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좌파 혁명 했는데… 공화국은 왜 이슬람주의로 변해갔나”

채민기 기자 2024. 4.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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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이슈 읽기] 이스라엘과 전면전 위기에 놓인 이란

페르세폴리스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박언주 옮김|휴머니스트|352쪽|3만2000원

시아파의 부활과 중동정치의 지각변동

유달승 지음|한울아카데미|224쪽|2만8000원

이란이 이스라엘을 처음으로 직접 공격하고 이스라엘이 6일 만인 19일 보복에 나서면서 중동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란은 왜 한때 협력했던 이스라엘과 돌아섰을까. 이란 현대사의 변곡점을 조명한 책을 소개한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에게 자문하고 Books팀이 검토한 뒤 두 권을 선정했다.

‘페르세폴리스’(2019)는 이란계 프랑스인 작가가 열 살에 겪은 이슬람 혁명(1979)을 그린 자전적 만화다. 구체적이고 사적인 서사의 힘, 흑백의 단순한 필치 때문에 홀로코스트를 다룬 아트 슈피겔만의 ‘쥐’와도 자주 비견되는 작품이다. 페르시아 제국의 고도(古都)를 제목에 내세워 중동의 무슬림 국가이면서도 페르시아어를 쓰며 ‘아랍’과 구분되는 이란 고유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혁명은 좌파 혁명인데 공화국은 이슬람으로 그대로 가자니 말이 안 돼.” 혁명 직후 아빠의 한탄에 공산주의자 삼촌은 이렇게 말한다. “국민 절반이 문맹인 나라에서 사람들을 마르크시즘으로 통합할 수는 없어. 사람들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는 것은 민족주의나 종교밖에 없다고.” 왕정을 무너뜨린 동력이었던 이데올로기가 퇴색하고 민족과 종교가 강력한 통치 원리로 등장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국민 99.99%가 이슬람 공화국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뉴스에 아빠는 “부정선거”라고 일축한다.

“프롤레타리아가 지배하는 날이 올 것”이라던 삼촌의 바람은 실현되지 않았다. 삼촌은 스파이로 몰려 처형당하고 혁명가들은 이슬람 공화국의 적으로 몰린다. 저자는 학교에서 히잡 착용을 강요당한다. 청재킷에 붙인 마이클 잭슨 배지가 타락의 상징이라는 혁명 수비대원에게 “미국의 무슬림 지도자 맬컴 X”라고 둘러대는 장면에서 자유와 억압이 뒤섞인 분위기가 드러난다.

“아랍의 침공”에 따른 이라크와 전쟁(1980~1988)이 격화되자 1984년 유럽 유학을 떠났다가 방황 끝에 돌아온다. “억압적 분위기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나라에서 사람들은 상징적인 반항을 이어간다. “해를 거듭하며 여성들의 머리는 1센티씩 길어지고 베일은 1센티씩 짧아졌다.” 삶은 ‘이슬람 원리주의’ 같은 이미지처럼 단편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 저항은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저자가 1994년 이란을 완전히 떠난 뒤 미국은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여전히 이란은 서방에 가장 적대적인 국가 중 하나다. 말풍선 속 아빠의 대사는 이란을 둘러싼 지정학의 핵심인 석유가 축복인 동시에 굴레임을 보여준다. “중동의 석유가 바닥나지 않는 한 앞으로 평화는 없을 거야.”

‘시아파의 부활과 중동정치의 지각변동’(2018)은 더 큰 그림을 제시한다. 이란·이라크 전쟁에 대해 이 책은 이스라엘이 지역 패권을 유지할 목적으로 1987년까지 이란을 전략적 우방으로 지원했다고 설명한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밀월은 걸프전으로 공동의 적 이라크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끝난다. 이란이 서구에 맞서는 ‘이슬람의 단결’을 주장하며 팔레스타인 문제를 제기하자 이스라엘은 이란을 ‘국제적 위협’으로 규정했다.

이란 테헤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외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로 있는 저자는 종파(宗派)라는 렌즈로 이란 사회를 들여다본다. 이란은 이슬람 소수 종파인 시아파의 본산이다. 시아파 성직자들은 19세기 입헌 혁명을 이끌었고 팔레비 왕조(1925~1979) 시절엔 성지 쿰(Qom)에서 신학생을 양성했다. 그중에 혁명 이후 초대 최고지도자가 되는 호메이니도 있었다.

저자는 이란을 중심으로 주변국의 시아파가 연대해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는 ‘시아파 초승달 시나리오’는 ‘시아파는 급진파’라는 왜곡된 이미지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한다.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중동 국가들이 초국가적 종파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란의 부상을 저지하기 위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연대설이 제기되면서,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던 기존 아랍의 대의가 무너지고 새로운 중동 질서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은 이스라엘·사우디 수교가 기정사실화된 지금의 중동 상황을 연상시킨다.

출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트럼프의 중동 전략을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연대를 강화해 반(反)이란 전선을 확대하려 한다”고 짚었다. 트럼프의 부활과 함께 그의 전략도 쟁점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란의 이번 공격 직후 “우리가 집권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며 현 바이든 행정부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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