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 기틀 세운 韓 경제 설계자들
송인상, 경제개발 3개년계획 수립 추진
남덕우, 긴축통화 정책·기업 사채 동결
미숙했던 韓 경제 시스템서 ‘고군분투’
경제 관료의 시대/홍제환/너머북스/2만6500원
“자원이 없는 한국이 살길은,” 한국은행 부총재 당시 열정적인 외교 활동으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인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가입을 이뤄낸 송인상 부흥부 장관은 유엔이 제시한 한국의 경제 성장 전략에 반대했다. “공업화로 수출 강국이 되는 것입니다.”
각국의 경제개발 계획을 공부했던 그는 통상적인 조직으론 체계적 장기 개발계획을 수립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별도의 기획기구 ‘산업개발위원회’를 설치했다. 아울러 계획 입안을 지원할 해외 대학도 물색에 나서, 미국 오리건대와 계약을 맺고 다섯 명의 교수를 초청하기도 했다.
처음 7개년계획을 생각했지만, 우선 1단계로 3개년계획을 수립했다. 비록 3개년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채 1959년 재무부 장관으로 옮기게 됐지만, 얼마 뒤 경제개발 3개년계획이 최종적으로 마련될 수 있었다. 산업연관분석표를 만들고 투자 대비 성과를 예측해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송인상은 장기 경제개발계획 입안 이외에도 환율 사수를 위해 분투했고, 공무원 공채시험을 도입하면서 특채 제도도 병행해 인재 발굴과 양성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강학파 태두’로 불린 남덕우는 1969년 재무부 장관에 임명돼 긴축통화 정책을 실시했고 나중에 도입되는 부가가치세 도입 논의를 시작했다. 1972년 기업의 사채를 동결해 기업 금융환경을 개선한 8·3조치를 단행했고, 이듬해부터 중화학공업 정책을 추진하면서 국민투자기금을 고안하기도 했다. 1974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된 그는 고물가와 저성장, 국제수지 악화의 3중고를 극복하기 위해서 환율 인상을 골자로 한 12·7조치를 발표했다. 중동 진출을 위한 경제외교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홍제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신간 ‘경제 관료의 시대’에서 송인상과 남덕우를 비롯해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른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한국 경제 성장을 정책으로 입안하고 주도한 경제 관료 13명을 조명했다.
저자는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땀과 눈물을 쏟은 국민과 기업은 물론 정부, 특히 경제 관료들의 노력도 있었기에 한강의 기적이 있었다고 강조한다. “한국 경제가 거듭 찾아온 난관을 잘 극복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유능한 경제 관료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당시에는 장기영, 김학렬, 오원철, 김정렴, 남덕우, 신현확 등 오늘날까지도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 관료로 회자되는 이들이 유난히 많이 등장했다. 이 시기를 ‘경제 관료의 시대’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다.”
저자는 다만 현대는 과거와 경제 구조가 완전히 다르고, 법과 제도가 촘촘하게 완비돼 관료들의 운신 폭이 확 줄었으며, 한국 경제의 틀도 거의 완성돼 개인 성과가 부각되기 어려워 스타 경제 관료를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됐다고 평가했다. 결국 개개인 역량보다는 경제 환경의 변화라는 구조적 요인이 스타 경제 관료의 출현 여부를 결정짓는다고 분석했다.
“요컨대, 스타 경제 관료들이 출현하는 ‘경제 관료의 시대’가 도래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한국 경제가 그만큼 미숙하고 취약해 개인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와 달리 오늘날 두각을 나타내는 경제 관료를 찾아보기 힘든 것은 그만큼 한국 경제가 성숙하여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고 있어 개인이 부각되거나 개인 역량에 좌우될 여지가 적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관료 개개인의 역량이라는 요인보다는 경제 환경의 변화라는 구조적 요인이 ‘스타’ 경제 관료의 출현 여부를 결정짓고 있는 것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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