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침 항모’를 지키는 ‘신령스런 산(護國神山)’…삼성전자와 달리 ‘최고가 신기록’ 계속? [신동윤의 나우,스톡]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중국의 ‘해양 굴기(崛起)’를 최전선에서 막아낸다는 의미에서 대만은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불침항모·不沈航母)’으로 불립니다. 이런 대만은 최근 들어 심화하고 있는 중국의 무력 침공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반도체 방패(Silicon Shield)’를 강화하는 데 국력을 쏟고 있는 모습입니다. ‘미래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어느 나라도 대만의 위치를 대체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자유주의·민주주의란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일정 부분 그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대만을 함께 방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겠다는 것이죠.
이런 전략의 한 가운데 위치한 기업이 바로 TSMC입니다. 대만 사람들은 TSMC를 가리켜 ‘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호국신산·護國神山)’이라고 부릅니다. 한 반도체 관련 학계 관계자는 “1970년대 미국과 중국의 수교 이후 잇따른 단교 등으로 외교 무대에서 고립됐던 대만이 오늘날 다시 중요성을 인정받게 된 배경에 TSMC가 큰 기여를 했다”며 정치적 위상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죠.
TSMC는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에서 실제로 대체 불가능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TSMC의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61.2%에 달합니다. 2위인 한국의 삼성전자(11.3%), 3위 미국 글로벌파운드리스(5.8%)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인 셈이죠.
1위 TSMC가 2위 삼성전자를 큰 격차로 따돌린 비결은 바로 생산품 중 정상 제품의 비율을 뜻하는 ‘수율(收率)’입니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TSMC의 최첨단 3나노미터(㎚, 1㎚=10억분의 1m) 공정 수율은 삼성전자에 10%포인트 이상 앞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이미 ‘세계 1위’ 자리를 꿰차고 있는 TSMC가 현재 그 이상의 존재감을 보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바로 ‘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대장주’ 엔비디아와 끈끈한 파트너십 때문입니다.
전문 재무 분석가 댄 니스태드(Dan Nystedt)는 TSMC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2023년도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기준 엔비디아는 애플에 이어 TSMC의 두 번째 ‘큰 손’ 고객이 됐습니다. 엔비디아는 TSMC에 2412억대만달러(약 10조1449억원)에 이르는 대금을 지불, 전체 매출의 11%를 차지하게 됐다는 것이죠.
세간에선 TSMC가 지니고 있는 ‘칩 온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CoWoS, 칩을 서로 쌓아 처리 능력을 높이는 동시에 공간을 절약하고 전략 소비를 줄이는 초정밀 반도체 제조 기술)’ 공정 없이는 AI 반도체 붐도 없다는 주장도 나오죠.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TSMC의 주가도 최근까지 급격한 우상향 곡선을 그려왔습니다.
대만 증시에서 TSMC 주가는 지난 19일 종가(750대만달러) 기준으로 올 들어 26.48%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고가 기록으로 본다면 상승폭은 더 커지는데요. 지난 12일에는 장중 826대만달러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가’ 기록을 쓰기도 했습니다. 연중 최저가(574대만달러) 대비 연중 최고가까지 주가가 35.58%나 올랐었죠.
종가 기준으로 최고가 기록은 하루 전인 지난 11일 기록한 820대만달러입니다.
TSMC 주가 급등세는 곧장 대만 대표 주가지수 ‘가권지수’ 급등세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대만 ‘가권지수’ 장중 최고치는 지난 10일 기록했던 2만883.69포인트입니다. 종가 기준으로는 지난 9일 2만796.20이 가장 높은 수치고요. TSMC 주가가 최고가를 기록했던 11~12일에도 가권지수는 2만700포인트 대를 유지했죠.
TSMC의 힘을 받은 대만 증시가 얼마나 잘 나가는지는 코스피와 비교해보면 더 확연히 보이는데요.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8일 기준 대만 자취안지수 시총이 2조2520억달러(약3050조원)으로 한국 코스피 시총 1조8770억달러(약 2542조원)보다 3750억달러(약 508조원) 많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는 적어도 2003년 이후 21년 만에 최대 격차라는 게 블룸버그의 설명이죠. TSMC가 대만 대표지수 상승세를 이끌 때 국내 증시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의 연중 주가 등락률은 -2.76% 뒷걸음질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죠.
주목할 점은 지난 3일 대만 동부에서 발생한 규모 7.2(미국·유럽 지진당국 발표는 7.4) 강진 여파에도 불구하고 TSMC 주가는 계속 강세를 보였다는 점입니다.
TSMC가 대만 증권거래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일 대만을 강타한 지진으로 2분기에 30억대만달러(약 1280억원) 규모의 손실이 TSMC에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매출 총이익률이 0.5%포인트 감소할 것이란 계산이 나옵니다.
TSMC는 그러나 팹(fab·반도체 생산공장)에는 정전이나 구조적 피해는 없었으며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주요 장비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황런자오 TSMC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번 지진으로 인한 2분기 매출 총이익률 관련 영향이 외부 예상보다 경미하다”고 말했는데요. 이어 “총이익률에 대한 영향은 주로 지진 발생 당시 생산 중이던 웨이퍼의 폐기와 관계있다”면서 생산 손실 대부분은 2분기에 회복될 예정이므로 2분기 매출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대만언론은 TSMC가 올해 2분기 매출을 196억∼204억달러(약 27조∼28조원)로 예상하고 있다고 보도했죠.
올해 1분기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는 점도 TSMC 주가의 추가적인 상승을 기대하게 하는 요소로 꼽히는데요.
TSMC는 지난 18일 실적발표회를 통해 1분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8.9% 증가한 2255억대만달러(약 9조5837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시장 예상치 2149억1000만대만달러(약 9조1336억원)를 뛰어넘은 것이죠.
매출 역시도 전년 동기 대비 16.5% 늘어난 5926억4400만대만달러(약 25조4000억원)를 기록했습니다. 달러 기준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9% 늘어난 188억7000만달러(약 25조9200억원)인데요. 시장 예상치인 180억~188억달러를 뛰어 넘는 수준이죠.
TSMC의 1분기 실적 호조는 미국 아이폰 제조업체 애플과 인공지능(AI) 칩 선두 주자 엔비디아 등을 고객사로 둔 TSMC가 최근 AI 열풍에 따른 수요 증가의 덕을 본 때문으로 분석됐습니다.
TSMC의 향후 주가에 ‘꽃길’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TSMC 주가는 19일 하루에만 6.72%(54대만달러)가 급락하며 750대만달러에 장을 마쳤습니다. 올해 1분기 매출액과 순이익이 모두 시장 컨센서스를 크게 웃돌았지만, 올해 메모리를 제외한 반도체 산업의 매출액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10% 이상”에서 “10%”로 하향 조정했기 때문입니다. 파운드리 산업의 매출액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10% 중후반대”로 낮춰잡은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CC 웨이 TSMC 최고경영자(CEO)는 콘퍼런스 콜에서 “AI 반도체 수요는 강하지만 전통적인 서비 칩 수요는 미지근하고 사물인터넷(IOT)와 소비자가전 반도체는 부진하며 자동차 반도체는 재고 조정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니드햄의 애널리스트인 찰스 쉬는 보고서에서 “TSMC 경영진은 반도체 산업의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 주요 이유가 자동차 반도체에 대한 기대가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며 “경영진은 자동차 반도체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이제는 올해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고요.
다만,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증권가에선 TSMC 주가가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이란 점에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형태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이 분석한 해외 증권사들의 TSMC 목표주가의 컨센서스는 861.5대만달러입니다. 최고 목표주가는 1080대만달러에 이르고요. 김형태 연구원은 “AI가 견인하는 업사이클의 최대 수혜 종목임은 분명하나 공급부족이 예상된다면 더 과감한 투자를 (컨퍼런스콜에서) 언급하는 편이 주가 상승 촉매가 됐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문승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TSMC의 AI 관련 매출은 2024년엔 전체 매출의 13%까지, 2028년까지는 20% 이상으로 높아질 것”이라며 “AI PC·스마트폰 수요에 맞춰 5㎚(나노미터) 노드 일부를 3㎚로 전환할 계획이며, 올해 3㎚ 노드 매출이 작년의 3배 이상이 될 것이라 밝혔다. AI 수요에 맞춰 미국에 선단 공정(1~2㎚ 포함) 신규 Fab 3개를 건설할 예정이란 점에서 긍정적인 의견을 제시한다”고 분석했죠.
한편, TSMC는 대만 이외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칩 가격을 인상할 계획인데요. 글로벌 생산시설 확장과 전력 비용, 갈수록 복잡해지는 첨단기술이 수익성을 압박함에 따른 겁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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