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기 금리 역전=경기 침체’ 공식 깨졌나… 좀처럼 식지 않는 미국 경제

최온정 기자 2024. 4. 2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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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 2022년 나란히 금리 역전… 미국은 22개월째
미국 경제는 여전히 ‘활황’… 고용·물가 상승세 지속
한국도 경제성장률 상승 전망… 물가 2개월째 3%대
장기채 수요 늘면서 장기금리 ‘뚝’… 침체 예측력 약화
’풍부한 유동성·고금리 기조로 인한 일시현상’ 의견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면 경기 불황이 온다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 미국은 최근 장·단기 금리 역전이 1980년대 이후 최장기간 지속됐지만 경제지표가 견조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2022년 말 금리가 역전됐던 한국도 경기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장단기 금리 역전의 경기 예측력이 떨어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단기 금리차는 10년물 국채금리에서 2년물 국채금리(한국은 주로 3년물) 금리를 뺀 값이다. 정상적인 경제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 규모가 커지므로, 미래 경제 상황을 반영하는 장기금리는 단기금리보다 높게 형성된다. 그러나 경기 침체가 예상된다면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빠르게 하락해 금리가 역전된다. 통상 금리 역전 후 1년 6개월 뒤에 경기 불황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 22개월째 장단기 금리 역전된 미국… 경제는 여전히 好好

20일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미국의 장단기 금리 역전은 2022년 7월 6일(2년물 2.99%·10년물 2.93%, 최종호가수익률 기준) 처음 시작됐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그 해 3월 금리를 급격히 인상하자 단기금리도 덩달아 오르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를 75bp 올리는 것)을 단행한 뒤에는 금리차가 더욱 커졌고, 작년 7월에는 100bp(1bp=0.01%포인트) 를 넘어서기도 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은 작년 9월부로 종료됐지만 역전된 장단기 금리는 1년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상화되지 않았다. 1980년대 이후 최장기간 역전이다. 18일(현지시각) 미국 2년물 국채의 최종호가수익률은 4.98%로, 10년물 국채(4.64%)보다 34bp 높았다. 20년물(4.85%), 30년물(4.74%)과 비교해도 2년물 금리가 더 높다.

그래픽=정서희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처음 나타났을 당시 미국에서는 곧 경기 침체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했다. 2022년 말 블룸버그가 미국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28명의 경제학자 중 70%는 2023년 경기가 침체될 것으로 예상했다. 비슷한 시기에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냈던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도 연준의 긴축에 따른 경기침체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시장의 예상과 달리 미국 경제지표는 아직까지도 견고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 증가율은 전년보다 0.6%포인트(p) 오른 2.5%를 기록했고, 올해 경제성장률은 2.1%로 예상된다. 고용과 물가 자표도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3%대 성장률(전월대비)을 기록했고, 비농업 일자리 증가 폭은 시장의 예상치(21만4000명)를 크게 웃돈 30만3000명을 기록했다.

◇ 채권시장 구조 변했나… “장단기 금리, 경기침체 예측력 약해져”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국면이 아닌데도 장단기 금리 역전이 지속되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우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국채 수요가 급증(금리 하락)했다. 연준을 포함한 각국 중앙은행이 가계의 주택구입과 기업의 투자 확대를 독려하기 위해 장기채 매입을 늘리면서다. 최근에는 고령화 심화에 따라 연기금과 보험사까지 장기채 보유량을 늘리면서 장기금리는 과거보다 더 낮게 형성됐다.

2년 가까이 지속된 고금리 시기를 거치면서 기준금리가 급등한 것도 영향을 줬다. 연준은 2022년 1월(0.5%p 인상)을 시작으로 1년 6개월만에 금리를 무려 5.25%p 올렸다. 한국은행도 비슷한 시기에 기준금리를 3%p 인상했다. 양국 모두 2008년 이후 가장 가파른 속도였다. 금리가 급등하면서 이에 연동하는 단기금리도 빠른 속도로 올랐고, 장단기 금리차는 더욱 확대됐다.

두 가지 요인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그간 경기침체 경고등 역할을 해왔던 장단기 금리 역전에 대한 신뢰도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로이터통신이 채권시장 전문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34명 중 22명(64.7%)이 수익률 곡선의 경기 예측력이 예전만 못하다고 응답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장단기 금리 격차가 축소되거나 역전이 되면 통상 경기 둔화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최근에는 과거에 비해 통화정책의 효과가 커지고 물가와 유동성도 강한 흐름을 보이고 있어 장단기 금리 역전의 설명력이 약화되는 모습”이라고 했다.

부산항에 수출을 앞둔 컨테이너가 쌓여있는 모습. 3월 기준 6개월 연속 증가했던 한국 수출은 4월 들어서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뉴스1

◇ 금리 인하 앞둔 한국… 장단기 금리 관련 논란 심화할 듯

장단기 금리 역전이 경기 침체로 이어지지 않는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2022년 11월(3년물 3.837%·10년물 3.764%) 처음 금리가 역전됐고, 이후 등락을 거듭하면서 4개월 가량 지속됐다. 첫 역전 후 1년이 훌쩍 지났지만 경제지표는 경기 침체가 아닌 회복을 가리키고 있다. 수출은 반등하고 있으며,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작년(1.4%)보다 높은 2.1%로 예상되고 있다. 물가도 2개월째 3%대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장단기 금리 역전을 경기 둔화의 신호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국에 비해 금리가 역전됐던 기간이 짧은데다 지금은 장기금리가 더 높게 형성돼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8일 기준 10년물 국채금리는 3.586%로, 3년물 국채 3.444%보다 11.2bp 높다.

우혜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은 주요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려놓은 상황”이라면서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 수 밖에 없고, 장기금리에도 이것이 반영돼 금리가 역전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는 “장단기 금리차의 경기 예측력이 약화됐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강승원 NH농협투자증권 연구원은 “경기침체 시점이 뒤로 밀린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강 연구원은 “코로나를 거치면서 시중에 공짜 돈이 엄청나게 풀렸고, 금융기관은 장단기 역전으로 훼손된 수익성보다 공짜 돈으로 얻은 수익이 더 커졌다”면서 “공짜 돈이 사라지면 소규모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대출이 줄어들면서 경제 침체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향후 한은의 금리 인하가 예상되는 만큼 장단기 금리 역전을 둘러싼 논란은 심화할 전망이다. 통화정책이 완화기조로 돌아서면 미래 금리 수준이 반영되는 장기 금리가 내릴 가능성이 커지고,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 한은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금리 역전을 경기침체의 선행지표로 볼 수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진 만큼 장단기 금리 역전에 관한 연구들이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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