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 법조인들에게 “법만이 아닌 인간의 개별성 존중해달라”

황지윤 기자 2024. 4. 1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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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이 17일 저녁 서울 서초구 반포4동 성당에서 가톨릭법조회 초청으로 강연하고 있다. / 오종찬 기자

“영원성의 힘으로 현세를 끝없이 긴장시키고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것이 신앙의 힘 아닐까.”

소설가 김훈이 지난 17일 저녁 서울 서초구 반포4동 성당에서 열린 가톨릭 법조회 봄 강연회에서 말했다. 그는 ‘땅 위에 세우기’라는 제목으로 정약전·정약용·황사영·안중근의 신앙과 자신의 신앙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톨릭 서울 법조회(회장 봉욱 변호사)의 초청으로 성사된 자리다. 그는 두툼한 A4 용지 수십여 장에 정리한 글 뭉치를 들고왔다. “십자가 밑에서 두려움을 무릅쓰고 말해보겠습니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김훈의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 고등학교 시절까지 서울 돈암동 성당을 다니며 복사를 서고 라틴어 공부를 했다. 하지만 도시화 바람이 불던 때, 판자촌 철거 현장을 보며 교회와 현실 사이에 괴리를 느꼈다. 그는 “자기 땅, 자기 집이 없는 사람은 어디에 살아야 하나. 법리를 떠나 인간으로서 승복할 수 없었다”며 “그래서 열성적인 신자는 못 됐지만, 부활절·성탄절이면 성당에 간다”고 했다.

그는 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고해성사한 일에 대해서도 “깨치지 못한 중생의 생각”이라며 말을 얹었다. “하나님이 사전에 허락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사후적으로는 용인해주지 않았을까.”

김훈은 법조인들에게 “나는 인간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글을 쓴다”며 “법이란 보편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지만, 법의 원칙만 적용하려 하지 말고 인간을 개별적 존재로 대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당대의 일상화된 야만성에 대해 쓰고 싶다”면서도 “때로는 어떤 세계가 보이는데 단념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참 슬프고 때려치우고 싶다”고 했다. “그런 날들이 점점 많아져서, 내가 덤비면 안 되겠다는 걸 아는 것. 그게 늙어가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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