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꽃가루… 더 빨리 와서, 더 오래 괴롭힌다

박상현 기자 2024. 4. 2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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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이른 봄·길어진 여름… ‘꽃가루 영향권’ 장기화

봄바람을 타고 각종 꽃가루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꽃가루는 보통 4~5월이 가장 심하다. 그런데 온난화 여파로 한반도에 봄이 일찍 찾아오면서 꽃가루가 날리는 시기가 당겨지고 기간도 늘어나고 있다. 꽃가루는 미세 먼지 정도로 입자가 작기 때문에 많이 날리지 않는 한 잘 보이지 않는다. 호흡기 환자에겐 청명한 봄날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9일 기상청에 따르면, 꽃가루는 하늘이 맑고 기온은 높으며 초속 2m 정도로 약한 바람이 불 때 많이 발생한다. 미세 먼지와 비슷하다. 맑은 날씨에 강한 햇볕이 내리쪼이며 지표를 달구면 아지랑이 피듯 꽃가루와 미세 먼지가 공중으로 떠오른다. 바람이 강하면 바다 쪽으로 쓸려 나가지만, 약하면 우리 주변에 떠돈다. 이런 기온과 바람 조건이 봄의 계절적 특성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꽃가루가 심한 것이다.

꽃가루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주범은 꽃보다 나무다. 진달래·개나리처럼 곤충이 꽃가루를 전달하는 ‘충매화(蟲媒花)’가 아니라, 참나무·오리나무·자작나무·삼나무처럼 번식을 위해 봄바람에 꽃가루를 날려 보내는 ‘풍매화(風媒花)’가 알레르기를 주로 일으킨다.

꽃가루 농도는 기온이 20~30도일 때 가장 짙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 기온으로 3월부터 한낮 기온이 20도 이상 올랐고, 4월에 들어서는 30도 안팎까지 치솟는 등 전국에서 늦봄~초여름 기온이 일찍부터 나타났다. 꽃가루도 일찍부터 날리기 좋은 조건이었던 셈이다. ‘엘니뇨’가 발생해 올봄처럼 이상 고온 현상이 있었던 작년에는 2월 알레르기 비염 환자가 143만6824명이었지만 3월에는 187만161명으로 큰 폭으로 늘었다.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올해도 비슷할 가능성이 크다.

작년 우리나라는 전국에 기상 관측망이 설치된 1973년 이후 처음으로 3월 첫주에 봄이 시작됐다. 기상학적으로 봄은 ‘일평균 기온이 영상 5도 이상으로 올라간 후 다시 떨어지지 않는 첫날’을 시작일로 본다. 평년(2011~2020년) 봄 시작일은 3월 9일이었지만, 작년엔 3월 2일이었다. 올해는 아직 봄 시작일이 나오지 않았지만 갈수록 당겨지는 추세다. 앞으로는 꽃가루 날림이 더 일찍 시작할 수도 있다.

그래픽=양인성

봄철 중국발 황사, 미세 먼지가 알레르기 민감도를 높인다는 분석도 있다. 황사와 미세 먼지에는 모래 알갱이뿐 아니라 황산·질산 등 오염 물질도 들어 있다. 이런 물질이 꽃가루와 만나 알레르기를 잘 일으키는 물질로 변한다는 것이다. 단국대병원 이비인후과 모지훈 교수는 “오염 물질과 꽃가루 성분이 결합하면 일반적 꽃가루보다 알레르기 반응을 훨씬 잘 일으킨다는 보고가 있다”며 “최근 급격한 기온 변화와 함께 염증을 일으키는 꽃가루 속 물질이 잔뜩 터진 영향도 있다”고 했다.

꽃가루가 잘 날리는 따뜻한 날은 우리나라가 고기압 영향권에 드는 때라서 덩달아 미세 먼지 농도가 짙어지기 쉬운 날이기도 하다. 작년 중국의 대기오염도는 2013년 이후 10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2013년 1㎥당 72㎍(마이크로그램)에서 2022년 29㎍으로 절반 이상 내려갔지만, 작년부터 이 수치가 다시 올라가고 있다. 우리나라로 불어오는 미세 먼지 양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꽃가루와 미세 먼지를 함께 마시면서 알레르기를 겪는 사람도 늘고 있는 것이다.

기상청은 “미세 먼지 농도를 확인하듯 봄철 외출할 땐 ‘꽃가루 농도 위험 지수’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상청은 참나무(4~6월), 소나무(4~6월), 잡초류(8~10월) 등 세 종류로 나눠 ‘꽃가루 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이 지수는 ‘매우 높음’ ‘높음’ ‘보통’ ‘낮음’ 등 4단계로 나누는데, ‘높음’ 이상인 날은 알레르기 환자 대부분에게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꽃가루 농도가 낮다고 예보된 날이라도, 알레르기 유발 꽃가루를 날리는 국내 대표 수종인 참나무·오리나무·자작나무·삼나무 등은 전국에 분포하고, 수백km까지 퍼지기 때문에 꽃가루 마시기를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 강원도나 충청도 참나무의 꽃가루가 서울까지 날아오기 때문이다. 국내 꽃가루 날림은 4~5월 절정을 이루다가 6월 중순쯤 잦아든다. 이번 주말 수도권과 충청권을 중심으로 참나무 꽃가루 위험 지수가 ‘높음’으로 예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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