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중산층도 남 일 아니다…과세 대상 5년 새 2배로 급증

2024. 4. 2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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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22대 국회 출범, 상속세 개편론 재점화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LG 오너 일가는 상속세 일부가 너무 많다며 지난해 과세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4일 서울행정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구 회장 등이 2018년 별세한 구본무 전 회장으로부터 상속한 유산은 ㈜LG 지분 11.28%를 비롯해 약 2조원 규모로 구 회장 등에게 부과된 상속세는 9900억원이다. 일반 국민은 재벌가의 송사(訟事)에 무덤덤할 만도 한데 소식이 전해지자 반응이 뜨겁다. 누리꾼 mins****는 “과거를 기준으로 나라에서 (유산의) 50%를 가져가는 게 맞느냐, (그사이) 물가가 몇 배가 올랐다”면서 “요새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상속세를 안 내는 사람이 (주변에 거의) 없다”고 적었다.

“소득세를 평생 냈는데 다시 상속세를 내는 것은 이중과세”라거나, “현실에 맞게 빨리 법 개정을 해 달라” 등의 반응도 온라인에서 많은 추천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최근 중산층도 상속세를 내는 경우가 급증한 때문이다. 지난해 국세청 발표에 따르면 2018년 8002명이던 상속세 과세인원(피상속인)은 2022년 1만5760명으로 5년 사이 2배로 늘었다. 2022년 기준 과세비율(사망자 수 대비 피상속인 비율)은 4.53%. 지난해는 이보다 더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히 계산하면 국민의 5%는 상속세를 내야 한다는 얘기다. 먼 부유층의 일로만 여겼던 상속세 문제가 더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그만큼 강해졌다.

호주·캐나다 등은 상속세 아예 폐지

총선 종료와 다음 달 22대 국회 출범을 계기로 상속세 개편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당초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은 대선 공약인 상속세 개편을 추진해왔다. 정부와 여당은 현행 상속세 체계가 국민의 세금 납부 부담을 가중시키고, 기업의 경영활동 위축에 따른 가치 저평가와 증시 등 자본시장 수요 위축을 유발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총 189석을 확보한 야권은 상속세 완화가 부자 감세와 이를 통한 ‘부의 대물림’ 강화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며 신중한 입장을 고수 중이다. 이 때문에 입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재계는 물론 중산층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현행 과세표준 구간별 상속세율은 ▶1억원 이하는 10% ▶1억원 초과~5억원 이하는 20% ▶5억원 초과~10억원 이하는 30% ▶10억원 초과~30억원 이하는 40% ▶30억원 초과는 50%다. 최고세율 50%는 일본(55%)에 이은 세계 2위다. 특히 기업 오너가 최대주주 지분을 상속할 땐 최고세율 60%(평가액의 20% 할증 과세)로 세계 1위다. 상속세 제도를 유지 중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8개 회원국 평균 최고세율(27.1%)보다 1.8~2.2배 높다. 프랑스(45%)나 미국·영국(각 40%), 독일(30%) 모두 한국보다 낮다. 이탈리아(4%)처럼 최고세율이 극히 낮거나, 캐나다·호주처럼 상속세를 아예 폐지한 선진국도 적잖다.

한국에서 상속세는 내로라하는 재벌마저 감당하기 힘든 과도한 ‘징벌적 세금’으로 언급된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상속세 납부를 위해 올해에만 1조원 규모가 넘는 삼성전자 등의 지분을 매각하는 등, 삼성가(家)에선 2020년 별세한 이건희 전 회장으로부터 상속한 유산에 부과된 12조원 규모의 상속세를 내기 위해 2021년부터 해마다 주력 계열사 지분을 팔고 있다. 그때마다 기업 주가가 출렁거리면서 개인 투자자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약품그룹은 송영숙 회장이 5400억원 규모의 상속세 중 절반 납부를 위해 최근 OCI그룹에 지분을 매각하려다 두 아들과 경영권 분쟁을 겪어야 했다.

넥슨은 김정주 창업주가 2022년 별세한 이후 유족들이 지주사인 NXC 지분 29.3%를 기획재정부에 물납(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금전 외에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상속세를 내는 방식)해 정부가 2대주주로 올라섰다. 최대 7조원 규모 상속세가 예상되는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이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상속세 때문에 셀트리온은 국영기업이 될 것”이라고 토로한 이유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중소기업도 상속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중소기업은 가업을 승계하지 못하면 존속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이를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다가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전했다.

중산층의 경우엔 이런 높은 상속세율과 함께, 현재 물가에 맞지 않는 과세표준이 부담 요인으로 작용 중이다. 현행 상속세율과 과세표준은 1999년 마지막 개편 이후 25년째 유지되고 있다. 즉, 25년 전 물가를 기준으로 정립된 체계라 그사이의 오른 물가는 반영이 안 돼 있다. 25년 전만 해도 10억원은 부유층만 가질 수 있는 큰 금액으로 인식됐다. 10억원 초과~30억원 이하의 유산에 매겨지는 40% 상속세율이 당시만 해도 중산층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25년간 경제 규모가 급증하는 한편 물가는 거침없이 올랐고, 특히 지난 정부 때 전국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중산층 재산 수준이 달라졌는데 상속세 체계는 25년 전 그대로다.

예컨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지난해 11월 기준 약 11억5000만원이다. 이를 한 채 상속하면 과세표준에 따라 40%의 상속세율, 1억6000만원의 누진공제가 적용된다. 이때 배우자와 자녀가 있으면 배우자공제(5억원) 및 자녀공제(1인당 5000만원)에다 인적공제(5억원)까지 합쳐서 상속세를 면제받을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시대 상황을 제대로 반영 못한 체계라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고령의 배우자와 사별로 자녀 1명만 있으면 서울 아파트 한 채를 물려받으면서 상속세만 1억원가량 내야 한다는 단순계산이 나온다. 배우자공제나 자녀공제를 받아야만 세금 부담이 유의미하게 줄어드는 게 미혼과 비혼, 저출산과 딩크(자녀 없는 맞벌이 부부) 확산 등으로 1~2인 가구가 보편화하면서 국민 삶의 형태가 달라진 것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셀트리온 회장 “상속세 탓 국영기업 될 것”

취득세 등 다른 세금은 별도로 내야 해서 이중과세라는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약 15년간 전국 아파트 가격이 2배, 서울 아파트 가격이 3배 올랐는데 현행 상속세율과 과세표준은 이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상속세 연대 납세 의무가 있는 것도 개선점으로 거론된다. 가족 전체에 매겨지는 상속세를 내지 않고 사망한 상속인이 있으면 다른 상속인이 그 몫까지 내야 해 상속세 부담이 가중된다는 지적이다. 중산층이 이처럼 상속세 폭탄을 맞고 있는 한국과 달리, 해외 주요국은 사실상 부유층만 대상으로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미국은 부모 1인당 유산 1170만 달러(약 163억원), 부모 합산 2340만 달러(약 326억원)까지 상속세가 면제된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상속세 부과에 불복하는 사례도 해마다 늘고 있다. 조세심판원에 따르면 상속세 조세심판 접수 건수는 2019년 221건에서 2021년 261건, 지난해 307건으로 증가했다(전년 이월분 포함). 전문가들은 22대 국회가 25년 묵은 상속세 체계를 현 시대 상황에 맞게 개편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상속세 감면을 부자 감세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지금의 상속세율은 해외 주요국 대비 지나치게 높다”며 “이를 유지할 경우 국가 경제뿐 아니라 국민 복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상속세 부담을 다른 선진국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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