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 정 많은데 장애인 인식은 부족, 지도층부터 개선”

배현정 2024. 4. 20.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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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장애인의 날
이수성 전 총리는 1998년부터 ‘장애인먼저’ 실천운동을 이끌고 있다. 김상선 기자
우리나라는 장애인에게도 선진국일까?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그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장애인의 날(20일)을 나흘 앞두고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만난 이수성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 이사장은 “장애인의 이동권·교육권을 보장해주는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규정했다.

“장애인에게는 약속 시간이나 출퇴근 시간에 맞춰 나가는 일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선 사회 구성원이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요. 특수학교 논란도 안타깝죠.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자라날 때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할 줄 아는 인성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제29대 국무총리(1995~1997년)를 지낸 이 이사장은 국무총리에서 물러난 직후인 1998년부터 올해로 26년째 운동본부를 이끌고 있다. 운동본부가 펼치는 ‘장애인먼저’ 실천운동은 장애인의 불편과 소외감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로 1996년 시작된 활동이다.

“총리 시절 제일 먼저 실행한 일이 총리 공관과 정부종합청사에 장애인이 다닐 수 있는 경사로를 설치한 겁니다. 그리고 총리 공관으로 장애계 인사들을 초대했어요. 당시 한 중년부인이 ‘딸이 중증장애인인데, 자기가 죽으면 아이는 어떡하냐’며 우셨습니다. 그때 복지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됐습니다.”

그는 함무라비법전 얘기를 들어 “태양신 샤마슈라가 함무라비 대왕에게 검을 전해주며 건넨 말은 ‘이 칼로 약자를 위해 힘써 행복이 깃들게 하라’는 당부였다”며 “사회 지도층부터 장애운동에 적극 참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운동본부는 요즘 청소년들이 장애인을 포용하는 인재로 자라날 수 있도록 ‘장애이해 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매년 교육부와 함께 장애이해 교육을 위한 콘텐트를 제작해 교육 현장에 배포하고, 전국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개최한다. 이 이사장은 “지난해 백일장에는 2만6000여 편의 작품이 응모됐다”며 “장애인에 관심을 갖는 학생이 이렇게 많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고 모든 학생에게 상을 줘서 격려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대 총장, 국무총리, 정치인으로 살아온 이 이사장은 한순간도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놓지 않았다.

‘2023 장애청소년 미술 초청전’에 참석한 이 전 총리. [사진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
“어린 시절 두 살 위인 누님과 뒷산에 올라갔는데 미끄러지면서 누님의 척추 뼈가 손상됐어요. 장애를 가진 누님을 보며, 전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 돌보며 살겠다고 생각했었죠. 서울대 총장 시절에는 평생 집 안에만 있던 20대 장애 여성의 어머니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은 적이 있어요. 딸에게 ‘창밖 세상 구경을 시켜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는데, 남편이 반대해 끝내 무산됐죠. 당시엔 장애인을 숨기는 가정이 많았어요. 너무 가슴이 아팠죠. 이러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이 이사장은 총리 시절 장애인 복지 예산의 증액 등에 관심을 기울였고, 장애인 행사에 자주 참석하면서 자연스레 운동본부의 이사장도 맡게 됐다.

“‘장애인먼저’ 실천운동은 어렵거나 거창한 게 아니에요. 뉴질랜드에서의 일입니다. 시각장애 여성이 안내견 없이 길을 건너는 도중에 신호등이 바뀌었어요. 그러자 어디선가 시민들이 몰려들어 그를 에워쌌고, 그가 안전하게 길을 다 건너자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각자의 길로 흩어졌습니다. 그때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장애인먼저는 따뜻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얘기다. 그는 “우리 국민은 능력 있고 정(情)도 많은 착한 민족인데, 장애인 인식은 아직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했다.

끝으로 이 이사장은 사회 원로로서 지난 총선을 보면서 무거운 책임감과 비통함을 느꼈다고 했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 바탕이 아닌, 각당의 이익에 따라 지역과 계층이 구분되고 있어요.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데, 위에서 탁류가 흘러 국민 정서까지 어지럽히는 양상입니다.”

그는 “부자 나라가 돼도 나 혼자 잘 살겠다는 이기주의로는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없다”며 “정을 나누는 한국인 본연의 따뜻한 마음을 되찾아야, 개인과 국가의 운명이 희망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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