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손자병법 DNA 가진 나라, 정보굴기로 세계패권 꿈
[제3전선, 정보전쟁] 진화하는 중국의 국제 정보전
이란 혁명 예측 실패 후 국가안전부 창설
서방 국가들은 중국의 공세적 정보활동에 대한 대응에 분주하다. 미국은 2020년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을 중국의 대미(對美) 스파이 거점으로 지목해 전격 폐쇄했다. 2023년 10월에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정보수장이 미국 캘리포니아에 모여 중국의 정보전 위협을 이례적으로 공개 경고했다. 정보기관 수장의 동선은 그 자체가 비밀인데, 5개국 정보수장이 동선을 드러낸 것 뿐 아니라 회동 내용까지 공개하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사실 중국은 정보전 DNA를 타고난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원전 360년경 손자병법을 통해 세계 최초로 스파이 활용법을 교본으로 남겼을 정도다. 기원후 200년쯤에는 제갈량의 라이벌인 사마의가 “적진에 스파이를 침투시켜 가까이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전쟁의 기본”이라고 가르쳤다. 이처럼 중국은 정보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도 중국고전의 정보전 지혜는 모든 국가의 금언이 되고 있다.
그런 중국이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소련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1921년 창당한 중국 공산당은 혁명 성공을 위해 1928년 저우언라이(周恩來)를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에 보내 혁명에 필요한 정보전의 기법을 전수받았다. 저우는 귀국 후 소련에서 습득한 것을 토대로 공산당 산하에 중앙특별행동과라는 비밀 정보조직을 창설했다. 특히 국공합작 당시 국민당 정보조직인 남의사(藍衣社)가 공산당 인사들을 회유해 전향시키는 사건이 빈발하자, 소련으로부터 방첩과 반당 분자 색출 등 혁명 정보전을 더욱 체계적으로 배워 중국에 이식했다. 이처럼 현대 중국의 국가정보는 소련으로부터 수입한 혁명 정보전이 중요한 토대가 됐다.
중국은 후진타오 시대에 뜻하지 않은 대도약의 행운을 얻었다. 9·11 테러와 미국의 금융위기가 도약의 발판이었다. 테러와 금융위기로 서방세계가 정신이 없는 틈을 타 중국은 스파이를 침투시키는 등 조용하게 정보력을 쌓아 나갔다. 손자병법의 격안관화(隔岸觀火) 전략을 바로 실천으로 옮긴 것이다. 격안관화는 불이 난 상대 진영의 혼란을 틈타 승리 전략을 세운다는 뜻이다. 또한 2008년 북경 올림픽을 전후해 급속히 발전한 디지털 기술을 정보에 접목시켜 중국 국가정보의 국제화에도 시동을 걸었다.
탄력을 받은 중국의 국가정보는 시진핑 시대에 완전히 탈바꿈했다. 2012년 집권한 시진핑은 건국 100년이 되는 2049년까지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완성한다는 원대한 국가 비전을 정했다. 이른바 ‘중국몽’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단행한 주요 조치 가운데 한 축이 정보기관의 과감한 재정비였다. 우선 공산당 산하 국가안보위원회를 통해 정보활동이 국가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도록 중앙집권화했다. 특히 정보기관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도록 관련 법제를 모두 정비했다. 2014년 반간첩법을 필두로 2015년 국가안전법, 2016년 사이버안전법, 2017년 국가정보법을 연이어 제정했다. 이 가운데 주목할 것은 정보기관의 협조 요청이 있을 경우 중국의 모든 국민과 국가기관 심지어 민간조직도 이에 응하도록 규정한 점이다(국가정보법 7조·14조·16조, 국가안전법 77조).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정보기관의 협조 요청을 거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모든 국민과 기관, 조직을 정보전에 참여시키는 ‘정보국가’라고도 말할 수 있다. 또한 공산당이 정보기관을 지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국가정보법 3조, 국가안전법 4조). 정보와 정치의 분리가 아니라 정보를 정치에 종속시켜 놓았다.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서방에서는 시 주석의 3연임 반대 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도 숨겨져 있으며, 이는 정보기관을 정권 보위기관으로 퇴행시킨 것이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중국, 산업 스파이로 성장 10년 앞당겨”
오늘날 중국은 정보의 임무와 역할에 대해 외세로부터의 방어라는 소극적 생각에서 벗어나 국가 비전을 달성할 수 있는 전략적 수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국가정보가 강대국형으로 진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의 정보전이 미국과 일전에 대비해 과감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숨은 손: 중국 공산당이 세계를 재편하는 방법』의 공저자인 해밀턴과 올베르크는 중국 정보당국이 특히 유럽에 공을 들이는 이유에 대해 유럽과 미국을 분열시키거나 적어도 유럽이 중립을 지키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관점에서 보면 최근의 공세적 정보활동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외침을 당하고 나라가 사분오열되는 굴곡을 겪었고, 지금도 대만·홍콩 등 국가분열의 리스크를 안고 있다. 특히 미국과 패권경쟁은 국가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이 같은 국가위기 극복에 정보가 앞장서는 것은 중국 정보기관의 당연한 책무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적 통제가 보장되지 않는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정보기관을 정권보위용으로 활용할 경우 인권탄압 등 여러 가지 국제적 분란을 일으킬 수 있다. 국제사회가 이를 우려하고 비판하는 것 또한 극히 당연한 일이다.
한국은 어느 국가보다 중국과 교류가 많은 나라다. 그러기에 중국의 정보전에 대한 우려와 비판에 그칠 게 아니라 차분하고 전략적인 자세로 실질적인 대응을 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대중 방첩정보 강화는 필수다. 우방국과 공조는 물론 중국과의 정보협력도 긴요하다. 정보는 가치나 이념 지향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 보장을 위해 목적 지향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방법과 수단은 정보기관에 위임돼 있다. 당국의 지혜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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