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딛고 느낀 한지 촉감 “ㅎ…ㅐ…ㅇ, ㅂ…ㅗ…ㄱ”

이채완 기자 2024. 4. 20.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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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ㅐㅇ, ㅂㅗㄱ."

뇌병변 장애 1급인 박누리 씨(33)가 오른손 검지로 종이판에 새겨진 자음과 모음을 가리켰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15일 서울 마포구 뇌병변장애인비전센터를 찾았다.

박 씨 등 뇌병변 장애인 7명이 휠체어에 앉은 채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일반 종이와 한지를 촉감으로 구분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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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장애인의 날… 마포 뇌병변비전센터에 싹트는 희망
뇌종양 앓은 30대 뇌병변 장애인
“장애인 더 많이 밖으로 나왔으면”
24만명 중 취업자 3만명 그쳐
15일 뇌병변 장애인의 돌봄·교육·건강관리를 지원하는 서울 마포구 뇌병변장애인비전센터에서 촉감 발달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이용자들은 “집에 갇혀 지내다가 이곳에서 동료 장애인을 만나 사회 활동을 하니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ㅎ…ㅐ…ㅇ, ㅂ…ㅗ…ㄱ.”

뇌병변 장애 1급인 박누리 씨(33)가 오른손 검지로 종이판에 새겨진 자음과 모음을 가리켰다. 그가 신체 중 유일하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손가락이었다. 간단한 문장을 완성하는 데 약 1분이 걸렸다. 기자가 “‘행복해요’라는 말씀이 맞을까요?”라고 묻자 박 씨는 눈을 두 번 깜빡이고 입꼬리 한쪽을 올리며 미소를 보였다. 맞다는 뜻이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15일 서울 마포구 뇌병변장애인비전센터를 찾았다. 박 씨 등 뇌병변 장애인 7명이 휠체어에 앉은 채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일반 종이와 한지를 촉감으로 구분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뇌병변 장애는 뇌졸중 등으로 신체 일부가 마비돼 말하거나 걷기 어려운 상태다. 표정을 짓기도 쉽지 않지만 이날 참가자들은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얼굴 근육을 활용해 활짝 웃으며 프로그램에 열중했다.

이 센터는 2021년 전국 최초로 생긴 성인 뇌병변 종합 지원 시설이다. 뇌병변 장애인은 특수학교 등을 졸업한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사회활동을 할 기회를 잃어 고립되는 경우가 흔한데, 이들을 집 밖으로 초대하기 위한 시설이다. 여기 등록된 뇌병변 장애인 15명은 사회복지사 11명 등 직원과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감각 발달 활동을 한다. 출입문은 휠체어에 앉은 채 여닫을 수 있도록 손잡이가 낮았다. 오래 앉아 있기 힘든 이들을 위해 침대도 갖췄다.

하지만 이들처럼 사회로 나올 수 있는 뇌병변 장애인은 극소수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뇌병변 장애인은 24만546명으로, 지체장애와 청각장애, 시각장애에 이어 네 번째로 많았다. 하지만 이 중 취업자는 3만2359명에 불과하다. 신체적 제약 때문에 취업은커녕 집 밖에 나서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박 씨는 중학교 때 뇌종양으로 장애를 얻었다. 인지 능력은 그대로였지만 걷지도, 음식을 씹지도 못해 온종일 침대에 누워 지내며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그러나 이 센터를 알게 된 후 웃음이 늘었다. 박 씨는 3분 정도 종이판 위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 “장애인들이 더 많이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표현했다.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소식이 알려지는 건 대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다. 지난해 11월 경기 양주시에선 뇌병변을 지닌 70대 여성이 집에서 쓰러졌으나 끝내 도움을 받지 못하고 숨졌다. 같은 해 10월엔 대구에서 60대 아버지가 중증 뇌병변 장애 아들을 살해하고 본인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혼자 살아남았다.

성인 뇌병변 장애인을 위한 지원 시설은 마포구 뇌병변장애인비전센터를 포함해 전국에 3곳뿐이다. 1곳당 15명만 이용할 수 있다. 김민성 뇌병변장애인비전센터장은 “뇌병변 장애인의 보호자들은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살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종일 돌봄이 필요하다”며 “그런데 이런 시설이 적다 보니 몇 년씩 대기하다 못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뇌병변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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