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기타신공] 인 메모리 오브 '디키 베츠 & 올맨 브라더스 밴드'

조성진 기자 2024. 4. 1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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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그래스/컨트리‧블루스‧재즈‧록의 결합
서던록의 새로운 지평 열어
잼 세션‧인스트루멘틀의 모범 답안
여러 명곡을 쓴 탁월한 작곡가
평생 플로리다 새러소타서 살아
급한 성미, 주변과 자주 충돌하기도
낚시, 사냥, 보트타기, 골프, 가라테, 복싱까지
다방면을 즐기며 ‘즐거운 인생’ 추구
사진=올맨 브라더스 밴드 트위터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올맨 브라더스 밴드(Allman Brothers Band)의 위대한 고전 'In Memory of Elizabeth Reed'는 재즈 어프로치가 함께 하는 서던록의 명작이다. 당시로선 웨스턴 스윙재즈와 록을 매우 색다르게 융합한 작품으로 베니 굿맨을 염두에 두며 작곡했다. 작곡자는 디키 베츠(Dickey Betts).

블루그래스, 컨트리, 재즈에서 척 베리, BB 킹 다양한 스타일을 자기 기타 세계에 받아들인 디키 베츠는 1971년 역사적인 'At Fillmore East' 라이브에서 'In Memory of Elizabeth Reed'를 통해 진정한 기타 인스트루멘틀리즘을 구현했다. 13분의 러닝타임은 각 멤버 기량과 감성이 고루 발휘되고 조우하는 가운데 서서히 달아오르며 절정으로 치닫는 잼 세션의 궁극을 보여준다. 여기에 트윈 드럼까지 시도하며 방대한 음폭, 탄탄한 리듬을 만들고 있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디키 베츠는 'In Memory of Elizabeth Reed' 외에도 'Jessica', 'Ramblin' Man' 등 올맨 브라더스 밴드 대표곡이자 서던록 사에 길이 남을 여러 명곡을 쓴 뛰어난 작곡가다.

올맨 브라더스 밴드 기타리스트이자 공동 창립자 디키 베츠가 지난 18() 플로리다 새러소타 오스프리 자택에서 암과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80.

디키 베츠 사망은 그의 가족이 '롤링스톤' 매거진에 발표한 성명을 통해 알려졌고 이후 뉴욕타임스, CNN, AP, LA 타임스, ABC뉴스, 폭스뉴스, 빌보드, 버라이어티, 피플 등 전 세계의 많은 언론이 타계 소식을 전했다.

그는 올맨브라더스밴드가 결성되는 동안 잠시 조지아에 거주했지만 평생 플로리다 사라소타(새러소타) 지역에서 살았다. 새러소타는 미국 최고의 은퇴지로 꼽히는 명소다. 그는 이곳에서 음악 연주는 물론 작곡, 낚시, 사냥, 보트타기, 골프, 가라테, 복싱 등 많은 것들을 탐닉하며 삶의 열정을 지폈다.

듀언 올맨과 그렉 올맨 등 형제 주도의 팀(올맨브라더스밴드)에서도 디키 베츠의 존재가 찬란히 빛났던 건 탁월한 곡쓰기와 연주력 등 여러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일렉기타 사상 가장 위대한 슬라이드 기타 거장 중 하나였던 듀언 올맨도 디키 베츠에게 ", 네가 (기타 솔로로) 불타오를 때면 가끔 너한테 너무 질투나서 따라가야 해"라고 말할 정도였다. 듀언 올맨 관련 내용은 201981, 13일 자 스포츠한국 '조성진의 기타신공'을 참조하면 된다.

깁슨 기타를 사랑한 디키 베츠의 연주는 블루스에서 척 베리 풍의 로큰롤, 재즈(장고 라인하트)에 이르는 많은 스타일, 심지언 에릭 클랩튼의 장점까지도 다채롭게 수용하며 연주세계의 외연과 깊이를 더해갔다.

'Ramblin' Man'은 빌보드핫100 10위권에 진입한 유일한 곡이다. 올맨브라더스밴드 멤버들이 처음엔 "너무 촌(시골)스럽다"고 했던 곡이다. 활기차고 경쾌한 멜로디의 'Ramblin' Man'은 체념하고 회개하지 않는 마음을 표현했다. 41번 고속도로를 달리는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 뒷좌석에서 태어난 남자의 방랑벽, 떠날 시간이 되면 내가 방탕한 남자로 태어났다는 걸 당신이 이해해주길 바란다는, 전형적인 미국식 컨트리 앤 웨스턴과 블루스 음악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내용이다.

'Jessica''In Memory of Elizabeth Reed'와 함께 또 하나의 인스트루멘틀 명작으로 꼽히는 올맨 브라더스 밴드의 명작이다. 당시 임대아파트에 살던 디키 베츠는 올맨 브라더스 밴드의 새 앨범 'Brothers and Sisters'의 수록곡을 구상중이었다. 악곡 구상 중인 그에게 당시 1~2살 밖에 안된 사랑스런 딸 제시카가 방으로 엉금엉금 기어와서 웃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딸과 놀아주며 쓴 곡이다. 마침 장고 라인하트를 생각하고 있던 그는 딸의 사랑스러움을 오버랩시켜 'Jessica'를 완성했다. 따라서 우울하고 묵직한 'In Memory of~'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디키 베츠의 아버지는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삼촌은 바이올린과 기타를 연주했으며 어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컨트리 음악방송에 맞춰 라디오를 틀어놓던 열혈 음악애호가였다. 가족이 모여 조촐하게 공연을 할 정도였고 이러한 분위기는 어린 디키 베츠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1970년대 당시 올맨 브라더스 밴드는 연간 300회의 콘서트를 소화할 정도였다. 공연당 5~1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며 개인용 보잉720 비행기를 타고 전국 투어를 다녔다. 투어가 없을 땐 조지아주 메이컨에 위치한 튜더 스타일의 맨션에서 멤버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올맨 브라더스 밴드는 오토바이 사고로 듀언 올맨과 베리 오클리란 두 멤버를 잃었다. 이들 나이 겨우 24세였다. 따라서 24는 올맨브라더스밴드가 가장 싫어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디키 베츠는 인상적인 음악 세계만큼이나 인성도 남달랐다. 약물 복용으로 자주 말썽을 일으킴은 물론 성미가 급해 주먹부터 날아가 그룹 내에서도 골칫거리였다. 특히 경찰을 자주 때려 수십 년에 걸쳐 여러 차례 체포됐다. 결국 그는 2000년에 영원히 밴드를 떠났다.

그는 줄곧 플로리다 해안가 자택에서 살았다. 이곳 인근에선 지역 보트경기 팀이 연습했다. 디키 베츠는 파워보트를 작동시켜 보트 팀이 있는 방향으로 파도를 세차게 보내 연습을 방해하기도 했다. 또한 집 근처에서 노를 저어가는 승무원 팀에게 소총을 겨누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디키 베츠는 올맨브라더스에서 탈퇴했지만, 팀과 음악적인 교류는 계속했다. 2023년엔 올맨 베츠 패밀리 리바이벌 밴드 주최의 콘서트에도 참석했다.

디키 뿐만 아니라 올맨브라더스밴드 나머지 멤버들도 술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밴드가 1995년 로큰롤 명예의전당에 헌액됐을 때 그렉 올맨은 너무 취해서 수락 연설을 할 수 없었다. 이를 계기로 밴드 내에선 금주 운동이 일기도 했다. 96년엔 디키 베츠가 심한 음주 및 약물 남용으로 아내의 머리에 총을 겨눠 논란이 일었다. 결국 그는 재활원 생활을 해야 했다.

디키 베츠는 결혼을 5번이나 했다. 따라서 여러 명의 자녀를 뒀다. 유족으론 아내 도나와 듀언, 크리스티, 제시카, 킴 네 자녀가 있다.

많은 뮤지션이 디키 베츠를 추모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 그 일부를 소개하며 하늘에서도 멋진 잼 세션을 계속하리라 믿는다.

사진=워렌 헤인즈 트위터

"RIP 디키 베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음악계 가족뿐만 아니라 음악계 전반을 위해서도 정말 큰 손실이다. 기타를 잡기 전부터 내 음악에 큰 영향을 끼친 것 외에도 디키는 모든 놀라운 일에 대해 내가 인정하는 사람이다. 그에게서 얻은 것은 내 인생에 큰 공헌을 했다. 그의 밴드에 합류하고 나서 그 아름다운 음색을 지닌 그의 옆에 서서 내 톤과 스타일 모두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나를 호수에 던졌고 나는 수영을 배워야 했다. 나는 '일생에 한 번'이란 기회에 영원히 감사하고 있다. 고마워요 디키."  워렌 헤인즈

"1983년 뉴욕에서 열린 디키 베츠의 공연이 내가 본 첫 번째 콘서트였다. 이 공연을 보며 처음으로 레스폴을 원하게 됐다. 편히 쉬세요 디키."  조 보나마사

"전설적인 디키 베츠는 이번 투어를 위해 내게 기타스트랩을 빌려줄 만큼 친절했다. 이 스트랩을 걸치게 돼 영광이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나 너무 슬프다.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우리의 모든 사랑을 전하며."  팀 맥그로

"다른 많은 기타 연주자의 삶과 마찬가지로 내 삶은 바로 여기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결코 같지 않았을 것이다. 디키 베츠의 명복을 빌어요."  그렉 코치

"램블린 맨!!!! 또 다른 레전드가 너무 빨리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그렉, 듀언과 함께 술을 마시며 잼을 하고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존 코라비

"전설이자 우리의 오랜 형제 디키 베츠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방금 들었어요. 가족에게 깊은 사랑과 동정심을 보냅니다. 음악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디키가 이미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었습니다."  더그 그레이(마샬 터커 밴드)

"디키와 함께 했던 시간은 지금까지 해본 것 중 최고 중 하나다. 편히 쉬세요 디키!"  데렉 트럭스&수잔 테데스키

"서던록의 창립자 중 또 한 명은 이전의 많은 로드 형제들처럼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기도는 그의 가족, 친구, 팬들에게 전달될 겁니다. RiP 리차드 베츠."  찰리 다니엘스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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