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의 욕망과 내적 속성들 [주말을 여는 시]

하린 시인 2024. 4. 20. 07: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린의 ‘특별한 감정이 시가 되어’
권혁웅 시인 ‘춘천닭갈비 집에서’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매력적 구절이 만드는 시적재미
욕망에 부합하는 다양한 속성

춘천닭갈비 집에서

지금 당신은 뼈 없는 닭갈비처럼 마음이 비벼져서
불판 위에서 익고 있지
나는 당신에게 슬픔도 때로는 매콤하다고 말했지
당신이 생각하는 그이는
이미 오이냉국처럼 마음이 식었다고 일러주었지
그이를 한 입 떠 넣는다고 해서
당신 마음의 뼈는 돌아오지 않는 거라고
닭 껍질처럼 오돌토돌한 소름은
숨길 수가 없는 거라고 얘기했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앞치마를 두른 채 조금 튄, 당신의 슬픔을 받아내는 일
당신은 없는 그이를 생각하고
나는 고구마와 함께 익어가는 당신을 생각하고
그렇다면 우리의 삼각관계는
떡, 소시지, 양배추, 쫄면으로 치장한다고 해도
그냥 먹고 남은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나는 조금 속이 타서 찬 물을 마셨지
나는 당신 앞에서 물먹은 사람이 되었지
그것도 셀프 서비스였지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창비, 2013.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지금 애인의 울음은 변비 비슷해서 두 시간에
끊겼다 이어졌다 한다
몸 안을 지나는 긴 울음통이 토막 나 있다
신의주찹쌀순대 2층, 순대 국을 앞에 두고
애인의 눈물은 간을 맞추고 있다
그는 눌린 머릿고기처럼 얼굴을 눌러
눈물을 짜낸다
새우젓이 짜부라든 그의 눈을 흉내 낸다
나는 당면처럼 미끄럽게 지나간
시간의 다발을 생각하고
마음이 선지처럼 붉어진다 다 잘게 썰린
옛날 일이다
연애의 길고 구부정한 구절양장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빨래판에 기댄 표정이 되었지
융털 촘촘한 세월이었다고 하기엔
뭔가가 빠져 있다
지금 마늘과 깍두기만 먹고 견딘다 해도
동굴 같은 내장 같은
애인의 목구멍을 다시 채워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버릇처럼 애인의 얼굴을 만지려다 만다
휴지를 든 손이 변비 앞에서 멈칫거리고 있다

권혁웅
·1996년 「문예중앙」 데뷔
·현대시학작품상 등 수상
·작품집으로 「황금나무 아래서」 「마징가 계보학」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등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창비, 2013.

권혁웅 시인은 눈물의 의미를 음식이 내포한 다양한 현상에 빗대어 표현한다.[사진=펙셀]

감히 말하지만 권혁웅 시인의 시집은 나(독자)를 한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다. 그것은 시적 재미 면에서 그렇다. 시적 재미는 시의 매력을 의미한다. 매력이 있는 시는 독자를 사로잡는 어느 한가지 이상의 특장特長을 갖는다. 권혁웅 시집은 지금까지 실험적이든 비실험적이든 간에 독자에게 재미를 선사했다. 재미가 없는 시는 공유지점이 없이 독자적으로만 존재한다.

시적 재미는 단순히 펀(fun)을 의미하지 않고 매력적인 하나의 구절만 있어도 가능하다. 이것은 소통의 문제가 아니다. 소통이 안 되더라도 미묘하게 흐르는 정조를 맛보게 하거나 감정이나 이미지의 연쇄반응만 일으키게 해도 시적 재미를 느끼게 한다. 권혁웅의 시는 공유 지점이 풍부한 서정적 주체의 자유로움을 바탕으로, 앞서 말한 시적재미를 자연스럽게 주고 있다.

권혁웅은 풍경과 현상을 섬세하게 읽어내고 사물들과 친밀감을 가진 다음, 타자의 내면이나 시적 주체의 내면을 풍경 안에 버무리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런데 이번 시집에 나오는 풍경과 현상은 다분히 세속적이다. 시인이 밝혔듯이 "세속이 그 지극한 경지 안에서/스스로를 들어 올"(시인의 말)리게 만든 것이다. 세속의 지극한 경지는 세속 안에 담긴 지극한 지점과 의미를 통찰해내는 것을 말한다.

권혁웅이 가진 세속 현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은 대단히 감각적이다. 시의 성공 여부는 시적 형상화가 이뤄진 후 메시지와 이미지가 긴밀성을 갖고 정서적 파문을 '갖느냐 갖지 않느냐' 하는 것에 있다. 형상화는 온전히 이미지와 이미지 자체가 갖는 연상 작용으로 이뤄진다. 이미지의 주도적 역할이 사물이고 그 사물의 대부분은 세속적이므로, 세속이 시화하는 현상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다만 그 시화한 것이 지극한 정서와 속성을 드러내지 않고 세속 자체로만 머문다면 세속의 복제나 재현밖에 되지 않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권혁웅은 세속 속에 개별화한 주체의 내면이 닿는, 지극하게 드러나는 풍경을 담아낸다. 풍경의 상처화가 아니다. 풍경의 생생함과 풍경의 혈과 맥에 흐르는 간절함의 기운이다.

세속의 장은 생체적 공간으로 변주된다.[사진=펙셀]

가령, 이 시집에서는 주부노래교실, 김밥천국, 우동집, CGV, 신의주찹쌀순대집, 도봉근린공원, 천변체조교실, 금영노래방, 불가마, 춘천닭갈비집, CGV, 의정부부대찌개, 24시 양평해장국 등과 같은 세속의 장章이 나오는데, 주체는 그곳을 단순히 체험적 수기의 장으로 읽지 않고 개별자(주체)의 내적 무늬와 맞닿아 있는 생체적 공간으로 변주해서 읽는다.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의 경우 주체는 그곳에서 이별을 예감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오래된 연애. "연애의 길고 구부정한 구절양장을 지나는 동안" "빨래판에 치댄 표정"이 된 주체가 간절함이 사라진 후에 보는 애인의 눈물은 어떤 의미일까?

주체는 눈물의 의미를 음식이 내포한 다양한 현상에 빗대어 표현하는데, 애인은 지금 눈물에 간을 맞추고 있는 중이고, "새우젓이 짜부라진 그의 눈을 흉내"내고 있는 중이다. 주체는 "당면처럼 미끄럽게 지나간/시간의 다발을 생각하고/ 마음이 선지처럼 붉어진다". 이렇게 시는 애인과 주체가 갖는 연애적 심리와 상황을 음식의 속성에 빗대어 진행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많은 시에 등장하는 개별자의 속성이 입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는 점이다. 입은 '먹다' '말하다' '뱉어내다' '토하다' '핥다' '빨아들이다' 등과 같이 다양한 의미망을 갖는 능동적인 코드를 갖고 있다. 모두 욕망과 부합하는 것들이다. 그러면서 제일 직접적으로 공감대를 드러내는 역할도 한다. 권혁웅은 그런 욕망적 코드를 활용해 개별자의 내적 속성에 빗대는 시적 방법론을 택했다.

「춘천닭갈비 집에서」 주체는 이별에 직면한 '당신'에게 애정을 갖는다. 그러나 '당신'은 옛 애인을 생각하면서 '나'에게 무심하다. 삼각관계다. 삼각관계의 욕망은 매우 팽팽하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 삼각의 관계는 무너진다. 중심축인 '당신'이 '그이'에게 더 쏠리거나 '나'에게 더 쏠리면 그땐 '나'의 욕망과 존재성은 사라진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그런 삼각관계의 묘한 상황과 심리가 이 시에서는 먹는 것(입)과 관련돼서 적절하게 비유돼 있다. "뼈 없는 닭갈비처럼 마음이 비벼져서/불판 위에서 익고 있"는 당신, "슬픔도 때로는 매콤하다고 말"하며 당신이 "이미 오이냉국처럼 마음이 식"은 '그이'를 잊기 바라는 '나'는 자꾸 '당신'이라는 중심축을 자신 쪽으로 끌어들이려고 설득한다.

"그이를 한 입 떠 넣는다고 해서/당신 마음의 뼈는 돌아오지 않는 거라고/닭 껍질처럼 오돌토돌한 소름은/숨길 수가 없는 거라고 얘기"하지만 "당신은 없는 그이를 생각하며"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무너지지 않는 중심축. 결국 "나는 고구마와 함께 익어가는 당신을 생각"하면서 "조금 속이 타서 찬 물을 마실" 수밖에 없다.

권혁웅은 능란과 능숙이란 단어를 지닌 지 오래다. 그런 능란과 능숙이 이번 시집에서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그래서 독자들은 권혁웅의 시를 말장난이나 실없는 해학과 풍자로 읽지 않는다. 권혁웅의 시집을 읽으며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띤 당신의 모습이 지금 막 보인다.

하린 시인 | 더스쿠프
poethr@hanmail.net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