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꽃지짐에 두견주…삼짇날 뭣이 더 부러울까

2024. 4. 20.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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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가 있는 제철 음식
음력 3월 3일, 삼짇날은 한국인에게 놀이의 날이었다. 여자들은 화전을 지져 먹을 만반의 준비를 해서 화전놀이를 떠나고, 남자들은 술과 안주를 챙겨 답청놀이를 떠났다. 선조들은 이 아름다운 봄날, 무엇을 먹고 마시며 즐기고 놀았는지 한 번 엿보자.

요즘 SNS에 올라오는 음식 사진 중 진달래 화전이 특히 눈에 띤다. 동그란 쌀떡에 진달래를 올린 화려하고 예쁜 음식인데,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다. 찹쌀가루를 뜨거운 물에 익반죽해서 동글납작하게 만든 다음 팬에 기름을 두르고 지지면서 진달래 꽃잎을 사뿐히 올리면 끝. 그리고 꿀이나 시럽 등을 묻혀 먹으면 된다. 화전은 ‘꽃지짐’이라고도 불리는데 계절감을 잘 드러내는 독특하고 낭만적인 떡이다.

화전놀이 열린 삼짇날은 여성의 날

진달래 겨자채. [사진 온지음]
화전은 삼월 삼짇날의 화전놀이에서 유래했다. 옛 여성들은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지져 먹으며 하루를 보내기 위해 봄소풍을 갔다. 전라도 지방의 민속과 전통을 세세하게 담아낸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에는 당시 행해졌던 화전놀이와 요즘의 백일장과 같은 ‘화전가 짓기 대회’에서 장원을 한 어느 부인의 화전가가 나온다.

“어화 우리 벗님네야 화전놀이 가자스라/ 비단같은 골짜기에 우리들도 꽃이 되어 별유천지 하루 놀음, 화전 말고 무엇 있소. 화전놀이 하러 가세”

삼월 삼짇날 열렸던 화전놀이는 단순한 여가나 놀이 차원을 넘어 마을의 공식적인 행사였다. 가부장적 전통 질서에서 해방되어 온전히 여성만의 공간을 찾아 경개(景槪) 좋은 곳에 모여 화전을 부쳐 나누어 먹었다. 이날은 마을의 모든 여성들이 부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식적인 여성의 날이기도 했다.

“백백 홍홍 가진 교태 만화방창 시절이라/ 놀아보세 놀아보세 화전하며 놀아보세
여자 동류 서로 만나 만단개유 하는 말이/ 백년 광음 헛쁜 인생 아니 놀고 무엇하리”

진달래 화전. [사진 온지음]
구전돼온 민요를 봐도 이날 여성들은 술도 마시고 마음껏 취할 수 있었으며 남성 못지않은 호기를 부릴 수도 있었다. 백년이 광음이고 헛쁜 인생이니 놀자고 한다. 물론 여럿이 모여 앉아 화전을 만들며 온갖 시집살이의 서러움을 토해 내는 자리기도 했다. 예로부터 부엌과 음식 만드는 일은 여성의 몫으로 여겨졌고 자신을 위해 음식을 만들기보다 가족이나 주로 타인을 위해 음식을 만들었다. 그런데 진달래 화전은 여성이 온전히 자신을 위해 만든 음식으로 아름다운 여성성을 드러낸 음식이다. 화전 자체도 아름답지만 화전 만드는 날, 만드는 장소, 만드는 분위기까지 화전은 특별한 미(美)를 드러내는 음식이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K-디저트의 시대에 진달래 화전의 화려한 부활을 본다.

음력 삼월 삼짇날의 ‘답청연’은 과거 조선 왕실의 연회행사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만날 수 있다. 세조 7년 신사(1461년) 3월 6일에 “기로(耆老)와 재추(宰樞)들이 모화관(慕華館)에서 답청연(踏靑宴)을 베푸니, 술과 풍악을 내려 주고, 도승지 성임(成任)에게 명하여 선온(宣醞)을 가지고 가서 내려 주도록 하였다”고 나온다. 선온은 국왕이 신하에게 내려 주는 술이다.

그러나 세종 6년 갑진(1424년) 기사에는 “이번에 흥천사(興天寺)의 승려들이 승과를 보일 때 감히 유밀과(油蜜果)를 쓴데다가 금령(禁令)을 어기고 술을 마셨으며, 답청절(踏靑節·삼짇날)의 놀이와 중양절(重陽節)의 비용에 대는 등, 욕심을 부리고 망녕되이 행동하여 금령을 어려워하지 않고 경솔하게 국법을 범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의 상소가 나온다. 그뿐만이 아니다. 성종 21년 경술(1490년)의 상소에도 “삼춘(三春)의 답청(踏靑)에 주악(酒樂)을 내려 주어 즐겁게 해 주었으나 비용의 폐단과 왕의 성덕을 우려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렇게 답청연은 왕실에서 노인과 신하를 위로하여 베푼 행사였으나 갈수록 그 폐단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후 삼월 삼짇날 답청일에는 여성은 함께 모여 화전가를 지으며 놀고, 남성들은 소소하게 음식과 안주를 준비하여 함께 모여 노는 풍속으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남성들의 삼짇날 술과 안주를 즐기는 풍경을 담아낸 개항기의 직업 화가 김준근의 그림을 보자. 바로 그림 위 오른쪽에 ‘봄에 답청가서 노는 모습’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여기서 ‘답청(踏靑)’이란 따뜻한 봄날 파릇파릇 돋아난 풀을 밟는다는 뜻으로 봄이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산과 들로 나가 꽃놀이를 하면서 하루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그림에서 상투 튼 남성 넷과 댕기 머리 사내가 소풍을 즐기고 있다. 한쪽에는 간이 화덕이 준비돼 있고 솥이 올려 있다. 댕기 머리 남자가 술병을 들고 있는데 이 술병에는 무슨 술이 들었을까?

두견주, 국가무형문화재로 등록

김준근의 그림 ‘봄에 답청 가서 노는 모양’. [사진 코펜하겐국립박물관]
우리는 계절별로 음식을 만들어 이를 즐기는 절기 풍속이 있었다. 여기에는 술이 빠지지 않았다. 예로부터 우리는 산과 들에서 채취한 열매·약초·꽃들을 원료로 사용해, 절기주(節期酒)라는 이름의 술을 탄생시켰다.

대표적인 봄의 절기주는 식용할 수 있는 진달래꽃(두견화)을 넣어 담는 두견주다. 두견주에서 맡는 진달래꽃 향기는 봄이 다가오는 설렘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두견주는 충남 당진지역에 전승되어 오는 술이다. 당진 지역 박씨 가문의 술로 현재 국가무형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현재는 ‘면천 두견주 보존회’에서 담그는 술로 한 마을 공동체의 술이 되었으니 그 의미가 더욱 깊다. 봄이면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진달래꽃을 넣은 두견주가 봄맞이 술로 제격이라면 안주는 무엇이 어울릴까?

진달래꽃을 넣은 상큼한 진달래 겨자채도 좋을 것이다. 신선한 채소와 배, 편육, 해물 등을 겨자 즙으로 무쳐 만드는 겨자채에 진달래 꽃잎을 올려 봄맛을 즐기면 된다. 아니면 봄의 전령사인 향긋한 두릅과 죽순을 소재로 한 두릅냉채를 곁들여 보면 어떨까? 두릅냉채 안주와 두견주가 함께하는 봄이라면 더 부러울 것이 없을 것이다.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이자 고려대 생활과학과 객원교수. 한국의 밥과 채소, 고기와 장, 전통주 문화에 관한 연구와 고조리서, 종가음식 등 다방면으로 음식연구를 해오고 있다. 현재 ‘온지음’ 맛공방 자문위원이기도 하며 『통일식당 개성밥상』 등 40여 권의 저서를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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