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수' 연상호 감독 "원작 인기 부담보다 창작 재미가 더 컸죠"[인터뷰]

신영선 기자 2024. 4.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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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 사진=넷플릭스 제공

[스포츠한국 신영선 기자]

영화 '부산행', '반도'에 이어 넷플릭스 '지옥', '선산'까지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를 완성해 대중의 극찬을 받아온 연상호 감독이 이번에는 '기생수: 더 그레이'를 통해 더욱 확장된 세계관을 구축했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인간을 숙주로 삼아 세력을 확장하려는 기생생물들이 등장하자 이를 저지하려는 전담팀 '더 그레이'의 작전이 시작되고, 이 가운데 기생생물과 공생하게 된 인간 '수인'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일본 작가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 '기생수'의 세계관에 한국을 배경으로 완성한 스핀오프 작품이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연상호 감독은 "이번 '기생수: 더 그레이' 작업은 특히 더 재미있었어요. '스핀오프를 하면 상업적으로 더 잘 되겠지?' 같은 생각보다는 순수하게 팬 픽션(Fan Fiction, 팬이 만든 2차 창작물) 같은 느낌으로 작업 했죠"라며 원작에 대한 팬심과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연상호 감독. 사진=넷플릭스 제공

원작 '기생수'는 일본에서 1988년부터 1995년까지 8년 간 인기리에 연재된 작품이다. 단행본 누계 부수 천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일본에서는 최근까지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가 제작될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작품.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누린 터라 이번 드라마 제작에 거는 기대가 컸다. 연상호 감독은 배경을 한국으로 옮기면서도 독특한 세계관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원작이 있어 부담감을 느끼기보다는 재미가 더 컸어요. 설정 대부분이 원작에 있는 부분이에요. 수인과 하이디가 잠드는 설정이나 날개가 달린 기생수 같은 부분들이 영화에는 없지만 원작 만화에는 개와 합쳐진 기생수가 나와요. 사소한 부분들도 최대한 끌어와서 만들었죠. 설정에서 제가 새로 만든 건 없어요. 4화에 나오는 수인과 하이디의 환상 속 대화하는 부분도 원작 만화에서 비슷한 장면이 나와요."

'기생수: 더 그레이'는 원작 '기생수'의 세계관과 동일하지만 등장인물과 스토리 구성 모두 새롭게 짰다. 특히 기생생물이 원작에서는 주인공의 오른팔에 자리잡지만 '기생수 더 그레이'에서는 주인공 수인의 오른쪽 머리를 반쪽을 차지한다. 소통의 부재로 겪는 상황들은 더 참신해졌다.

"위치의 차이보다는 소통 방식의 차이가 컸어요. 수인과 하이디라는 전혀 다른 인물이 직접 소통을 하지 못하는 관계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닥친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인정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원작은 서로 대화가 가능해 우정을 쌓지만 '기생수: 더 그레이'는 엔딩까지 서로 갈등을 겪어요. 그래서 강우(구교환), 철민(권해효) 같은 인물이 필요했죠."

전소니는 극 중 기생생물 '하이디'와 기묘한 공생을 시작하게 된 주인공 '수인' 역을 맡았다. 불완전한 공존으로 인해 인간과 기생생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변종으로서 양측 세력과 대립하며 내적 갈등도 겪는 입체적인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독립영화를 통해서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언젠가 같이 일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 내가 생각하는 그림체와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막상 일을 해보니 수인이 가진 가장 근원적인 외로움이 얼굴에 많이 묻어나더라구요. 인위적으로 표현했다면 외로움에 설득력이 없었을 수도 있는데 전소니 배우가 그런 부분을 세밀하게 세공해 줬죠."

연상호 감독. 사진=넷플릭스 제공

배우 구교환은 설강우 역을 맡아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더해 서로 대화할 수 없는 수인과 하이디의 가교 역할을 도맡았다.

"수인은 우울하고, 하이디는 차가워요. 대신 둘 다 진지하죠. 소통 방식이 어렵다 보니 중간 역할에 강호가 있었던 것 같아요. 구교환 배우에게 역할을 처음 제안할 때도 무거운 느낌보다는 원작 분위기의 발랄함을 더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구교환 배우가 그 부분을 잘 캐치했죠."

극 후반부에는 원석(김인권 분)의 몸을 차지한 기생생물이 인간세계의 우두머리를 목표로 삼는다. '부산행', '반도' 등을 통해 부성애, 희생 등 인간의 본질에 대해 조명했다면 이번에는 인간조직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살아가면서 겪는 주요한 문제면서도 혼란스러운 주제일 수 있을 거 같아요. 예전에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명확한 부분이 있었는데, 지금은 뒤엉켜 있는 세대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어디에 의지해 살아야 하는지 애매모호한 부분들이 있죠. 개인적으로 작품을 만들 때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주제로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걸 어렵게 꼬아 만들 필요가 있느냐 싶어요. 제가 지금까지 만든 작품들은 모두 대중적이고 범위가 넓어요. 묘사가 더 명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넷플릭스라는 매체의 특성상 다문화적인 환경도 생각해야 했어요."

'기생수: 더 그레이' 연상호 감독의 섬세하면서도 직설적인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 덕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5일 공개 이후 3일 만에 630만 시청 수(시청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시리즈(비영어) 부문 1위에 등극했다. 총 68개 국가에서 10위 안에 들었고 한국과 필리핀, 말레이시아, 볼리비아 등 8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좀비물에 크리처물까지 독보적인 세계관을 구축해 일명 '연니버스'(연상호+유니버스)라는 별명을 얻은 연상호 감독이다. 최근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연니버스'의 부활이라고도 칭할 만 하다.

"전하는 메시지의 깊이를 떠나서 방식의 직관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액션은 눈에 바로 보이기도 하고 바디 스내처(Body Snatchers·신체 강탈)가 근원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게 있어요. 또 눈에 보이는 형태들이 확실히 다른 문화권에서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 그런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다양하게 도전해보려고 했죠. 사실 일본에서는 원작 '기생수'가 대중적인 작품이에요. 일본에서의 반응이 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좋아해 주셔서 다행이죠. 잘 될 생각보다는 팬으로서 작업한 부분이 커요."

결말 부분에는 원작 '기생수'의 중인공인 이즈미 신이치가 등장, 원작과의 세계관을 공유하며 마무리됐다. 그 덕분에 시즌2 제작에 대한 추측을 가능하게 했다. 연상호 감독은 시즌2 제작 여부에 앞서 '기생수' 시리즈의 확장성을 강조했다.

"제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죠(웃음). 마지막에 일본 배우 스다 마사키가 등장하는데, 그 장면은 그냥 인사만 하고 갈 수 없으니까 사실 어떤 구체적인 설정을 한 뒤 나온 장면이에요. '기생수: 더 그레이'는 원작에서 8년 후의 설정인 거죠. 신이치가 나오는 순간 세계관의 공유가 됐다고 생각해요. 기생수 세계관이 더 확장됐으면 좋겠어요. 나올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거든요.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싶고 이 작품으로 누군가에게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생각도 있어요. 만약 나온다면 '기생수' 팬으로서 재밌게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확장될 가능성이 많은 작품이에요."

좀비물에 크리처물까지 독보적인 세계관을 그려온 연상호 감독은 외려 자신의 매 작품을 "투쟁의 형태"라고 표현했다.

"데뷔 전 휴식기를 오래 가진 적이 있는데 머리가 안 돌아가더라구요. 하기 싫을 때 뭔갈 해야 오히려 작품이 나오는 거 같아요. 혁신적인 작품을 쓰겠다는 생각으로 매 작품 시작을 해요. 얼마 전에는 제 작품들을 쭉 봤는데 내가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죠. 대중적인 걸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그 과정이 늘 투쟁일 수밖에 없어요. 언젠가 일을 못 하는 때가 오면 대중적이지 않은 일을 하면서 지내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스포츠한국 신영선 기자 eyoree@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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