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미, 스님들만 봤던거야?”... 번뇌의 MZ 사로잡은 '이 종교'가 심상찮다
근엄함 버리고 최신유행 수용한 행사기획
젊은층 "참신함에 끌리고, 포용에 치유돼"
제행무상(諸行無常).
세상 모든 행위는 늘 변하며 한 가지 모습으로 고정돼 있지 않다는 뜻. 불교의 핵심 명제인 삼법인(三法印) 중 하나다.
이 글귀를, 평소 절에 다니지도 않던 직장인 김수민(28)씨가 필통에 오려붙였다. 최근 다녀온 서울국제불교박람회는 그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었다. 요즘 불교가 ‘힙’하다(새롭고 개성 넘치다)는 입소문에 끌려 찾아간 행사였다. 거기서 '극락도 락(樂)이다’ ‘번뇌 멈춰’ 등 장난스러운 카피를 앞세운 이색 부스들을 구경하던 중, 제행무상이란 글귀를 발견했단다. 묘하게 위로 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김씨는 “벚꽃놀이나 맛집 탐방으로 풀리지 않던 스트레스가 조금 잠잠해졌다”며 “조만간 집 근처 사찰에 산책을 가보려 한다”고 말했다.
최근 MZ세대(1980~2000년도 출생자) 사이에서 불교의 인기가 뜨겁다. 종교적 권위를 허무는 파격 시도가 진입 장벽을 낮췄고, 불교 특유의 포용적 교리와 메시지가 치열한 경쟁에 지친 젊은 층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뉴진스님' 등장하는 공식 불교행사
4일부터 나흘간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열린 ‘2024서울국제불교박람회’는 역대 최다 방문객을 끌어모았다. 행사를 주최한 대한불교조계종에 따르면, 전년에 비해 세 배나 많은 사람이 박람회를 찾았다고 한다. 올해로 12회째를 맞은 불교박람회는 불교문화를 대중에 알리기 위해 불교 공예·미술, 의복이나 사찰 음식 등 다양한 문화를 선보여왔다.
특이하게도 올해 흥행을 견인한 일등공신은 그동안 불교와 연이 멀어 보였던 MZ세대였다. 전체 관람객 80%가 10대 후반부터 30대까지의 젊은 층이었다. ‘재밌는 불교’라는 주제를 앞세워 디제잉, 밈(meme), 메타버스, 인공지능(AI) 등 젊은 세대 문화와 과감한 결합을 시도한 덕분이다.
법명 ‘뉴진스님’으로 활동하는 개그맨 윤성호의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디제잉이 첫날 특별공연이었을 정도로, 불교는 기존 종교행사의 틀을 철저히 깼다. AI 부처의 고민 상담, 교리를 MZ세대 사이 유행하는 밈으로 풀어낸 ‘깨닫다!’ ‘수행하면 그만이야’ 등의 프린팅 티셔츠도 인기를 끌었다. 조계종 관계자는 “참가부스를 선정할 때 엄중한 기준을 두기보단 ‘재밌다’는 올해의 타이틀과 불교의 포용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조계종은 지난 6,7일엔 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를 패러디한 소개팅 캠페인 ‘나는 절로’도 진행했다. 30대 미혼 남녀 20명 선발에 지원자만 300명 이상 몰렸고, 무대가 된 전등사에는 지난 일주일간 다음 모집 계획을 묻는 문의만 50건 넘게 쏟아졌다고 한다. 또 MBTI 성격 유형 검사를 따라한 '부처 유형검사'를 제작해 배포하거나, 사찰에서 패션쇼를 여는 등 MZ세대에 맞춰 다가가려는 다양한 시도들도 호응을 얻고 있다.
무한 경쟁에 지친 청년에겐 '위로'
불교가 단순히 즉흥적 놀이 문화로서만 각광받는 건 아니다. 집착과 경쟁에 지친 젊은이들에게 건네는 위로가 그 인기의 기반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불교는 본래 대중 속으로 들어와 있는 종교”라며 “평온이 절실한 청년들에게 내면을 살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라고 봤다.
실제로 폐막 당일인 7일 불교박람회는 젊은 이들로 붐볐지만, 들뜨기보단 차분한 분위기였다. 아이돌그룹의 굿즈(아이돌 등 특정 인물 관련 상품)를 본뜬 부처 포토카드를 팔거나,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부처상 옆에 ‘#부처님꼬순내’ 포토존을 만들었다. 재치 넘치는 부스 못지않게, 정통 불교 교리를 소개하는 점잖은 부스에도 사람이 넘쳤다.
출가 상담 부스에 들린 임모(26)씨는 “출가를 할 건 아니지만 스님과 대화 도중 ‘쉬어가도 괜찮겠다’는 용기를 얻었다”며 “불교가 생소했는데, 종교 강요도 없고 삶을 생각해 보는 계기를 준다는 점에서 더 매력적”이라 말했다. 티베트 싱잉볼(주발) 체험을 기다리던 김모(23)씨도 “행사 첫날 원했던 굿즈는 다 샀지만, 목탁 두드리기, 명상, 요가처럼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 준 체험들이 기억에 남아 재방문했다”고 했다.
다른 종교에 비해 규율이 ‘느슨’한 불교가 권위와 격식을 꺼리는 MZ세대들에게 더 쉽게 다가갔다는 시각도 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기 예배나 헌금 등에 대한 부담이 없고, 누구나 일상적 수련과 명상으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다른 종교에 비해 젊은 층의 거부감이 덜할 것”이라 풀이했다.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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