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식물 대통령’ 안 되려면

이재원 경제정책부장 2024. 4. 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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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는구나.”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 주에 만나자고 손을 내밀었다. 대선 이후 2년여 만에 성사된 첫 영수회담이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이 대표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의석 수가 두 배에 가까운 거대 야당의 대표였지만 말이다.

같은 날 정부는 의대 증원 문제에서도 한발 물러섰다. 국립대 총장들이 올가을 입시에서 증원된 정원의 절반만 뽑아도 되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2000명 증원 고집을 철회한 것인데, 협상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커진 것은 다행한 일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그동안 매사에 강공 일변도였다. 결국 자신들이 옳으니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 오만함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중간 결산 결과는 좋지 않다. 22대 총선 결과가 말해준다. 대통령 부인의 명품 가방 문제는 많은 국민을 실망시켰고, 의료개혁 추진 과정은 정책 집행 능력이 있는지 의구심을 키웠다.

대통령과 정부는 참담한 총선 결과에도 별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총선 이후 엿새 만에 나온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형식도 내용도 실망스러웠다. 이후 대통령실 비서실장과 국무총리 인선 과정에서도 잡음이 일었다. 공식 라인의 부인에도 소문이 사실임이 확인되며, 특정인이 권한을 넘어 국정에 관여한다는 비선 논란이 일어난 상태다.

아마 이런 일들을 본 야당은 자신감을 얻은 듯하다. 야당은 21대 국회 마지막 입법 폭주를 감행했다. 상임위원회에서 쟁점 법안을 대거 통과시켰고, 5월 초 본회의에서도 그냥 밀어붙일 기세다. 총선 참패 후 내부 수습도 못 한 여당은 힘 하나 써보질 못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고 있다.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더라고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국갤럽이 지난 16~18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4월 3주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지지율)는 취임 후 최저치인 23%를 기록했다. 직전 조사보다 11%포인트 급락한 것이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이제 대통령에게 남은 선택지는 오히려 단순하다. 국정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며 결국 아무 일도 못 한 채 남은 3년을 보낼 것인지, 야당의 협조를 얻어 일부라도 집권 철학을 구현할 것인지 양자택일이다. 행정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상당수 했다. 남은 정책은 대부분 입법권이 동반돼야 구현이 가능하다.

다음 주 이재명 대표와의 회동은 그 분수령이 될 것이다. 사실 22대 국회마저 독식한 야당이 국정에 협조적인 자세로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크지는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이번 영수회담에서 반전을 모색해야 한다. 그 시작은 자세를 낮추는 일이다. 야당이 원하는 특검법부터 받으라는 의견도 있다. 먼저 양보하며 명분을 쌓고 협상력을 키워 가야 한다는 취지다.

국민이 보기에 대통령이 변할 만큼 변했는데도 야당이 독주를 이어간다면, 민심은 서서히 대통령 편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행동이 이전과 같다면, 야당이 무슨 행동을 하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별로 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국정 운영 동력도 없다. 눈치 빠른 공무원들부터 말을 듣지 않을 게 뻔하다.

중동에서 전운이 감돌며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위협할 만큼 경제 사정이 긴박하다. 윤 대통령이 과거 스스로 걱정했던 것처럼 ‘식물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지금 대통령이 가장 곱씹어야 할 말이다. 판을 뒤집는 대통령의 ‘승부수’를 기대해본다. 탄핵을 모면했다고, 개헌선을 지켰다고 안도하며 끝낼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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