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뇌가 중독에 취약한 이유

김태희 기자 2024. 4.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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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누구나 뼈와 근육이 급격히 발달하는 청소년기에 키가 쑥 큰 경험이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같은 시기 뇌 역시 급격한 발달을 겪는다. 한창 변화하는 청소년의 뇌는 성인의 뇌보다 중독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특징을 보인다. 만약 청소년인 당신이 소셜 미디어 삼매경에 빠져 있다면 벗어나기 위해 성인보다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청소년의 10명 중 4명이 스마트폰에 과하게 의존하고 있다. 2023년 3월 2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가 발표한 '디지털 정보격차, 웹 접근성, 스마트폰 과의존 분야 2022년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40.1%의 청소년들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인 것으로 드러났다.

과의존 위험군은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조절력이 약해져 일상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시작 단계인 '잠재적 위험군'과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해 일상생활에서 심각한 문제를 겪는 '고위험군'을 합친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34.9%의 청소년들이 잠재적 위험군에, 5.2%의 청소년은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총 4개 그룹(유아동, 청소년, 만 20~59세 성인, 만 60세 이상 성인)으로 구분한 연령대별 중에 유일하게 청소년 과의존 위험군 비율만 전년 대비 상승했다.

왜 청소년들의 과의존 비율만 높아졌을까. 실태조사 발표 당시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 디지털포용정책팀의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엔데믹(일상적 유행)으로 접어들며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지속해서 노출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탓에 스마트폰 사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2020년과 2021년 코로나19가 크게 유행했던 당시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은 모든 그룹에서 동반 상승했다. 또한 코로나19 엔데믹과 함께 스마트폰에 지속해서 노출된 것은 비단 청소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월 6일 한국뇌연구원에서 만난 두 명의 뇌과학자는 "팬데믹이 끝나고도 청소년들만 여전히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에 과의존하는 이유가 뇌에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정보격차, 웹 접근성, 스마트폰 과의존 분야 2022년도 실태조사에 따르면 총 4개 그룹 중 청소년만 2022년 스마트폰 과의존 비율이 상승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동아 제공

● 작은 자극에도 도파민 많이 자주 분비

청소년의 뇌는 자극의 발화점이 낮다. 뉴런이 쉽게 발화돼 작은 자극에도 도파민이 분비될 수 있단 뜻이다. 발화란 자극에 대한 신호가 뉴런을 타고 전달되는 현상을 말한다. 자극에 대한 신호는 뉴런 내에서는 '활동 전위'라는 전기적 변화의 형태로 전달된다.

그리고 뉴런과 뉴런 사이에서는 신경전달물질이란 화학물질을 통해 전달된다. 큰 틀에서 보면 뉴런의 수상돌기로 들어온 자극이 뉴런 내에서는 전기 신호로 전달되며 다시 축삭 돌기에서는 화학 신호로 변환돼 다른 뉴런으로 확산하는 식이다.

청소년기는 발화에 필요한 자극의 역치가 낮다. 뉴런에서 발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일정 세기 이상의 자극이 필요한데 청소년의 뇌는 이런 발화에 필요한 자극의 세기가 성인 뇌에 비해서 작다. 김주현 한국뇌연구원 정서인지질환 연구그룹 선임연구원은 "쉽게 말해 물의 끓는점이 낮은 것"이라 설명했다.

그 결과 청소년의 뇌 속 뉴런은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쉽게 발화 상태가 돼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더 많이 더 자주 분비하는 것이다. 도파민은 중독 상태에 이르게 하는 핵심 물질이므로 도파민이 더 많이 자주 분비되면 중독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보상 행동을 담당하는 주요 뇌 부위 및 도파민 경로 - 보상 행동을 담당하는 뇌의 중요부위는 복측피개영역과 중격의지핵 그리고 전전두엽피질이다(빨간 원). 한편 도파민을 분비하고 수용하는 경로는 총 네 가지로 각각의 역할이 다르다. 이중 복측피개영역과 중격의지핵을 연결하는 중뇌 변연계 보상회로(노란 화살표)가 즐거움, 중독, 보상추구 행동을 담당한다.게티이미지뱅크, 과학동아 제공

청소년의 뇌가 자극의 발화점이 낮은 이유는 뇌 성숙이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김 선임연구원은 "청소년기 발달 단계의 뇌세포는 전기생리학적 특성상 이온 채널의 수와 기능, 시냅스에서의 신경신호 전달 등이 완전히 성숙해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뇌가 발달하며 보이는 중요한 경향성 중 하나가 바로 뇌세포가 점차 덜 흥분하게 되는 모습이다.

도파민이 더 많이 더 자주 분비된다는 것은 도파민 보상회로의 변성이 더 쉽게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파민 보상회로는 기쁨과 쾌감을 느끼게 하는데 도파민이 너무 많이 분비될 경우 뇌는 도파민을 적게 생산하거나 도파민과 결합해 작용하는 도파민 수용체의 수를 줄임으로써 도파민의 영향을 조절하려 한다. 결과적으로 동일한 쾌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더 큰 자극이 필요해지는 셈이다.

한편 청소년들이 같은 자극에도 쾌감을 더 크게 느끼는 데는 도파민 수용체의 양도 영향을 미친다. 세포막에 존재하는 도파민 수용체는 방출된 도파민을 흡수해 활성화함으로써 우리가 쾌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도파민 수용체의 양은 뇌의 발달 시기에 따라 다르다. 유아기와 어린이 시기를 거치면서 수용체 숫자는 꾸준히 증가하다가 청소년기에 가장 많아지고 이후 스무살을 넘기면 완만하게 감소한다. 같은 양의 도파민이 나오더라도 도파민 수용체가 많으면 더 큰 쾌감을 느낄 수 있으니 청소년의 뇌가 자극에 민감한 건 어쩌면 당연하다.

● 억제를 억제하는 뇌 자극적 행동 좇아

청소년의 뇌는 전전두엽피질과 편도체도 아직 조화롭게 발달하지 않은 상태다. 전두엽에서도 앞쪽에 있는 전전두엽피질은 우리 뇌에서 충동성을 억제하고 이성적 판단을 담당한다. 편도체는 공포나 불안을 야기해 위험하거나 잘못된 상황에 부닥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전전두엽피질의 뇌세포는 편도체에 신호를 보내 우리가 위험한 충동성 행위를 하는 것을 막는다. 편도체의 흥분성 뇌세포가 활성화되면 사람은 불안감을 느끼고 신중해진다. 그런데 어린이나 성인에 비해 청소년기에는 이런 전전두엽피질과 편도체간의 신경회로가 위험한 행동을 충동적으로 저지를 수 있는 특성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17년 로저 클렘 미국 마운트 시나이 아이칸 의대 신경과 교수팀은 여러 연령대의 쥐를 대상으로 전전두엽피질과 편도체간의 신경회로 특성을 분석했다. 이 중 사람의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생후 35일된 쥐를 분석해보니 전전두엽피질 뇌세포가 편도체에 있는 억제성 뇌세포를 강하게 자극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doi: 10.1523/JNEUROSCI.3097-16.2017)

편도체의 억제성 뇌세포가 강하게 자극되면 편도체의 흥분성 뇌세포들이 활성화되는 것을 막는다. 이에 따라 편도체의 주요 기능인 충동 행위 억제 기능이 줄며 중독을 일으키는 자극적 행위에 쉽게 빠져들 수 있다.

해당 연구를 함께 살펴본 김주현 선임연구원은 "비록 동물 실험 결과지만 특징적인 뇌 회로의 발달이 청소년의 행동을 설명하는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며 "유튜브 콘텐츠를 계속 보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현상을 설명해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 수렵 채집 생활 시절 우리의 모험심을 자극하기 위해 뇌가 부조화하게 발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몸의 진화 속도가 더딘 탓에 청소년들은 여전히 더 많은 자극, 충동 욕구와 싸워야 하죠." 김정연 한국뇌연구원 정서인지질환 연구그룹장은 말했다.

청소년기의 뇌는 발달 과정 속에 있다. 충동을 크게 느끼고 중독에 취약한 특성이 두드러지지만 참는 법을 배우는 노력을 한다면 건강하게 뇌를 발달시킬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에버랜드 유튜브 캡처

● "나 도파민 중독인가?" 문제의식은 정상적인 뇌 발달 과정

 
청소년의 뇌가 자극과 중독에 취약하다는 뇌과학적 분석이 소셜 미디어와 숏폼 콘텐츠에 갇혀 사는 청소년을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진 않는다. 김 그룹장은 "공부하다 말고 스마트폰에 손을 뻗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면 충동성을 억제하는 뇌가 잘 발달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발달 과정 중인 청소년기 뇌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발달시킬 수 있을까.

"청소년기는 어떤 나이대보다 보상감을 크게 느끼는 시기예요. 하지만 어려움이나 노력 끝에 얻은 보상과 즉각적인 보상은 다르죠. 즉각적인 보상은 뇌에 영향을 주거든요. 청소년기 즉각적인 보상이 너무 쉽게 주어지면 성인이 돼서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만족지연보상'이라고 불리는 지연된 보상을 위해 노력하고 또 지연 과정을 감내하는 법을 배우며 자극과 싸워야 합니다."

※관련기사
과학동아 3월호, [특집] 청소년 뇌가 중독에 취약한 이유

[김태희 기자 tae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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