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말하는 나무, 말을 듣는 나무

2024. 4. 19.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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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소녀의 속내를 듣던 고사목
봄마다 새잎 몇장으로 초록 화답
마당에 꽃피운 동백나무 두 그루
떠난 어머니의 말씀 전해주겠지

봄에는 나무의 존재감이 꽃에서 온다. 꽃을 피워야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쉽게 알게 된다. 처음 이사 와서 마른 나뭇가지가 걸리적거려서 가지를 잘라냈더니 봄에 노란 개나리를 밀어 올렸다. 골목 끝에 시꺼먼 수피로 서 있던 나무엔 연분홍 벚꽃이 피었다. 담장이 높아서 한 번도 쳐다본 적 없던 나뭇가지엔 뽀얗게 매화 송이가 달렸다. 나는 이런 꽃들을 나무의 언어라 부른다. 합창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던 벚꽃들은 이제 거의 졌다. 벚꽃길마다 인파가 몰렸고, 벚꽃의 소란에 사람들도 함께 들떴다. 우리가 벚꽃 군락의 풍성함에 압도당하는 것은 숱한 꽃들이 한목소리를 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 내게도 목소리를 듣는 한 그루 나무가 있었다. 집 모퉁이를 돌면 골목 어귀에 오래된 고사목이 그것이다. 수종은 알 수 없지만 비스듬히 누워 비틀어진 나무는 봄이면 가끔 몇 장의 초록 나뭇잎을 달았다. 그래서 완전히 고사목이라고 할 수도 없는 나무였다.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한 나는 종종 거기에 올라 멍하니 앉아 있었다. 특히 엄마께 꾸지람을 듣는 날에는 우듬지가 닿을 듯한 높은 둥치 끝에 앉아 삐쳐 있곤 했다. 보폭이 좁은 어린 내가 오르기 좋게 계단용 혹 몇 개까지 달고 있는 나무였다. 죽은 듯한 그 나무는 새잎 몇 장으로 자신이 살아 있다고 말했다. 그 초록 음성이 포기하지 않는 삶의 근기 같은 것을 내게 속삭였다.
천수호 시인
고향 친척 집 마당에는 70년 된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이 나무는 이 집안 어르신들의 수목장이 행해지는 곳이다. 그러니까 나무 한 그루가 이 집안의 선산인 셈이다. 이것은 암나무인데 그 일대에 수나무가 없다. 그런데 해마다 열매가 엄청나게 열린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이 암나무에 수나무 가지로 접을 붙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웅동체 은행나무가 된 것이다. 이것은 후손들의 고민을 듣는 나무다.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큰 시험을 앞둘 때는 그 앞에서 합장하고 조상들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조상들은 또 수없이 많은 열매의 말씀으로 다독이며 후손들을 지키고 있다.

청도 월하리에 있는 은행나무 이야기도 이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월하리 은행나무가 이렇게 늙어도 매년 열매를 열 수 있었던 까닭을 노인은 개울이 그 은행나무 근처 흘렀던 탓이라고 전해주었다 개울의 수면을 통해 자신의 그림자와 맺어졌다는 이 고목의 동성애와 다름없는 한 평생”(송재학 시인의 시 ‘평생’ 부분)에도 나무의 언어가 있었을 것이다. 이 은행나무는 흐르는 강물에 은행 알맹이를 하나씩 떨어뜨리면서 사랑을 속삭였을 것이다. 물 위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봄과 여름을 단장하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잉태한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슬픔의 말을 잘 들어주는 은행나무도 있다. 팽목항에서 4.5㎞ 떨어진 ‘세월호 기억의 숲’에는 300여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다. 은행나무의 긴 수명처럼 4·16 세월호 희생자들을 오래 기억하겠다는 의미로 조성한 숲이다. 가을이면 노란 리본 색깔의 은행잎이 잊지 말라는 말을 귓속말로 나누다가 왕왕 전국으로 퍼지는 큰 소리가 된다. 그리고 이 나무들은 세월호 유가족의 슬픈 탄식을 가만히 들어주고 있을 것이다.

며칠 전 어머니가 떠나셨다. 어머니 마당에는 흰 동백과 붉은 동백의 두 그루 동백나무가 있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사흘 전에 백동백나무를 정돈했다. 붉은 동백은 이미 져서 푸른 잎들만 무성했지만, 백동백은 계속 새로운 꽃을 피우고 있었다. 누렇게 변해 떨어지고 있는 몇몇 꽃들은 정리하고 깔끔한 인사말을 할 수 있는 꽃들만 남겼다. 어머니의 검은색 운구차가 집 앞에 멈췄다. 큰조카가 껴안은 어머니의 영정사진이 백동백 아래 잠시 섰다. 흰 동백은 흰 꽃으로 무언가 말하는 것 같았고, 꽃이 없는 붉은 동백나무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이렇듯 나무는 더러는 말을 들어주고, 또 더러는 사람이 못다 할 말을 한다. 내년엔 어머니 말씀이 덧붙어 이 나무엔 더 많은 꽃숭어리가 달리지 않을까.

천수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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