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아버지가 지금 있는 곳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어 감사
버나드 쿠퍼 ‘늙은 새들’(‘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에 수록, 이주혜 옮김, 다른)
한번은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신호등이 멈췄을 때 한 노인이 차도로 비틀비틀 걸어가는 게 보였다. 피클 병을 든 노인. 노인은 멈춰 선 자동차 문을 두드리곤 운전자들에게 병뚜껑을 열어 달라는 듯 보였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아버지였다. 그때 아들은 덜컥 알았다. 아버지에게 알츠하이머가 시작되었다는 사실과 이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아버지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근처 아파트 단지로 이사 왔어도 아버지는 어느 날은 아주 먼 데까지 가 있기도 했다. 배가 너무 고픈 오늘, 아버지는 땅콩버터 병을 든 채 슬리퍼를 신고 거리에 다시 나와 있었다. 그나마 지금은 나은 편인가. 공중전화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 수 있을 정도이니. 그런데 아버지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내 말 잘 들어요, 아빠.” 아들은 수화기를 붙들고 말했다. 어떻게든 전화를 끊지 않게 해야 하고 말을 시켜서 어느 거리인지 알아내야 아버지를 찾으러 갈 수 있으니까. 무슨 말로 대화를 이어 갈까. 건축가인 아들은 오늘 자신이 한 작업에 대해 말했다. “물러날 여유는 없는 사람들을 위한 저소득층 주거지”를 만들고 있다고. 아버지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늙은 새들 무리로구나.” 아들은 “처음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를” 떠올려 보았지만, 자신은 절대로 아기가 된 적도 없고 아버지는 항상 늙은 상태였던 것만 같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아버지가 사는 곳은 어디인가? 아니, 우리의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사시는지?
동전을 더 넣지 않으면 공중전화는 끊어질 터이고 아버지에겐 남은 동전이 없다.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아들은 초조하게 전화기를 붙들고 방안을 오락가락한다. 해가 질 무렵이었다. “늙은 새들.” 아들은 문득 상상한다. “새장 같은 노인들의 집”에 대해서. 널찍한 중정이 있으며 천장이 높고 열대의 야자수와 나무들 그리고 카나리아와 앵무새, 노래하며 깃털을 다듬는 콩새가 있는 빛이 온화한 집을. 아들은 그런 늙은 새들을 위한 집을 설계하고 짓는 게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알았을지 모른다. 이제라도 그런 생각을 해 보는 것은 아버지가 아직 저쪽에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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