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신도시 80년대생의 불만과 이준석의 당선

조귀동 경제칼럼니스트 2024. 4. 2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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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 세대보다 자산 감소 첫 세대
집값 폭등으로 신도시 밀려
‘동탄을 분당으로’ 믿지 않아
중산층 새 성공방정식 필요한 때

총선 사흘 전인 7일 동탄호수공원에서 열린 경기도 화성을 국회의원 후보들의 유세 현장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왜 승리할 수 있었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공영운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유세를 보는 사람들은 대개 중장년층이었다. 정세균 전 총리는 공 후보가 능력 있는 사람이라며, 그가 몸담았던 현대차가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지 강조했다. 같은 장소에서 1시간 뒤 열린 이 후보 유세에는 공원과 인근 상업 시설로 나들이를 나왔던 젊은 가족 수백명이 모여들었다. 이 후보는 “지금 나와 있는 후보들 중에서 아이들 교육에 가장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아이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정치인이 누굽니까”라고 외쳤다. 선거 운동 기간 그는 수십 년 전 지하철 종점에 신도시로 건설된 상계동 출신임을 강조했다. “젊은 세대 여러분이 자녀에게 똑같은 꿈을 심어줄 수 있는 세상,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정치인 이준석의 목표”라고도 즐겨 말했다. 화성시을 선거는 고도성장 수혜를 그대로 입은 60년대생과, 과거의 중산층 성공 공식을 따라갈 수 없는 80년대생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후보의 역전극은 서울 강남 3구나 마포‧용산‧성동의 ‘기득권’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경기도 신도시 80년대생의 표심이 몰린 결과였다. 2~3일 실시돼 마지막으로 공표된 여론조사(YTN‧엠브레인퍼블릭 실시)에서 이 후보의 지지율은 30대 46%, 40대 29%, 50대 25%였다. 반면 공 후보는 각각 27%, 54%, 53%로 정반대였다. 이후 40대까지 이준석 지지로 돌아서게 됐다.

공 후보는 고도성장 속에서 60년대생 상위 중산층이 어떻게 승리의 역사를 썼는지 보여주는 인물이다. 졸업 정원제로 대학생 수가 대폭 늘어난 다음 해(1983년) 입학해, 중산층 경제력 증가에 호황을 맞이한 신문사에 91년 입사했다. 거침없는 해외 시장 개척과 고급화 전략을 추진한 현대차로 2005년 이직했다. 선거 과정에서 논란이 된 성수동 다가구주택 증여와 관련, 등기부등본의 주소지가 서울 대치동과 경기도 과천의 대표 재건축 아파트인 건 이들 세대의 자산 증식이 어떻게 이뤄졌나를 드러낸다.

번듯한 중산층이 되는 전통적인 경로가 좁아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생부터다. 김상일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은 지난해 발표한 논문(‘가계금융복지데이터를 이용한 세대 간 순자산 격차 분석’)에서 세대별 자산 축적 추이(1940~1984년생 대상)를 분석했다. 같은 나이일 때 자산을 비교하니 1985~1996년생(Y세대)은 직전 세대보다 그 규모가 작은 첫 세대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노동 시장이 바뀌면서 대기업 취업 기회가 급감했을 뿐만 아니라, 내 집 마련을 위해 돈을 모으기 전 주택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경기도 신도시에 집을 샀더라도 교육, 교통, 문화 등에서 격차를 벌려가는 서울 진입은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다. “영끌 갭투자는 젊은이들이 많이 한다”는 공 후보의 발언에 분노하는 건 당연했다.

이 후보의 메시지에서 핵심은 동탄을 경기도 분당 같은 곳으로 바꾸겠다는 게 아니라, 누구나 노력하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겠다는 전통적 사회계약의 복원이었다. 강남 8학군 같은 교육 특구 조성을 주장한 공 후보를 겨냥해 “8학군은 자기 재력으로 사교육을 덕지덕지 발라 아이를 좋은 학교 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을 하는 그런 문화”라고 비판하며 공교육을 강조한 게 대표적이다. 이 대표의 유세마다 이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것은 사회계약이 무너진 상황을 외면하고, 현상유지적 세력이 된 양대 정당에 대한 불만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준다. 앞으로 정치 지형을 바꿀 에너지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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