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새마을운동

2024. 4. 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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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 전북 고창, 1972년 ⓒ김녕만
새마을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내 고향도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던 그 시절, 오늘 본 그곳은 어제 봤던 그것이 아니었다. 지붕 개량, 농로와 마을 길 확장, 하천 정비 등 날마다 마을 사람 수십 명이 모여 삽질하고 흙과 돌멩이를 실어 나르느라 온종일 분주했다. 1970년대 초, 농촌의 환경을 개선하고 소득을 올린다는 새마을운동의 목표는 새마을 노래의 가사처럼 “잘살아보세~”가 키워드였다. 사실 대대로 우리나라 농촌이 잘살았던 적이 있었을까. 대부분 늘 배고팠고 헐벗었고 부족했다. 그러니 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난다는 새마을운동에 반대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돌격 앞으로!”의 군인정신으로 새벽부터 밤까지 새로운 마을공동체 건설에 앞장섰다.

새마을운동은 20대 초반의 사진가 지망생인 내게도 커다란 변곡점이었다. 급변하는 고향의 모습은 나를 소리 없이 재촉했다. 오늘 기록하지 않으면 내일이면 이미 늦는 것을 자주 목격했고 체험했다. 이날도 한 마을에 들어서자 길을 확장하기 위해서 초가지붕의 볏짚을 걷어내고 집의 한 귀퉁이를 잘라내는 중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집이 헐리는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 나무 기둥만 앙상하게 드러난 초가, 멀리 교회의 종탑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형식은 종종 내용을 지배한다. 둥근 초가지붕이 각진 슬레이트 지붕으로, 구불구불한 마을 길이 반듯한 지름길로, 곡선이 직선으로 바뀌면서 사람들의 둥글둥글한 마음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일까. 잘살아보려고 열심히 변화를 추구했건만 오히려 농촌의 젊은이들은 하나, 둘 도시로 떠났다. 나도 그때쯤 눈에 낯설어지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왔다.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농촌은 잘살게 되었는데 속수무책 소멸 중이라는 걱정이 곳곳에서 들린다. 그렇다면 잘 산다는 의미를 다시 짚어봐야 할 때가 아닐까? 기꺼이 살고 싶은 농촌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운동이 필요한 시점일지 모른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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