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의 ‘자백’,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다 [논썰]
대통령실 ‘직접 개입’ 의혹 커져가
윤 대통령 지지율 23% 최저치 급락
안녕하십니까. 논썰의 박용현입니다.
4·10 총선 이후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외압에 대한 특검법이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부상했습니다. 더 이상 특검을 미룰 수 없다는 민심이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김건희 특검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또 거부권을 행사할까요? 만약 그런다면 민심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불붙을 것입니다.
‘사실상 자백’ 터져나오는 채 상병 수사외압
채 상병 특검법부터 보겠습니다. 한겨레가 18일 중요한 보도를 했습니다.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과 관련한 핵심 쟁점 중 하나는 박정훈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경찰에 넘긴 사건기록을 누구의 지시로 회수했느냐입니다. 그동안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시한 것으로 여겨졌는데, 이 전 장관이 자신의 지시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 전 장관의 변호인은 17일 기자들에게 배포한 의견문에서 “(사건기록) 회수는 이 전 장관이 (국외 출장에서) 귀국 뒤 사후 보고받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국방부 검찰단이 사건기록을 회수했는데 국방부 장관 지시가 없었다면 그 윗선, 즉 대통령실의 직접 개입이 있었다고 추론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전 장관의 혐의 부인이 오히려 대통령실을 가리키고 있는 셈입니다. 박정훈 전 수사단장 쪽은 “이 전 장관이 사건기록 회수에 관여하지 않았다면 더 윗선인 대통령실의 직접 관여가 의심된다”며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만약에 무고한 군인의, 제복 군인의 명예를 대통령의 권력으로 짓밟았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면요, 저는 큰 틀에서 이거는 정권 입장에서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4월11일 MBC ‘뉴스데스크’)
총선 직후인 11일에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말하지 못하는 고뇌가 가득하다”는 내용의 지휘서신을 내부 전산망에 올렸습니다. 김 사령관은 대통령실·국방부와 연락을 주고받은 뒤 “브아이이피(VIP·대통령 지칭)가 격노”했다고 박정훈 전 수사단장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애초 김 사령관은 박정훈 단장을 두둔했다가, 이후 태도가 바뀌어 박 단장이 자신의 명령을 거역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이같이 모순되는 행동을 보였던 김 사령관이기에 이번 지휘서신에 함축된 의미가 주목됩니다.
김종대 전 의원: 그 내용이 자백이나 다름없어요. 그동안 말하지 못한 엄청난 고뇌가 있다...
진행자: 난파선에서 탈출하려고 하고 있는 겁니까?
김종대: 본인이 무너질 걸 예고하는 건데, 특검이 기정사실화돼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버티기는 힘드니 ‘내가 그동안 이렇게 하고 싶어 그랬냐, 조직 보호하느라고 그랬지’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던지면서...(4월16일 ‘최경영의 정치본색’)
진행자: 외압에 대한 본인의 결단을 암시한 게 아니냐는 언론의 추측이 있는데.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거대한 압력에 의해서 그 당시 그렇게 했는데 돌이켜보니 얼마나 괴로울 수 있겠습니까. 아끼던 부하가 항명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 자기는 있는 그대로 얘기를 못하니까 죄책감도 있을 수 있고 미안함도 있을 수 있고...지휘서신을 보내서 본인이 방파제 역할을 하겠다는데, 책임을 지고 물러나서 또 떳떳이 양심고백을 하는 것이 방파제 역할을 하는 거예요. (4월15일 ‘장윤선의 취재 편의점’)
이종섭 전 장관과 김계환 사령관의 말들은 용산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앞서 총선을 코앞에 두고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로 임명해 국외로 빼돌리려 한 것부터가 윤석열 대통령 자신의 연루 의혹을 스스로 키운 셈이었습니다. 이종섭 전 장관이 해병대 수사단 수사결과 발표를 취소하라고 지시하기 직전 대통령실 일반전화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이 공수처 수사에서 드러났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유시민 작가: 통화내역 나왔는데 장관이 보류 지시하기 전에 02로 시작되는 대통령실이랑 통화한 거 나온 거 다 알았잖아. 일설에 의하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믿을 만한 사람이면 안 보냈대. 막 쪼고 불리해지면 말을 할 사람이래. 그래서 대책이 없다, 빨리 빼라. (4월13일 ‘팟빵 매불쇼’)
이종섭 전 장관뿐만이 아닙니다. 이 사건 관련자들이 총선에서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출마하기도 했습니다. 임종득 전 대통령실 안보실 2차장은 국민의힘 텃밭인 경북 영주·영양·봉화 지역구에 단수공천돼 당선됐습니다.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도 충남 천안갑에 단수공천됐지만, 낙선했습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수사받아야 될 사람들이 공천장을 받고 총선에 출마를 했습니다. 국민들의 화를 더 돋궜다고 생각합니다. (4월16일 민주당 116인 특검법 촉구 기자회견)
더딘 공수처 수사, 다가오는 ‘통신기록 폐기’ 시한
상황이 이런데도 공수처 수사는 더디기만 합니다. 고발이 이뤄진 지 5개월 만인 지난 1월에야 압수수색을 했고 아직도 압수물 분석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요 인물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종섭 전 장관이 출국하기 전 4시간 동안 면피성 조사를 한 게 전부입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수사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인데요.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수사기관의 수사가 미진하거나 공정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면 특검을 하는 거잖아요. 아직까지 경찰 수사는 진행중에 있고 공수처 수사는 사실상 착수했다고 보기도 애매할 정도의 단계입니다.
윤 원내대표 스스로 인정하듯이 이렇게 더딘 공수처 수사를 무작정 기다리자고 하는 건 사건을 최대한 뭉개자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더구나 지금 공수처는 처장과 차장 모두 공석입니다.
진행자: 공수처의 수사력을 미심쩍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실적이 그렇고요.
임경빈 작가: 네, 실적이 그렇고. 일단 공수처장이 몇개월째 부재중인 상황이고 대리자들도 계속 왔다갔다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수사력이 제대로 발휘되겠느냐.
진행자: 정부가 공수처를 약간 무력화시키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는 의심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임경빈: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받아서 빨리 임명하려는 움직임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 부분을 의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4월17일 MBC ‘권순표의 뉴스하이킥’)
수사가 속도를 내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검사 출신으로 해병대예비역연대 법률자문인 김규현 변호사의 설명입니다.
김규현 변호사(해병대예비역연대 법률자문): 우리에게는 남은 시간이 없습니다. 올해 7월이면 범죄 은폐자들이 그토록 원하는 증거인멸이 완성됩니다. 특검을 포함한 중대사건 수사는 예외없이 통신기록부터 출발합니다. 수사의 출발점인 통신기록은 곧 보존기한 1년을 경과하여 삭제됩니다. 그렇게 되면 특검이 아니라 특검 할아버지가 와도 진상규명이 매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등 유명 인사들의 통화내역은 공수처가 확보를 해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숨어있는 사람들의 통화내역은 아직 확보 안 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4월17일 기자회견)
공수처 수사가 마무리되더라도 기소 여부는 검찰이 다시 판단하게 됩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은 지금 아무도 믿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결국 수사도, 기소도 제대로 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으로선 특검이 가장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기소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김건희 특검’ 도입 전에 검찰 수사 이뤄질까
채 상병 특검법은 더불어민주당이 21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통과시키겠다고 거듭 밝히고 있습니다. 반면 김건희 특검법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국민의힘 반대로 재의결이 부결됐기 때문에 22대 국회에서야 다시 추진될 수 있습니다. 조국혁신당은 주가조작 의혹에 더해 명품백 수수,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까지 포함한 ‘김건희 종합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윤석열 대통령이 부인을 방어하기 위해서 거부권을 행사했지 않습니까. 거기엔 주가조작만 들어있죠. 이후 상황에서 두가지가 더 추가되었다고 봅니다. 첫째는 다들 아시는 명품백 수수, 두번째는 양평고속도로건입니다. 양평고속도로가 왜 갑자기 휘었는지, 그래서 김 여사의 친정 쪽으로 갔는지...이와 관련해서 양평군청과 국토교통부와 대통령 비서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4월11일 대검찰청 앞 기자회견)
한 가지 가능성은 검찰이 그동안 뭉개왔던 김 여사 수사를 재개하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검찰 내 이견이 충돌하고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조국 대표는 지난 15일 페이스북에서 “차기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놓고 대통령실과 검찰 내부에서 긴장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와 김건희씨 관련 혐의 처리 입장이 인선의 핵심 기준”이라며 “윤 대통령은 곧 '데드덕'이 될 운명인 자신과 배우자를 위해서 뻔뻔한 방패 역할을 하고, 정적에 대해서는 더 무자비한 칼을 휘두를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검찰 내부에서 김 여사에 대한 원칙적인 처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범들의 재판 과정에서 검사들이 김 여사 연루 정황들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김 여사 처리를 계속 미루면 검찰에 대한 역풍이 불어 수사-기소권이 완전히 분리되고 검찰이 기소청으로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검찰 내부에 일고 있다고 합니다.
권영철 CBS 대기자: 검찰 내 어떤 위기가 있냐면 이 상태로 가다가는 검찰이 기소청으로 전락할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검찰 고위직 출신이 최근에 검찰 수뇌부를 만나서 그런 얘기를 했다고 그러더라고요. 김건희 여사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이제 검찰은 기소청 될 거다, 제대로 하라고 얘기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4월17일 뉴스토마토 ‘서초의 봄’)
검찰이 실제 어떻게 움직일지는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윤석열 검찰정권과 한몸이었던 검찰 고위층이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봅니다. 결국 특검을 통한 수사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총선 참패 뒤 박근혜 전 대통령과 흡사한 행보
특검이 원활히 도입되려면 국민의힘이 찬성해야 하고 대통령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합니다. 먼저 국민의힘은 일각에서나마 태도 변화가 보이고 있습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개인적으로 (채 상병 특검법에) 찬성한다. 찬성표를 던지겠다. (4월11일 문화방송 ‘김종배의 시선집중’)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우리 당이 민주당보다 먼저 국민적 의혹 해소에 노력을 보여야 한다느 게 제 견해. (4월15일 문화방송 ‘김종배의 시선집중’)
김경률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 민심이 뚜렷한 만큼 채 상병 특검 관련해선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4월15일 에스비에스 라디오)
김재섭 국민의힘 당선자: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국민의 요청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는 있다. (4월11일 한국방송 ‘전종철의 전격시사’)
국민의힘 현직 의원 20명에게 채 상병 특검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4명이 찬성하고 10명은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는 JTBC 보도(4월15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참패 뒤에도 전혀 바뀌지 않은 모습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데 모자랐다고 생각합니다.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세심한 영역에서 부족했습니다. (4월1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
반성은커녕 ‘하던 대로 하겠다’는 독선과 아집만 드러냈습니다. 자신이 아닌 국민한테 바뀌라고 윽박지르는 듯한 느낌입니다.
김보협 조국혁신당 대변인: 예전에 탄핵당했던 어떤 대통령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윤 대통령 자신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잘했는데 국민이 체감하지 못한 게 문제라고 하니 국민이 외려 사과해야 하나 보다.(4월16일 논평)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참패에 대처하는 방식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흡사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6년 총선에서 패한 뒤 닷새 만에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모두발언 형식을 빌어 첫 공개 메시지를 냈습니다.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이나 반성은 언급하지 않은 채 “사명감을 갖고 경제발전과 경제혁신을 마무리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당 내부에서조차 “구제불능”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윤 대통령이 처참하게 실패한 전 대통령의 길을 가는 게 아닌지 우려됩니다.
또 거부권 행사하면 더 큰 심판 직면할 것
윤 대통령은 이번에도 채 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까요?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 이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가 채 상병 특검 하고 김건희 특검 하고, 그런 명령을 총선을 통해 내린 겁니다. 저는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할 수 없다,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거라고 예상하는 분들도 꽤 있더라고요.
성한용: 그럼 망하는 거죠. (4월17일 한겨레TV ‘정치 막전막후’)
19일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23%로 추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16~18일 전국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입니다. 국정 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총선 전 조사보다 11%p 급락해 최저치를 경신했습니다.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10%p 올라 68%에 이르렀습니다.
윤 대통령은 민심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는 민주국가 대통령의 의무입니다. 민심을 거슬러 자신과 배우자를 지키기 위해 또 거부권을 남발한다면 국민들은 대통령의 자격을 근본적으로 묻게 될 것입니다.
기획·출연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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