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와 씨름중입니다 … 주문 잘못 받아도 이해해주세요

지혜진 기자(ji.hyejin@mk.co.kr) 2024. 4. 1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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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증 어르신 바리스타 활약…구로 '기억다방' 가보니
부정적 인식 개선 위해 운영
서툴고 실수 잦아도 '대만족'
"혼자 지내면 아무말도 안 해
계속 머리 쓰니 증상도 개선"
국내 치매환자 100만명 달해
전문가 "누군가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로 접근을"
지난 17일 서울 구로구 치매안심센터 분소에 있는 '기억다방'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어르신이 음료를 내오고 있다. 이승환 기자

"주문한 것과 다른 메뉴가 나와도 어르신을 응원해주세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지만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받을 수 있는 색다른 카페가 있다. 손님들은 주문한 것과 다른 음료가 나와도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음료가 맛있다며 바리스타를 칭찬한다. 이곳은 경도인지장애와 경증치매 어르신이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기억다방'이다.

지난 17일 서울 구로구 치매안심센터 분소에 위치한 기억다방에 방문하자 앞치마 차림의 어르신이 반갑게 맞이하며 주문을 도왔다. 허브차부터 율무차까지 9종에 달하는 음료를 주문할 수 있었다. 취재진은 아이스티를 주문했지만, 약 5분 뒤 어르신은 밝은 표정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왔다.

구로구 기억다방은 치매에 대한 지역 주민의 이해를 높이고 치매가 있어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2022년 문을 열었다. 현재 기억다방에서는 어르신 두 명이 바리스타로 근무하고 있다. 일주일에 이틀 두 명이 하루씩 일한다.

이날 근무자였던 김종분 씨(67)는 "집에 혼자 있으면 아무 말도 안 하는데, 주위에 치매를 알리고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머리를 쓰니 증상이 아주 좋아졌다"며 "치매약을 이전보다 덜 먹고 우울증도 극복했다"고 말했다. 이하림 구로구 치매안심센터 간호사는 "이틀 동안 손님이 50명가량 방문한다"며 "처음엔 다른 음료가 나왔을 때 당황하는 분도 있었지만, 지금은 지역 주민들이 기억다방의 취지에 공감해주고 어르신들을 많이 응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치매 환자 수는 매년 꾸준히 늘어나 100만명에 달하고 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15년 62만5259명이던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2023년 98만4602명으로 급증했다. 노인인구 100명당 치매 환자 수를 뜻하는 치매 유병률은 65세 이상 기준 2015년 9.54%에서 2023년 10.41%로 높아졌다.

고령화로 치매 환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아직 치매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다. 치매를 노망이라고 여겨 진단받기를 꺼리거나 주위에 알리지 않으려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이 간호사는 "치매를 치료와 예방이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해 치매 검사를 거부하기도 하고 진단을 받을 때 우울감과 절망감을 느끼는 분이 많다"고 전했다. 김씨 역시 "주위에 치매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친구들이 많아 아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기 검진을 통해 치매를 조기에 발견하면 증상 악화를 막고 상태를 개선할 수 있어 치매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인천 뇌건강학교는 2022년 65세 이전에 발병하는 초로기 치매 환자들이 운영하는 '가치함께 사진관'을 개관해 인천 시민에게 사진을 무료로 촬영해주고 있다. 치매 진단 전 사진관을 운영하던 초로기 당사자의 제안으로 시작된 사업으로, 현재는 약 13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강호 뇌건강학교 팀장은 "초로기 치매 환자는 노인성 치매 환자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지원 서비스가 부족하다"면서 "초로기 환자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회복할 수 있도록 사회 활동을 장려하며 시민들에게 다가가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 사천시 치매안심센터는 지난해 11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가족을 주제로 한 '할머니의 기억상자'라는 동화책을 출판했다. 치매 어르신이 직접 동화책 삽화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해당 도서는 지역 내 학교, 도서관 등 112곳에 배부됐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구연동화 행사도 진행됐다. 사천시 치매안심센터 관계자는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치매를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스웨덴·일본과 같은 고령화 국가에는 치매 환자의 사회 활동과 안정적 생활을 보장하는 사례가 많다"며 "한국 사회 역시 치매를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전했다.

[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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