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리 "의료공백 방치안돼"…'2000명 증원'서 물러난 정부

심희진 기자(edge@mk.co.kr), 김지희 기자(kim.jeehee@mk.co.kr), 강민호 기자(minhokang@mk.co.kr) 2024. 4. 1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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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의대 2000명 증원' 방침을 고수해온 정부가 정책 발표 2개월여 만에 숫자에 대한 고집을 내려놓았다.

한 총리는 "최근 만난 난치병 환자와 가족들이 '2000명을 증원하면 난치병을 전공하는 의사도, 지방에 남는 의사도 늘어나겠지만 약자인 환자는 당장의 의료 공백이 무섭다'고 했다"며 "의료개혁에서 어느새 환자는 사라지고 의료계와 정부만 남은 것 같다는 분도 있었는데 이렇게 불안해하는 목소리를 현장에서 많이 확인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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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의대 자율모집 허용
무너진 의료체계, 피해 장기화
정부 '환자·의사 한계상황' 판단
의료계 "증원 자체 폐기않는한
협상 테이블에 앉는 일 없을 것"

◆ 의정갈등 분수령 ◆

전공의 없는 병원 언제까지 정부가 6개 거점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당초 2000명에서 1000명대로 자율 조정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9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인과 환자 보호자가 바삐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5년간 의대 2000명 증원' 방침을 고수해온 정부가 정책 발표 2개월여 만에 숫자에 대한 고집을 내려놓았다. 의정 갈등을 조속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한계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전공의 이탈과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 등이 이어지면서 상급종합병원은 최대 경영위기를 맞았고 환자들 생명은 심각한 위기에 놓였을 뿐만 아니라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 사태도 목전이다.

다만 정부의 증원 규모 조정 방침에도 의료계는 여전히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어 의료체계 정상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9일 정부에 따르면 각 대학은 2025학년도에 한해 의대 정원 증원분을 50~100%까지 자율로 정할 수 있게 됐다. 즉 대학별 분배에서 최소치인 7명을 배정받은 연세대분교와 인제대는 4명만, 최대치인 151명을 배정받은 충북대는 76명만 선발해도 되는 셈이다.

만약 32개 대학이 이달 말까지 모두 50%만 증원하기로 결정한다면 내년도 신입생은 2000명이 아닌 1000명만 증원된다.

정부가 내년도 증원 규모를 대학 결정에 맡기기로 한 것은 학교를 떠난 의대생과 병원을 등진 전공의들을 돌아서게 하기 위해서다. 이날 특별 브리핑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의료계의 단일화된 대안 제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의료 공백에 따른 피해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어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병의원 이용이 어려워진 환자들을 하루빨리 달래야 한다는 점도 정부의 유연한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한 총리는 "최근 만난 난치병 환자와 가족들이 '2000명을 증원하면 난치병을 전공하는 의사도, 지방에 남는 의사도 늘어나겠지만 약자인 환자는 당장의 의료 공백이 무섭다'고 했다"며 "의료개혁에서 어느새 환자는 사라지고 의료계와 정부만 남은 것 같다는 분도 있었는데 이렇게 불안해하는 목소리를 현장에서 많이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건강을 위해 내린 오늘의 결단이 문제 해결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의료계가 여전히 요지부동이라는 점이다. 증원 정책 자체를 폐기하지 않는 이상 정부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일은 없다는 입장이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원점 회귀 외에 숫자의 조정은 무의미하다'는 메시지를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전달했음에도 정부와 대통령실은 '숫자 조정으로 협의가 될 것'이라는 헛된 희망사항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범석 전국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 공보담당은 "의료계는 원점 재검토를 요구했다"며 "정부가 조정을 발표해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 대형 병원 교수는 "과학적 근거 없이 조정한다니 2000명 증원이 비과학적인 정책임을 자인한 것"이라며 "전면 백지화와 과학적인 의사수급추계기구 설치를 통한 증·감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료계의 백지화 주장에 대해 정부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일부 정치인과 의료계에서 원점 재검토 또는 1년 유예를 주장하고 있다"며 "필수의료 확충의 시급성, 2025학년도 입시 일정의 급박성 등을 감안할 때 현재로서는 (이 같은 대안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한발 물러선 데에 의료계가 조금도 환영의 뜻을 내비치지 않으면서 당장의 의료 시스템 정상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일부 의사를 대상으로 진행 중인 행정처분이나 압수수색을 중단하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은 "의사 입을 틀어막는 폭압을 지속하면 의협은 정부와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에 조 장관은 "일단 전공의 처분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지난달 말부터 처분 절차 유보 등 유연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희진 기자 / 김지희 기자 / 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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