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의 아름다운 퇴장

박돈규 기자 2024. 4. 2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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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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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 로봇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합작한 지체장애 1급 김병욱(왼쪽)씨와 공학자 공경철 KAIST 교수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김병욱씨는 2020년 국제 재활 로봇 올림픽 ‘사이배슬론(Cybathlon)’에서 한국에 사상 첫 금메달을 안긴 남자다. 사이배슬론은 사이보그(인조인간)와 애슬론(경기)의 합성어. 장애인들이 보조 로봇을 활용해 겨루는 대회로 4년마다 세계 최강자를 가린다. 아이언맨 올림픽으로도 불린다.

지체장애 1급인 김병욱씨는 KAIST 기계공학과 공경철 교수가 개발한 웨어러블(wearable) 로봇을 착용하고 대회에 출전했다. 우렁찬 기합을 넣으며 출발한 그는 계단 오르내리기 등 6가지 임무를 3분 47초 만에 마쳤다. 참가자들 중 가장 빨랐다. 로봇을 입은 아들이 우승하는 순간을 관중석에서 어머니가 지켜봤다.

“평생 휠체어를 타야 할 겁니다.” 1998년 김병욱씨가 뺑소니 교통사고로 정신을 잃었다 깨어났을 때 의사가 한 말이다. 배꼽 아래로는 돌덩이처럼 감각이 없었다. 하반신 완전 마비라는 불행이 닥쳤을 때 그는 스물네 살이었다. 청년은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삶을 포기하겠다는 아들을 어머니가 살렸고 재활을 도왔다. 김병욱씨는 기술을 배웠고 장애인용 휠체어와 시트를 맞춤형으로 만드는 작은 공방을 차렸다.

공경철 교수는 2015년에 그를 처음 만났다. 이듬해 스위스에서 열릴 사이배슬론에 출전할 장애인을 찾고 있었다. 자격 요건 중 하나가 하반신 완전 마비. 김병욱씨는 그 행운을 붙잡았다. 공 교수가 만든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기적처럼 다시 일어선 것이다. 그때 기분은 어땠을까. “휠체어에서는 ‘아래쪽 공기’만 마셨는데 로봇 덕에 경험한 ‘위쪽 공기’는 훨씬 맑더군요(웃음).”

로봇을 만든다 한들 유능한 파일럿(조종사)이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김병욱씨는 최초의 소비자라는 사명감으로 여러 가지 테스트에 참여했다. 로봇을 입은 그가 피드백을 쏟아낸 덕분에 성능을 빠르게 개선할 수 있었다. 보행이 어려운 사람들에겐 김병욱씨가 로봇을 입고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가 ‘희망’이었다.

공 교수가 창업한 엔젤로보틱스는 최근 코스닥에 입성했다. 이 스타트업이 만든 재활치료용 로봇들은 병원에서 맹활약 중이다. 장애인의 날(4월 20일)과 과학의 날(4월 21일)이 어깨를 붙이고 있는 달력을 보면서 두 남자가 떠올랐다. 김병욱씨는 “목표를 다 이뤘으니 본업인 공방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아이언맨’의 아름다운 퇴장이다.

2020년 사이배슬론에서 금메달을 딴 김병욱 선수의 경기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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