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이제라도 불통 말고 소신을 택하십시오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2024. 4. 2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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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서민의 정치 구충제]
여당의 총선 참패
소통하지 않은 尹 탓일까
일러스트=유현호

“대통령께서 무서운 민심 앞에 반성해야 된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이 소셜미디어에 쓴 글이다. 그가 이런 말을 한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그에게 동조하는 이가 많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일부 국힘 의원, 보수 언론까지도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진 것이 윤 대통령 때문이라고 한다. “영수회담 8번 거절, 불통의 2년… 尹대통령 바뀌어야 한다.” “결국 모든 문제는 윤 대통령, 더 정확히는 윤 대통령 부부에게 있다.” 국힘이 총선에서 이기려면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도 만나고, 김건희 여사 특검도 받고, 이준석도 내치지 않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과연 소통은 승리를 가져다주고, 불통은 선거 패배로 직결되는 걸까. 시계를 4년 전으로 돌려보자. 2020년 4월 15일 총선에서 민주당은 180석이라는, 87 체제가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한다. 당시 대통령은 ‘불통의 끝판왕’ 문재인이었다. 총선 전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 몇 개만 나열해 본다.

#불통 1. 총선을 8개월여 남긴 2019년 8월 9일, 문통은 민정수석이던 조국을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한다.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이 되는 것도 상식 밖이었지만, 더 큰 문제는 그가 평소 말하던 만큼 깨끗한 이가 아니었다는 사실. 웅동학원과 자녀 입시 비리, 사모 펀드 의혹이 한 달 넘게 정치권을 달궜다. “지명을 철회하라”는 여론이 60%를 넘었지만, 문통은 끝내 조국을 장관에 임명했다. 결국 조국은 35일 만에 장관에서 물러났고, 철옹성 같던 문통의 지지율도 하락했지만, 문통은 끝내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청와대에서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뉴스1

#불통 2. 조국 사태 이후 문통은 자신이 임명했던 검찰총장과 그 측근들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에 들어갔다. 그 하이라이트는 총선 석 달 전인 2020년 1월 8일, 법무부 장관 추미애가 단행한 검찰 고위직 인사. 조국을 수사했던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부산으로, 아래 서술할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을 지휘하던 박찬호 대검 공공수사부장은 제주도로, 두 사건 수사를 총괄했던 배성범 중앙지검장은 임명된 지 반년도 안 된 상태에서 법무연수원장으로 좌천됐다. 후임 중앙지검장에 문통의 경희대 후배인 이성윤이, 반부패강력부장에 심재철이 임명되는 등 검찰 요직 빅4는 모두 호남 출신이 차지했다. ‘1·8 검찰 대학살’로 불린 이번 인사에 대해 조선일보는 다음과 같은 헤드라인을 뽑았다. ‘워터게이트 검사 자르고 탄핵된 닉슨, 그에 비견될 보복 인사.’ 여론이 들끓었지만 문통은 신경도 쓰지 않았고, 추미애는 “지역 안배. 기수 안배를 했다” “가장 형평성 있고 균형 있는 인사라고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불통 3. 총선을 두 달여 앞둔 2020년 1월 29일, 검찰은 송철호 울산시장,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그리고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백원우·한병도·박형철 등 13명을 기소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문통의 30년 지기인 송철호를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와 울산경찰청이 당시 울산시장이던 김기현을 상대로 공작을 벌였다는 것이다. 선거 개입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 실제로 황운하가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받는 등 기소된 이 상당수가 유죄판결에 처해졌으니, 민주당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무리한 기소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문통은 늘 그렇듯 침묵으로 일관했는데, 청와대 관계자는 “기소된 청와대 출신 인사들은 현재 모두 청와대를 떠난 상태”라며 “오늘 기소에 입장을 내지는 않을 것”이라 말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법무부 장관 추미애는 당연히 해야 할 공소장 공개를 거부하면서 “공소장 공개가 잘못된 관행”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불통 4. 총선 두 달 전인 2020년 2월, 중국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방역의 기본은 문을 걸어잠근 뒤 안에 있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 아무리 문통이 중국을 큰 나라로 섬기고 있다 해도 중국인 입국 금지는 당연히 해야 하는 조치였다. 실제로 많은 나라가 이 조치를 취했고, 우리 국민 90%와 감염학회를 비롯한 의사들도 여기에 찬성했지만, 청와대의 발표는 실망스러웠다. “중국인 입국자 수가 크게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실익이 별로 없는 행위” “지금 우리나라에서의 확산세가 중국으로부터 생긴 문제는 아니다.”

이것 말고도 청와대는 해외 순방이 영부인의 관광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취지의 중앙일보 칼럼(2019.6.11.)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등 언론에 대한 압박까지 서슴지 않았는데, 이런 역대급 불통에도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180석을 차지한 걸 보면, 윤통 입장에선 이번 총선 패배의 책임을 자신의 불통으로만 돌리는 게 억울할 수도 있겠다. 사실 소신과 불통은 그 방향이 맞느냐 아니냐에 의해 구분된다. 탄압받던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된 것도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한다’는 소신 때문인 것처럼, 지난 정권에서 만연한 포퓰리즘과 싸우고, 권력을 이용해 잇속을 차린 범죄자들을 처벌하려면 주위 사람들 말을 듣지 않고 직진할 필요도 있지 않겠는가? 이런 것들을 모조리 불통으로 몰아붙이며 ‘이재명에게 무릎 꿇어라’ ‘김건희 여사를 적들에게 내줘라’를 주문하는 건 지나치다.

4월 1일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과 환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대 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 발표를 시청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의료계를 향해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뉴스1

이번 총선에서 윤통이 소신이 아닌, 불통의 모습을 보여준 건 따로 있다. 밑도 끝도 없이 의대 정원 2000명을 늘리겠다고 한 것 말이다. 일을 그만두겠다는 전공의의 사직서를 받아주지 않으면서 ‘돌아오지 않으면 면허정지시키겠다’ ‘최고 수위의 형사처벌을 때리겠다’는 식의 협박을 일삼는 대통령을 보면서 의사와 그 가족을 포함한 50만명은 국힘에 투표할 의지를 상실했을 것이다. 의사 집단이 윤통의 든든한 지지자들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이탈이 더 안타까운데, 실제로 내 주위에 있는, 평소라면 보수를 찍었을 이 중 상당수가 의대 증원에 반대한 개혁신당을 찍었다니, 이것만 아니었다면 국힘이 가져갈 의석수는 더 늘어났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 의료 개혁이 그렇게 중요하다 해도, 왜 하필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이런 일을 벌였는지 난 이해할 수 없다. 윤통의 불통이 더 안타까운 점은 다음이다. 문통이 임기 중 보여준 거듭된 불통이 자신과 그 지지자를 위한 것이었다면, 윤통의 불통은 일부 국민의 ‘배아픔’을 잠시 사라지게 했을 뿐, 그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 최악의 불통이었다. 그래서 말씀드린다. 대통령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라도 불통 말고 소신을 택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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