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과학영재의 자체 발광 식물 연구 일기

김소연 기자 2024. 4.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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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연구실에서나 볼 수 있던 발광식물이 2024년 4월 미국에서 처음으로 상용화됩니다. 밤이 되면 자체적으로 빛을 내며 방을 밝히는 식물을 직접 키울 수 있게 된 겁니다. 미국의 생명공학 기업 '라이트 바이오'는 피튜니아에 발광버섯의 유전자를 주입해 이 식물이 밤에 빛을 내도록 개량했습니다. 이를 '반딧불이 피튜니아'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미국 농무부가 2023년 9월 반딧불이 피튜니아의 판매를 승인했습니다. 라이트 바이오는 2024년 봄부터 구매자들의 집으로 발광 피튜니아가 배송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발광식물이 처음 개발된 건 1986년의 일이니 어언 40여 년 만에 상용화가 시작된 셈입니다.

한편 지구 건너편 한국에는 발광식물에 매료돼 직접 개발에 뛰어든 한 소년이 있습니다. 과학동아 전지적 독자위원회 4기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김민서(닉네임 전독위 4기 꼬리별, 한국과학영재학교 1학년) 군이 그 주인공입니다. 틸란드시아, 국화 등 식물이 초록, 빨강, 파랑색으로 빛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민서 군은 자신의 연구 이야기를 과학동아 네이버 공식 카페에 종종 소개하곤 합니다. 글이 새로 올라올 때마다 댓글창은 신기하다, 자세한 원리가 궁금하다는 반응으로 폭발합니다. 민서 군이 2024년 3월 7일 게시한 글을 독자 여러분께 공유합니다. 발광식물 개발의 역사와 최근 연구 트렌드를 함께 살펴보시죠.

● 아바타 속 발광식물 현실이 되다

영화 '아바타' 에서는 주인공 '제이크 설리'가 정글을 지나면서 여러 식물을 만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손으로 식물을 건드릴 때마다 식물이 형광빛을 내 어두운 정글을 환하게 비추는 아주 멋지고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전 이 장면을 보고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20년부터 발광식물을 직접 만들어보고자 연구를 시작했죠.

발광식물은 자체적으로 빛을 내는 식물을 말합니다. 식물에 특정 효소나 유전자를 주입해 만들죠. 발광식물 연구가 시작되던 1980년대 초기 아이디어는 반딧불이와 심해 생물이 발광을 내는 데 활용하는 화학물질인 루시페린(luciferin)과 발광 효소 루시페레이스(luciferase)를 잎에 주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을 사용하면 밝기가 너무 약하고 루시페레이스를 끊임없이 주입해야 한다는 점에서 경제성이 떨어졌습니다.

결국 과학자들은 단순히 루시페린이나 루시페레이스를 식물에 주입하는 방식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습니다. 바로 식물에 발광물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직접 주입하는 방식입니다. 거의 모든 식물이 갖고있는 물질인 카페익산을 루시페린으로 바꾸는 유전자를 식물에 주입하는 식이죠. 이 방법은 현재까지도 가장 주요한 발광식물 개발 방식 중 하나로 꼽힙니다.

2020년 드디어 영국의 임페리얼칼리지런던 연구팀과 러시아의 생명공학 기업 플란타가 함께 발광 효율과 경제성 등 문제를 해결한 발광식물을 개발하게 됩니다. 이들은 베트남에 서식하는 발광 독버섯인 네오노토파누스 남비(Neonothopanus nambi)의 유전자 4개를 추출해 담뱃잎과 담배 나무 꽃에 이식했습니다. 버섯은 유전자 4개가 각각 만드는 4가지의 효소를 이용해 카페익산을 루시페린으로 전환시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효소가 카페익산을 루시페린으로 전환시키고 세 번째 효소가 루시페린을 산화시켜 빛을 만듭니다. 마지막 효소가 산화된 루시페린을 카페익산 상태로 돌려놓는 식이죠. 이렇게 전체 과정이 계속해 반복되는 순환 시스템이 네오노토파누스 남비의 특징입니다. 이 특징 덕에 이전의 방법보다 10배는 더 밝고 잎, 줄기, 뿌리, 꽃을 포함한 모든 부분에서 발광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발광식물이 탄생했습니다.

루시페린은 루시페레이스에 의해 산소와 결합하며(산화) 빛을 낸다. 반딧불이나 발광성 플랑크톤 등이 루시페린으로 빛을 내는 대표적 생물로 꼽힌다. 동아사이언스 DB

이후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종의 발광식물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제가 현재 진행 중인 발광식물 연구도 네오노토파누스 남비의 유전자를 활용한 발광식물 연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제가 개발한 발광식물 12종은 녹색, 청색, 적색 등의 생체 발광 유전자를 삽입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3단계의 과정만 거치면 모든 식물의 원하는 부위에서 빛이 나도록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어 난이도가 비교적 쉬운 편이라는 장점도 있습니다. 다만 밝기가 약하다는 게 단점이죠. 현재는 밝기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식물에 제 연구를 적용하는 게 목표입니다. 각 식물이 원래 갖고 있던 특성을 활용하면 기존에 본 적 없던 새로운 발광식물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영화 아바타에서 본 '건드리면 빛이 나는 생체 발광 식물' 같은 거죠. 그런 미래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논문과 특허 신청서를 쓰고 실험을 진행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과학동아 4월호, '자체발광' 발광식물 연구 히스토리

[김소연 기자 leci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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