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꽃의 영화뜰] '기생수' 수인이 인간다운 방식으로 살아남는 방법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2024. 4. 2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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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 영화 '기생수: 더 그레이' 포스터

※주의 : '기생수: 더 그레이'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 종족은 태어날 때부터 교육받았다. 인간의 몸을 차지하라고.”

평범해 보이는 인간 얼굴이 돌연 여러 가닥으로 쪼개지고, 끝없는 길이의 괴이한 촉수로 뻗어 나간다.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운 끔찍한 생김새로 인간의 몸을 파고든 존재는 다름 아닌 기생수! 자체 번식이 불가능한 이들은 생존을 위해 인간 몸을 강제로 빼앗아 숙주로 삼는 쪽을 택했다. 이내 인간 조직의 우두머리를 점령해야 한다는 판단까지 이르는데… 교회 목사, 직장 상사, 정치인 등 조직 상부의 명령을 따르며 평생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가장 효율적으로 지배할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지난 5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크리쳐물 '기생수: 더 그레이' 이야기다. '부산행'과 '지옥' 등 장르성 짙은 흥행작을 선보인 연상호 감독의 6부작 드라마다. 일본 괴수 만화가로 유명한 이와아키 히토시 감독의 작품 '기생수'(1988~1995)의 세계관을 공유하되, 한국 사회의 맥락을 반영한 새로운 인물과 이야기를 들여왔다. 여기에 '신과함께' 등으로 수준급 특수효과를 연마해온 덱스터 스튜디오의 기술까지 더하면서 전통놀이 '상모돌리기'에 착안한 기생수 액션을 구현하는 등 흥미로운 서사와 볼거리를 갖춘 '한국형 기생수'를 완성했다.

▲ 이와아키 히토시 감독의 작품 '기생수'

이 작품의 주인공 수인(전소니)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마트 계산원으로 일하는 그는 어린 시절 지독한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직접 경찰에 신고했고, 자신을 두고 떠난 어머니에게 재차 버림받은 아픔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선의를 품은 경찰 철민(권해효)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성인이 되긴 했지만, 마트 계산 과정에서 사소한 불만을 품은 조현병 환자가 칼을 들고 달려들던 날 밤 피 흘리며 쓰러지고 만다. 해체된 가정으로 인한 고립감과 외로움, 타인을 향한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로 인한 불안감에 고스란히 노출된 암담한 청춘이다.

이야기가 흥미로워지는 건, 쓰러져 죽어가던 수인의 몸에 기생수가 침입하면서부터다. 숙주로 삼으려던 수인의 몸이 칼에 수 차례 찔려 만신창이가 돼 있었던 까닭에, 기생수는 역설적으로 수인의 상처를 회복시키는 데 힘을 다 쓰고 만다. 숙주가 생을 마감하면 그 존재에 기생해야 하는 기생수도 따라 죽게 되는 공교로운 생존의 법칙 때문이다. 이 독특한 공존 끝에 수인은 목숨을 부지하고, 그 대가로 기생수가 하루 15분쯤 자기 몸을 통제하고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전권을 내어주는 데 협조하게 된다. 전례 없는 '변종' 상태다.

▲ 영화 '기생수: 더 그레이' 스틸컷

공존하지 않으면 둘 다 죽게 되는 변종의 법칙은 역설적으로 작품이 전하려는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인간을 모방하며 동족을 모으고 세력을 불린 기생수가 압도적인 공격력을 무기삼아 하나둘 인간 사회를 점령할 때, 심지어는 기생수 편에 서 자기 이득을 챙기려는 인간들마저 암약할 때, 작품은 힘없이 남겨진 평범한 인간들이 과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생존을 위한 기생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는 무자비한 기생수에 맞서, 가장 인간다운 방식으로 살아남는 방법이 무엇이겠느냐고.

장르물로 시작해 인간사회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는 6부작의 말미, 이야기는 기생수에 대해 가장 많은 경험과 지식을 확보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인물을 새롭게 등장시켜 다음 편을 예고한다. 다름아닌 일본 원작의 주인공 이즈미 신이치(스다 마사키)다. 한국 사회와는 또 다른 고질적인 병증을 품고 있을 일본 사회에서 모종의 전략으로 기생수와 맞서 싸워온 인물이다. 아직 시즌2 제작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연상호 감독은 이미 다음 이야기의 구상을 어느정도 마친 상태라고 한다. 변종 상태로 일말의 공존 가능성을 보여준 '기생수: 더 그레이' 주인공 수인, 그리고 원작 '기생수' 주인공 이즈미 신이치가 함께 써 내려갈 새로운 이야기가 무엇일지 못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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