 꾸렸는지 궁금했다. 이장원은 "최근 5~10년의 페퍼톤스(곡)는 공연에 굉장히 중점 두고 만들어진 음악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텐데, 그 이전으로 간다면 저희는 공연형 밴드라기보다는 프로듀싱 유닛 느낌이다. 전자음을 굉장히 많이 사용하는 사운드고. 공연은 생각하지 말고 일단 만들고 싶은 사운드를 만들어 보자는 게 우리 콘셉트였고, 20년어치 곡을 모으다 보니 공연 중점이라고 보긴 어려운 것 같다"라고 바라봤다.
다만 '라이더스'를 두고 이장원은 "당연히 공연을 염두에 두고 만든 부분이 있고, 실제로 들어보시면 거기에 약간 떼창이 들어있기도 하다. 관객의 호응과 참여를 유도하는 스타일의 밴드는 아니지만, 겸연쩍어하는 부분이 있지만 음악에 이렇게 하시면 좋겠다는 제안이 아주 약하게나마 들어갔다"라며 곧장 "굉장히 괜찮았던 답변이었던 거 같다"라고 덧붙여 취재진을 웃겼다.
타 아티스트가 부른 A면과 달리 B면은 오롯이 두 사람이 맡아야 해서, 또 '20주년'이라서 조금 더 부담되진 않았는지 묻자 이장원은 "다들 몇 년 했으면 이 정돈 해야지, 하는 부담감은 있었겠지만 저희는 오히려 '이번 기회에'란 생각을 많이 했다"라고 답했다. 그는 "미공개 곡이 포함돼 있어서, 저희한테 약간 아쉬움이 있었던 노래를 선보일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이장원은 "20주년이니까 20년어치의 음악적 관록과 뭐, '전에 없었던 사운드를 들려주겠어!' '마스터피스!' 이런 것보다는 기념하기 위해서, 우리 20년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소소한 일들을 좀 모아서 들려드리는 기회가 있다면 우리 아쉬움을 해결하면서도, 최근까지 해왔던 사운드와 조금 다른 사운드를 들려드릴 기회도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어떤 중압감보단 설렘?"이라고 말했다.
앨범을 만들면서 가장 설레는 순간에 관해 이장원은 기다렸다는 듯 "지금이다. 이렇게 자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라며 웃었다. 같은 질문에 신재평은 "음반 내는 건 항상 부담이 많이 된다. 음반 내면 꼭 아프다. 저는 다 끝나고 나면 병치레를 하는데, 모든 음반 준비할 때 부담 없이 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각각의 앨범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까 엄청나게 고민해서 나온 건데, 20년 맞은 밴드가 음반을 낸다고 하면 어떤 도사가 만든 것처럼, 그런 기대치도 있었을 것 같다"라고 운을 뗐다.
"20년 동안 저희들이 한결같이 가지고 갔던 것은, 약간 뻔하지 않은 음악을 하고자 하는 것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람들이 이 대중가요에서 들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한번 시도해 봤었고 약간 엇나가는 재미가 있지 않았나. 아, 그럼 그걸 계속하면 되겠구나! 음악 하나하나마다 재기가 넘치고 장난기가 있고 이런 것들을 고스란히 살리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최근에 발표한 음악이 조금 오히려 더 무게감이 있고 메시지가 실려 있었다면, 이번 음반은 메시지 자체가 저희들에 대한 얘기인 거 같거든요. 전작 6집이나 7집이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서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내고 청자에게 투영시킬 수 있는 그런 것들을 기획했다면, 이번에는 주제 자체가 페퍼톤스죠. 이제까지 어떤 음악을 해 왔는지 옛날에 어떤 음악 해 왔는지 그런 것들을 모아서 내는 거기 때문에 조금 더 뭐랄까 초심으로 돌아갔어요. 옛날에 저희가 데뷔하고 기를 쓰고선 막 새로운 걸 하려고 했을 때 그때의 기분으로 편곡을 하고 만들어진 곡들이 많아요. 그래서 조금 가볍고 장난기가 있는 그런 앨범이 된 거 같아요." (신재평)
'트웬티 플렌티'에 들어갈 10곡을 추리기 위해 신재평과 이장원은 옛날 하드(디스크)를 엄청 뒤졌다. 서로 메일을 주고받으며 '야, 이것도 있다!' 하기를 반복했다.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했던 것도 들어봤다. 그때가 신재평에게 "좀 설렜던 순간"이었다. 신재평은 "저희들의 약간, 회고록 같은 성격도 조금 있는 것 같다"라며 "이거 만들면서 저희들이 옛날 사진을 펼쳐보는 기분이 들어서 재밌고 설렜던 거 같다"라고 말했다.
이장원은 "진짜 오랜만에 있는 줄도 몰랐던 곡이 담긴 외장하드를 뽑으면서 탁탁거리는 소리가 났을 때! 이게 설레는 게 맞나? 두려움인가? 아무튼 빨리 이것들을 클라우드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신재평은 "시간이 빠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약간 조금 쑥스럽고 겸연쩍기도 하다. 기념한다고 축하를 받고 하는 것이, (20주년을) 대단한 일처럼 말해주는 것이 쑥스럽고 겸연쩍은 기분이 들게 되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이어 "계속 좋아하는 일을 꾸준하게 하다 보니까 그냥 20년이라는 숫자를 맞은 거 같아서 자랑할 만한 일인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뿌듯하다"라고 말했다.
"10주년이 10년 전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이라고 운을 떼 웃음을 안긴 이장원은 "10주년 때는 훨씬 더 겸연쩍은 마음이 있었다. 회사에서 기념 행사할 때 '왜 하냐? 우리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닌데'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라고 돌아봤다. 그는 "그때도 지금도 겸연쩍다"라고 덧붙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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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yesonyou@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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